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는 지난 주말에 봤는데, 정말 좋았어요ㅠㅠㅠ 

여자친구랑 극장 문을 나서면서 헤어질 때까지,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카톡으로 한참을 그 영화 얘기만 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거의 강박스러울 정도의 형식적 완성도, 죽음을 목전에 둔 노년의 사랑을 담은 내용, 모든 게 다 좋았습니다.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첫 손에 꼽을 만한 영화였습니다.

회원리뷰 란에도 뻘감상을 썼으니 아무르 얘긴 이 쯤 하고...




그에 반해 레미제라블은 실망스럽네요.

책도 완역본으로 다시 읽었고, 10주년, 25주년 콘서트 영상도 뻑하면 돌려 보면서 기대감을 키워 오기도 했고, 얼마 전에 여자친구한테도 콘서트 영상들 보여주면서 호들갑 떨고 그랬는데... 

오늘 크리스마스 데이트의 마무리로 탁월하겠다 싶어 미리부터 예매해 놓고 오늘만 기다렸는데, 그 기대감이 큰 실망으로 돌아왔어요.


제가 뮤지컬은 보지 못하고 콘서트 영상만 봤는데, 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품었던 우려대로 진행이 너무 빠릅니다. 대여섯 권 짜리 원작을 세 시간 짜리 뮤지컬이나 영화 한 편에 우겨 넣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큼지막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대고 그에 따라 작중 분위기나 인물들 감정도 휙휙 바뀌니까 무지 산만하네요. 그나마 노래들이 훌륭하게 감정선을 잡아주긴 하지만 역시 역부족이고요.


원작 소설에서는 꽤 오랜 시간을 두고 그 발전 양상을 보여주는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도 여기선 처음 보자마자 반해서 안달복달하고 'A Heart Full of Love' 부르고 앉아있으니, 앙졸라가 어이상실할 만도 하겠다 싶었어요. 마리우스는 그 다음에도 에포닌이랑 'A Little Fall of Rain' 부르고 바로 몇 분 만에 'Drink with Me' 부르며 코제트 타령하질 않나, 'Empty Chairs and Empty Tables'에서 울먹이며 노래하더니 바로 다음 장면에서 코제트랑 사랑을 속삭이고 장 발장 고백 듣고 좀 갈등 때리다 바로 결혼해서 헤헤거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또 진지해지고... 무슨 환자 같아 보일 정도였어요ㅜㅜ 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이야기, 테나르디에와의 인연과 그에 따른 내적 갈등 등은 죄다 생략돼서 그냥 마리우스 캐릭터 자체가 심하게 가벼워졌더라고요. 


또 다른 예로, 소설에서는 장 발장이 팡틴의 죽음 이후에 일 처리 어느 정도 끝내고 자베르에게 잡혀간 뒤 다시 수감 생활을 하다가 노역 중 선원 한 명을 구출하고 자살을 가장해 탈출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그 후에야 코제트를 데리러 가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선 이 내용을 압축하느라 장 발장이 코제트만 찾고 순순히 잡혀줄 것처럼 자베르를 속이고 뒤통수치는 식으로 각색이 돼서 장 발장의 우직한 캐릭터나 자베르의 내적 갈등 등이 상당히 희석됐어요. 이 밖에도 캐릭터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아쉬운 게 사실이네요.


무대 위에서라면 무리없이 넘어갔을 상황의 압축이 스크린 위로 옮겨지니 영 거슬리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듀나 님도 말씀하셨지만, 'Who am I' 한 곡에서만 장 발장이 노래하는 배경이 서너 번은 바뀌는데, 무대에서라면 그냥 집 세트에서 재판장 세트로 걸어가는 정도로도 충분했을 테고 전혀 거슬리지 않았겠지만, 영화판에선 일일이 커트가 들어가며 장면의 변화를 짚어주니까 엄청 급하게 전개 빼는 것처럼 보여서 보는 제가 다 체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게다가 톰 후퍼의 연출은, 이 양반이 '킹스 스피치(전 못 봤습니다만.)'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그것도 그 쩔었던 '소셜 네트워크'로 후보에 오른 데이빗 핀처까지 밀어내고 수상했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단조롭더군요. 이 인간 무슨 클로즈업 강박증 걸렸나요?? 그리고 수시로 맥락도 없이 인물을 프레임 한쪽으로 몰아세우던데 그것도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클로즈업과 롱테이크가 'I Dreamed a Dream'이나 'On My Own' 같은 데선 진짜 적절하게 맞아들어가서 최상의 효과를 내긴 했지만, 그걸 자꾸 남발해대니 나중엔 그 효과도 반감되고, 연출의 단조로움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가교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작은 곡들이 나오는 부분에선 상당히 지루해지더라고요. 그리고 'One Day More' 같은 곡도 꼭 그렇게 클로즈업 남발로 처리했어야 했는지... 여러 명이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의미로 부르는 노랫말들이 한 데 뭉쳐져 시너지를 내고 폭발하는 그야말로 명곡인데, 모든 인물들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각 소절마다 커트 커트 해 대며 인물들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니까 산만하기 짝이 없고 노래의 맛도 다 죽어요... 그나마 막판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그 짓 덜 해서 살린 것 같아요. 아참, 자베르 xx 장면 연출은 그게 뭔가요...;;; '퍽' 할 때 산통 다 깼습니다.


그래도 빅토르 위고가 쓴 이야기의 힘과 뮤지컬 명곡들의 위엄 덕에 기본은 합니다. 곡 몇 개가 생략되거나 줄기도 했고 순서가 바뀌기도 했는데, 'Master of the House'나 'Bring Him Home' 등에서 곡 해석이 좀 요상해뵈긴 했지만 대체로 크게 거슬리지 않았고, 'Lovely Ladies'랑 'I Dreamed a Dream' 순서 바꾼 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에필로그에서 팡틴, 에포닌 등장을 팡틴, 주교 등장으로 바꿨던데 팡틴과 에포닌의 이중창을 못 듣는 건 아쉬워도 전개 상 이치에 맞는 건 아무래도 바뀐 쪽이겠죠. 배우들도 기본은 했어요. 사샤 바론 코헨과 헬레나 본햄 카터의 테나르디에 부부가 미스캐스팅인지 연기 지도 문제인지 몰라도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고, 러셀 크로우가 풍채에 맞지 않는 노래 실력을 보여서 자베르 노래 부분이 대체로 좀 별로였긴 했지만... 그래도 뭐 나쁘진 않았어요. 그리고 앤 해서웨이의 'I Dreamed a Dream'은 진짜 끝내주더라고요. 이 영화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부분 같아요. 그 밖에도 오리지널 장 발장 콤 윌킨슨(비앵브뉘 주교 역), 오리지널 에포닌(창녀 역, 목소리 진짜 튀어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ㅠ), 25주년판 그랑테르 해들리 프레이저(진압군 대장 역) 등의 깨알같은 출연도 좋았어요. 문제는 제가 이 이상을 기대했다는 거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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