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3차 공판을 다녀와서.

2012.05.19 00:14

헬로시드니 조회 수:2751

16일에 재판을 보러 갔습니다. 피고는 박정근. 트위터에 북한계정인 ‘우리 민족끼리’를 리트윗한 일 때문에 기소가 되었습니다. 사유는 국가보안법의 찬양, 고무 죄입니다. 박정근은 평소 김정일과 북한 체제 비판 트윗도 종종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김정일과 북한 체제를 비판했던 트윗으로 국보법의 고무, 찬양이란 혐의를 반박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보법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측면으로 재판을 끌고 가려한 것이죠. 보통 구속까지는 되지 않지만 기소된 상황에서 트윗 상에서 북한 관련 트윗을 계속 RT하는 행태를 보이자 괘씸죄가 작용해 구속에 이르렀습니다. 구속 후 온라인에서 이 일을 알게 된 사람들의 보석금이 모여 간신히 보석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내기 힘든 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재판을 보러 간 이유는 두가지 이유였습니다. 첫째는 재판의 성격상 박정근의 평소 트윗이 증거자료로 제시되고 인용이 되는데, 이 트윗들이 하나같이 주옥같은 성격의 트윗이라는 점입니다. ‘장군님, 빼빼로 사주세요. 뿌잉뿌잉’이나 ‘김정일 카섹스’같은 트윗들이 법정에서 낭독되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엄숙해야 할 재판정이 웃음의 도가니로 변하겠지요. 이미 이전 재판에서 그런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하고요. 보기 힘든 광경이니 봐둬야겠지요.

두 번째는 재판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재판이야 숱하게 봤지만 실제로 어떤 식으로 재판이 진행이 되는지를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박정근처럼 국보법에 대해 강한 신념이 있지는 않았고 그에게 호의를 품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이 일이 일어나기 전, 박정근이란 이름을 듣게 된 계기는 교보문고에서 국보법 관련 찌라시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였던지라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보법에 대해서는 찬성이냐 반대냐 물으면 입장을 표할 수는 있습니다. 제게 행사될 일이 거의 없는, 거리가 먼 사안이라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뚜렷한 소신은 없던 셈이지요.


 이런 불온한 목적을 띄고 법원으로 향했지만 600M가량 떨어진 정류장에 내리고 말아서 제시각에는 도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법원 앞 사거리라길래 가까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거죠. 덕분에 30분 가량 늦고 말았는데 아직 재판이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검찰 측이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이 정한 시각에 30분~40분씩이나 늦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더군요. 재판의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공공기관의 어떤 행사에 누군가 3~40분 지각을 한다면 좋지 않은 소리를 듣거나 불참자를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행사를 진행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다른 재판에서 참석하고 오느라 검찰이 늦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 재판에 온전히 검찰이 신경을 쓸 수 있는걸까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재판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박정근과 연고가 없는 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처럼 불온한 목적으로 방청을 하러 온 이도 있었고, 리포트 때문에 방청을 하러 온 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청석에 사람은 적었습니다. 낯선 이들이 관심을 가진 재판이 아니면 이보다 더 적을테지요.


평일 오후, 지인들도 거의 없는 방청석, 적대적인 검찰이나 상대측 변호인, 재판 결과에 대한 불안,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피고측 변호인 뿐.

살면서 법정에 피고로 설 일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흔히 겪을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재판이란 이런 것이겠죠.


 박정근이 트윗에서 많이들 참석바란다는 점이 이 때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더군요.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에게 죽은 말을 사달라고 한 말도요(홍세화 대표와 죽은 말 얘기는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B%B0%95%EC%A0%95%EA%B7%BC&search_target=title&document_srl=3796954 이 링크를 참조하세요) . 이번 건으로 낯선 법정에 섰을테니 얼마나 외롭고 불안하겠습니까? 거기다 북한을 비판한 증거 제시라는 쉬운 길도 아닌, 어려운 길을 택했으니까요.

트윗 상에서야 박정근의 구속기소는 화제였지만 실지로 재판정에서의 관심은 여느 평범한 재판과 다를 바가 없던게지요.


이번 재판은 증인 심문이었습니다. 두 명의 증인이 재판정에 섰지요. 첫 번째 증인은 한예종의 게시물을 관리하는 이였고,두 번째는 다음의 대형 까페의 관리자였습니다.


한예종의 관리자는 학교에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게시물이 부착 되었고 인공기 비슷한 것이 보여 경찰에 신고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 게시물을 보여주기 위해 재판정에서 PPT 화면을 띄우는 장면은 꽤 인상 깊었습니다. 이때서야 재판정의 시설을 눈여겨 볼 수 있었습니다. 판사 옆에 모니터가 있을 정도였으니 상당히 시설이 잘 갖춰져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료로 제시된 ppt자료를 보았으나 화질이 좋지 못해 증거자료로 제시된 박정근의 패러디물은 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박정근이 패러디한 것인지 모르고 그냥 일반적인 북한 삐라인 줄 알았으니까요.

재미있게도 검찰이 자료로 보여준 증거자료는 증인이 말하는 것들과는 꽤 달랐습니다. 증인이 말한 자료는 긴 배너모양으로 되어있고, 단일한 인공기 비스무리한 그림이라 했는데, 검찰이 확보한 자료는 모자이크로 되어있는 것이었으니까요.증인은 이후에도 제시하는 자료에 대해 경찰에 신고를 했으니 그 자료를 확인하면 된다는 식으로 동일한 진술만 반복했습니다. 답답할 정도로요. 인공기 비스무리한 것이라 진술했는데 정작 본인은 소련의 국기와 북한의 국기를 구별하지 못했지요.(어느 것이 인공기인지도요.)

저는 검찰이 증인이 계속 말하는 ‘경찰이 확보한 증거’를 왜 제시하지 못하는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사전에 제대로 준비를 안한건가 싶기도 하고요. 또는 시일이 지나 증인이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냐면 한예종에 부착된 게시물은 박정근이 부착을 했을테고 그렇가면 퍼포먼스의 일환이었을텐데 퍼포먼스라는 점을 알아채지 못할 성격의 게시물을 붙였겠는지 의심스러거든요.


이 때 박정근은 손을 들어 무언가 말하려고 하였고 판사에 의해 제지당한 후 주의를 받았습니다. 이 광경이 꽤 재밌더군요. 두가지 측면이었는데 하나는 얼마 전 화제가 된 석궁 사건의 김명호가 생각이 나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박정근 씨의 성정이 어떤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손을 들어 허가를 받고 발언을 하려한 행위임에도 이것이 재판에서 합당하지 않은 행위이기에 판사에게 제지를 받고, 변호사와 상의 후에 행동하라는 주의를 받았습니다. 재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본인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행동이기에 납득이 가는 주의였습니다. 박정근도 이후 그 주의에 따라 행동을 하였고요. 박정근과 달리 김명호는 재판의 과정이나 절차를 무시하고 돌출행동을 수시로 했다는데 판사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짐작이 가더군요.

보통의 경우라면 즉,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있고, 구속까지 됐고 재판이라는 것이 낯선 상황에선 이런 돌발행위를 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을텐데, 박정근은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쉽게 갈 수 있음에도, 즉 자신이 했던 북한에 대한 비판을 증거로 제시하지 않을 정도로 소신이 있고, 홍세화 대표에게 죽은 말을 사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의 사람이 박정근이었다는 점을 새삼 이때 되새겼습니다.


그 정도의 사람이기에 여기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도 있는거지요. 


박정근은 자신이 부착한 게시물이 어떤 의미를 띄고 왜 그것을 부착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고 변호인단에게 말했습니다만 변호인단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그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증인 심문이 아닌 다른 지점에서 발언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번째 증인은 검사측 심문과 변호인측 심문 모두에 자신이 신고한 게시물의 내용은 뚜렷히 기억이 안나고 인공기 비스무리한 것이 있었다고 반복 진술하며, 경찰이 확보한 증거를 찾아봐라고만 계속 진술했습니다. 앞서 제가 기술했던 내용이지요. 듣다보니 조금 답답하더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증인은 대체 왜 불렀는지 모를 증언만 반복했습니다. 아마 증인은 평일 오후에 자신이 왜 여기있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단순히 '인공기 비스무리한 것'을 신고한 것이 박정근 구속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까요? 


기대했던 부분은 이때 나왔습니다. 변호인단이 증인에게 피고 박정근이 이러이러한 트윗-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같은-을 하는 사람인 것을 아냐고 하면서 박정근이 게시한 일련의 트윗들을 낭독한 것이지요.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과제 때문에 온 것 같은 대학초년생으로 보이는 이는 아주 까무러치려고 하더군요.  저는 검사와 판사의 표정에 주목을 했습니다만 이미 일전에 이런 트윗을 들어서인지 별 변화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두번째 증인은 다음까페 '아좋사"라는 곳의 관리자였습니다. 


아좋사에 올라온 게시물의 내용은 저는 남파공작원입니다 같은 일종의 농담에 가까운 게시물이었습니다. 어떤 멍청한 간첩이 직접 이런 게시물을 올릴까는 의문이 들었는데 신고정신 투철한 어느 분께서 신고를 하고 증인은 그에 관련된 경찰우편조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증인의 진술을 들으니 대체 왜 증인을 부른건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경찰수사보고에 의하면 증인이 직접 113에 신고했다고 하지만 증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증인은 박정근의 게시물을 본 적도 없다고 했고요. 즉 증인도 아니고 게시물 삭제 권한을 가진 사람도 아닌 제 3자가 신고를 했다는 말입니다. 신고도 안했고 게시물을 본 적도 없고 평소 관리도 잘 안하는 사람을 가지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재판정에서 박정근의 '불온한' 표현들이 낭독되자 박정근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말하려 했으나 판사에게 또 지적을 당했습니다. 변호인단을 통해 얘기한 내용은 아좋사에서는 평소에 문제되는 표현들을 국정원에 신고하는 사람들이 꽤 빈번했던 모양이고 박정근은 이러한 일 때문에 해당 게시물을 올렸다고 합니다.

아좋사에 올라온 박정근 게시물은 증인도 아니고 관리자인 다른 사람도 아닌 제 3자에 의해 삭제가 되었다고 했고요. 과연 누가 삭제했을까요? 그리고 정작 신고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별 상관도 없는 관리자를 부른 것일까요? 아마  관리자가 해당 게시물을 봤다고 생각하고 증인으로 요청한 것이겠죠. 


별 영양가 없는 두 증인의 증언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미디어에서 보는 것처럼 검사가 철두철미한 사람이 아니구나하는 것을요. 오히려 업무에 허덕여 중요한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증인을 불렀다는 점입니다. 물론 과다한 업무 속에서 이 재판만 특별히 챙길수만 없겠지만, 검사입장에서야 많은 재판 중 하나의 재판에 지나지 않겠지만 피고에게는 인생이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 그럼 검사가 다음 재판에 부를 증인으로 누구를 요청했을까요? 박정근이 고무,찬양했다고 확신에 차서 신고한 아좋사의 회원? 아닙니다. 수사보고서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기에 박정근을 수사한 경찰을 증인으로 요청했습니다. 변호인측에서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증인신청에 대해서는 이후 협의를 걸치기로 했습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에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습니다. 공소장에 나온 증거로 박정근의 트윗과 우리민족끼리의 사이트 내용을 동시에 분석을 해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박정근과 변호인은 이 사이트를 볼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적단체의 사이트니까요. 이에 검사는 프록시나 다른 방법을 통해 우회해서 볼 수 있기에 포함시켯다고 했습니다. 변호인단은 그 가능성 때문에 증거로 포함시켰다고 묻자 검사는 여기서 그에 대한 자세한 답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하더군요. 


실제 북한에 대한 고무찬양도 아닌 포스터로 패러디한 게시물이 북한에 대한 고무찬양으로 신고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한예종의 관리자분이지만 인공기가 소련기인지 북한의 국기인지 제대로 구별을 못하는 분이니 붉은 것이 보이고 패러디나 퍼포먼스란 행위를 이해못하면 신고야 가능하겠지요. 

대형 까페에서 국정원의 절대시계를 얻기 위해 빈번히 신고가 들어와 그 행태를 보고 화가 나서 남파공작원입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어도 역시 신고가 됩니다. 아마 신고한 제 3자는 재판정에 있기는 커녕 그 시각에 볼 일을 보고 있겠지요.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고 어떤 여파를 끼쳤는지 알긴 할까요?


이글루스에 김슷캇이란 사람이 올린 북한 관련 패러디 역시 몇몇 이들에 의해 국정원에 신고가 되었더군요. 패러디란 점을 이해할 생각도 안하고 일단 신고부터 하더군요. 신고 정신 투철한 분이 참 많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알 것입니다. 박정근이나 김슷캇이 진짜 간첩이 아니라는 점을요. 누군가의 악의 때문에 박정근이 이런 고초를 겪고 있다 생각하니 맘이 편치 않더군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덕에 그런 신고 역시 안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쳤고요. 정작 악의에 찬 이들이 아닌 엉뚱한 증인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한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고 고통을 겪고도 있고요.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생각하면 식은 땀마저 납니다. 낭떠러지에서 사력을 다해 바위를 막고 있는데 이 악의들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지요.




재판이 끝나고 나오는 박정근의 표정은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다행이더군요. 아- 짜증나에 가까운 표정이었지만요. 국보법 폐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뭐 아는 것이 있어야죠. 그러나 북한을 실제로 고무 찬양하지도 않고 장난으로 올린 게시물을 국보법 고무찬양죄로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검찰의 무성의하고 의도적인 기소는 절벽으로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또 악의어린 장난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틀릴 수도 있게 만들고 있는 현장을 다녀오니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박정근의 무죄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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