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갖출 수 없고, 서로 상충하는 것들도 있지만, 여러 개를 갖출수록 유리한 것 같기는 한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선거 결과 보고서 좀 멍해져서...

 

1. 공부 잘함

 

전국에서 300명밖에 없는, 사회 지도층을 뽑는게 선거이다보니, 아무래도 똑똑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똑똑한지 어떻게 아느냐? 성적 보는 거죠. 서울대 나왔는지? 유학 갔다 왔는지? 박사인지? 고시 붙었는지? 등으로.

 

이번엔 불출마했지만 홍정욱 하면 떠오르는 건 하버드 우등졸업이죠. 잘생긴 외모에다 우등생 이미지로 승부해서 의원직을 따냈고요. 이번 총선에서 강남 벨트에 출마한 민주당 인사 중 선전한 천정배 역시 덕을 봤다면 봤겠죠. ‘목포의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 사람인데다, 서울 법대에, 사법시험 합격에, 법무부장관. 민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으로 정치입문을 했다면 강남에서 길이길이 잘먹고 잘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2. 개천에서 나온 용임(개천보다는 용이 중요)

 

사람들 드라마 좋아하죠. 보통 사람 같았으면 좌절해버릴 위기를 겪었는데 그걸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고 더 잘 나가게 도와주고 싶어집니다. 좀 더 나아가면 저 사람이 사회지도층이 되면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열릴 것 같죠. 저 사람이라면 그런 사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 같고. 가난이건, 바닥권 성적이건, 하여간 사회에서 별로 잘 나가지 못하는 나와 비교할 때, 저 사람도 나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건 친밀도 상승의 계기가 됩니다.

 

그러니 경기고-서울대-사법시험-대법관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회창마저도 대선 주자 시절에는 아침방송에 나와 “시험을 너무 못봐서 가출했는데 금방 잡혀왔다. 그때 아버지께서 따뜻하게 위로해주셔서 눈물났다. 더 열심해 해서 성공했다.” 뭐 이런 이야기 하는 거겠죠. 지금도 궁금합니다. 과연 얼마나 못봤는지. 2등했다고 가출한건 아니었겠죠?

 

근데 사람들이 드라마 좋아하려면 확실히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드라마에서 개천 출신 용이 개천 돌아보던가요? 오히려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과거가 발목을 잡을까봐 과거를 부정하는 데에 더 노력하던데요.

 

3. 유명함

 

인지상정이다 싶으면서도 다소 비이성적인 지표로 느껴지는, 유명세입니다. 아무래도 갑돌씨보다는 유명인사가 우리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잘 알 것 같죠. 사실일 수도 있는데, 왜 유명하냐도 잘 따져봐야 하는데 그게 부실한 것 같아요. 이러니 정치인은 부고 기사 빼고는 신문에 나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좋다는 말까지 나오죠. 이번에 등장한 신인으로 치자면 문대성 같은 경우인데,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로 유명하고, 당시 극적인 승리로 사람들에게 이미지가 좋긴 한데, 입법기관으로서 무슨 실력을 가졌는지, 누구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건지 영 모르겠습니다. 태권도협회회장 선거라면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유명하니까 먹고 들어가는 면이 있죠.

 

강용석이 승부를 걸었던 곳도 이 분야가 아닌가 싶은데... 과유불급.

 

4. 착함

 

사실 내놓고 악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일단 착해야죠. 이 사람이 당선되서 안면 몰수하고 나같은 서민을 죽이려고 들 것 같다거나, 그동안 살아온 행적이 온갖 악행으로 가득차 있다면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착함’이 정치에서도 ‘착한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환상은 매우 강합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정당정치에서 한계도 분명하죠.

 

5. 돈 벌줄 암(돈 많음)

 

유명함과 함께 헛갈리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사장이 아니라 정치인을 뽑는게 선거인데, 희한하게 돈 많은 사람을 좋아해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이런 엉뚱한 기대가 있습니다. “저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니 최소한 뇌물은 안먹겠지.”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측근들도 다 부자일까요?

 

최근 들어 이 지표가 더 뜨는 이유는 삶이 팍팍해서겠죠. 특히 물려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벌어서 돈이 많은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이 정치인(특히 대통령)이 되면 나라 곳간도 가득찰 것 같다”는 기대가 드는 것 같습니다. “잘살아보세”의 후유증이랄까...

 

특히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 일반 회사 대리, 과장 출신일 리는 없고, 기업 오너였거나 최소한 월급사장까지는 간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기대도 있죠. “개판으로 썩어버린 정치 지형에 이 사람 같은 민간 기업 사장 출신이 들어가면 개혁이 일어날거야. 구조조정 되겠지?” 정치는 기업 경영이 아니라고요 ㅠㅠ 대통령도 국회의원 못짜릅니다 ㅠㅠ

 

6. 권력 실세이거나 실세와 친함(하다못해 고향이라도 같음)

 

선거가 지역 단위로 이루어지다보니 각종 공약이 지역 위주로 나옵니다. 근데 그거 다 돈이죠. 지역에 돈이 없으면 중앙정부에서 끌어와서 써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여당 후보가 목에 힘을 줄 수 있죠. “나 대통령이랑 같은 당임. 더 나아가 나 대통령이랑 친함. 내가 청와대 가서 ‘아이고 형님 좀 도와주세요’ 하면 대통령이 우리 지역에 돈 쏴줌. 야당후보가 대통령이나 장관한테 돈 달라고 하면 주겠음?”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이지 지역 민원 해결 창구가 아닌데 참 많이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죠. 이기적이라고 욕할 수 있지만.. 또 어찌 보면 인지상정 같기도 하고... 전에 포항 분을 만나 이야기 하면서 현 정권을 겁내 씹어봤는데 그러시더군요. “민주주의, 사회정의 뭐 그런 측면에서는 니 말이 다 맞는데... 그래도 우린 어쩔 수가 없다. 어쨌건 이 정권 들어서서 우리 지역에 예산도 늘고 돈이 풀려서 경기가 살았어. 우린 그냥 그게 중요해.”

 

7. 거악에 맞서 싸운 경력이 있음

 

과거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기반은 ‘반독재’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독재 타도 투쟁을 해 온 사람들이기에 나에게 권력을 달라고 할 자격이 있었지요. 독재가 무너진 후에 대혼란이 온 상황이 지금이라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잘못 풀린 자본주의’가 거악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사람들이 여기에는 싸워야 되는지 아닌지 자체를 좀 헛갈리고 있죠. 꼬라지는 나는데 왠지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 저거 잡겠다고 들면 나라가 전반적으로 다 가난해져서 거지꼴이 된다고도 하니. 그래도 삼성 등 거대 재벌과 맞붙어 쫄지 않고 싸운 경력은 나름의 지지자 확보 기반이 됩니다. 이번에 당선된 노회찬, 심상정이 대표적이겠죠. 학력이 별로거나, 돈 많이 벌어본 경험이 없어도 롱런하는 정치인들은 대개 이 분야에서 승부를 봅니다. 노무현 역시 3당 합당 같은 야합정치, 지역감정, 조선일보 등과 매일 지면서도 매일 싸운 경력이 결국 대선에서는 도움이 되었지요.

 

새누리당에 대해 그닥 안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새누리당 정치인을 지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게 원인인 경우가 많죠. 이재오, 김문수 등. “그래도 그 사람 예전에 민주화 운동 하다 고문도 당하고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이야.”

 

8. (이유가 뭐가 됐건) 깨끗한 이미지를 가짐

 

지금 다소 멀리 가버렸지만 오세훈을 생각해봅니다. 변호사, 그것도 티비에 많이 출연한 변호사 출신이라는 배경 자체가 일단 깨끗한 이미지를 줍니다. 게다가 당선된 후에도 이런 저런 사유로 금뱃지가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는 현재의 공직선거법을 만든 주인공이 국회의원 시절의 오세훈이라지요? 이른바 오세훈법이라나... 92년 대선에서 다크호스 역할을 했던 박찬종 역시 이 이미지가 있었고요.

 

 

쓰다보니 지치네요. 선거가 끝난 마당이라 이런 이야기 할 타이밍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휴...

 

써놓고보니 안철수 대세론이 뜰만도 하긴 하네요. 1, 3, 4, 5, 8에 해당 ㅎㄷㄷ 근데 박근혜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조건들이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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