안녕하세요. 신입사원 태공, 걍입니다. 


원래 자주 포스팅을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 백수 생활 후에 취업이 되다보니 정신이 없어 포스팅할 엄두를 못 냈어요. 총선 직후에는 나름 멘붕이 와서 듀게에 나오는 정치 얘기도 보기 싫었죠.


영화 컨테이젼을 본 직후에, 신입사원 첫 출장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떠났어요.  출발하기 전부터 쿨럭거리며 살짝 오한이 나서 왠지 불안하다 생각은 했는데,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고열이 시작되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모포를 뒤집어 쓰고 덜덜덜 떨면서 내가 페인션트 제로구나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여러 팀이 동시에 움직이는 일정이라 아프다고 출장 일정을 바꿀 수도 없는건 비극이었죠. 그래도 고열과 함께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으니 필수저긴 회의만 참석하고 나머지 사교행사는 다 생략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나중에 더 비극으로 다가오겠지요. 새 직장의 새 친구들과 미리 좀 친해두려고 온 출장인데 밤마다 혼자 호텔 방에 남아서 끙끙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코피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아 이건.... 귀네스 펠트로가 보이던 증상과 동일한 거 아닌가요? 사실 첨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사흘 연속 코피가 나니 병원을 가게 되더군요.


병원에선 고열 감기로 인해 부은 코혈관이 기침때문에 파열된 것으로 보이고,  혈관이 아물기 전에 기침을 하거나 기타 다른 방식으로 코에 충격을 주어서 매일매일 코피가 나는 거니까 터진 혈관이 자연치유될 때까지 술담배를 생략하고 잘 쉬라고 했습니다. 출장 중에 비싼 돈 써서 병원에 왔는데,  뻔한 얘기 말고 혈관을 지진다거나 무슨 약을 쓴다거나 그 밖에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냐고 여쭈었더니, 의사 선생님이 혼쾌하게 처방전에다 뭐라고 써서 주었습니다.  듀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의사 처방전은 보통 상형 문자로 써 있어서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선생님은 놀랍게도 예쁜 글씨로 처방전을 써 주셔서 명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방전엔 이렇게 써 있더군요. "코를 파지 마세요."



랑콤? 랑칵콩? 람콩퐁?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홍콩 바 거리의 금요일 밤은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었죠. 억수같은 비가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반쯤 헐벗은 남녀들이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거리를 헤매며 택시를 잡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길바닥에 펼쳐진 좀비 랜드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 좁은 골목 안을 다닥다닥 메운 바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차 있더군요. 문에 가까운 바 스툴에 앉아,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내다보는건 나름 로맨틱했습니다.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한 영화 중경삼림이 떠오른다고 하자, 제 옆에서 싱글몰트를 홀짝 거리던 800파운드 고릴라는 자기가 홍콩에 산지 20년이 다 되었지만, 택시 잡기가 이렇게 힘든 장면은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그 후 좀비의 일원이 되어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두시간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뛴 경험은 별로 안 로맨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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