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를 판단하는 이중잣대에 대한 생각

2012.03.21 09:46

DH 조회 수:1176

이중잣대라는 것만큼 사람을 비판하기 좋은 수단도 없는 것 같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사안에 대해 이리 저리 말이 바뀌는 모습은 공격하기 정말 좋은 먹이감이죠. 김희철, 이정희 경선 사건이 계기가 되어 쓰는 글이지만 이 글에서는 둘 중에 누구를 편들거나 이정희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출근길에 통진당 서기호 판사의 트윗을 보면서 "좀 시끄럽겠구나" 했는데 역시나 듀게에 올라와 있네요. 근데 사실 지금으로서는 서기호 판사가 딱 할만한 말입니다. 서기호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졌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판사 출신으로 통진당 비례대표에 올라있는 사람으로서는 최선의 멘트라고 생각해요. 가장 엄격한 판단을 요하는 형사재판에서도,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판단이 그때 그때 다릅니다. 유무죄를 엎어놓기는 어렵지만(이정희측이 잘못이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지만), 징역 10년을 때리기도 하지만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내리기도 하죠(이정희 사퇴를 주장할 수도 있지만 사과과 재경선 정도로 만족할 수도 있죠). 그런 체계에서 10년을 일한 사람이 그 기준으로 이 사태를 보면서 그런 멘트를 날리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서기호의 저런 사고방식이 과연 비판받아야 할 이중잣대냐, 합리적인 판단이냐 이거겠죠. 사실 동일한 사안이라도 그 일을 한 사람의 그 동안의 삶의 행적을 고려하여 결론을 내야 한다는 것 자체는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법원에서도 수십년간 적용한 양형기준이지만 그 자체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별로 없었고요. 구체적인 적용에서 "재벌 회장으로서 경제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집행유예" 이렇게 써먹을 때는 비판이 있었지만, 적어도 판결에서 그 사람의 과거 성장 배경, 동종 전과 여부, 범행 동기, 범행 후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은 별로 못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왜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한 비판과 옹호에서는 그놈의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그렇게 쉽게 등장하는지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비판은 도저히 합리적인 감안 요소가 아닌 것이 등장하거나(잘생겼으니까 등),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결론을 낼 때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기타 요소를 감안하는 기준과 수준마저도 사람마다 다를테니, 이런 문제에서 의견 통일이 있을 리는 없지요. 이번 이정희 건만 해도 "선을 넘었다" 와 "안넘었다"가 첨예하게 대립하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이중잣대라는 비판은 비슷해 보이는 사안 두 개에 한 사람이 반응을 보인 글 두 개를 캡쳐해놓고 "님 이중잣대 쩌내요 ㅋㅋ" 하고 비아냥거리는 수준보다는 훨씬 어렵게 등장해야 하는 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솔직히 개인적 커밍아웃을 하자면 그런 이유로, 비슷한 스캔들이 터져도 새누리당 인물들보다는 기타 진영 인물들에게 좀 더 관대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곽노현 교육감때도 그렇고, 이번 이정희 대표 건에도 그렇고, "도덕성 따윈 개나 줘버려라" 라거나, "깨끗한 진보 주장하는 니네들끼리 평생 진보 해봐라. 난 진보 안할란다." 라는 식의 반응은 좀 무섭네요.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이 "새누리보다만 나으면 된다"라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저건 좀...

 

p.s.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굳이 덧붙이자면, 이정희의 즉각 사퇴를 주장하는 분들이 고려 요소를 제대로 안챙겼다는 비판은 아닙니다. 지켜보니 그 분들도 과거 민노당 때부터 이정희과 그쪽 주류 세력들에 대해 충분히 과거 이력을 고려하고 판단하고 계시는 것 같으니까요. 반대쪽은 그것보다는 그래도 18대 국회에서 보인 실적을 더 높게 치고 있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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