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먹이사슬의 오묘함

2012.05.11 19:20

아침 조회 수:2975

그 나이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 저희 아빠도 엄마에게는 꽤나 권위적이십니다.

엄마를 암만  밥셔틀 겸 수하부하로 부려도 유분수지 정도가 너무 심하다 싶어 화가 치밀 때가 아직도 종종 있습니다.

자세한 일화는 생략.

 

하지만 저에게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단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대놓고 야단맞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빠를 대놓고  야단 친 적이 없으니까 이건 쌤쌤이라 하겠습니다 ㅋ)

최근에 제가 격무에 시달려서 퇴근 후 거의 기절상태로 지내자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려주시는데 정말 맛있습니다!!!

엄마의 전언에 의하면 맛의 비밀은 아낌없는 조미료 투하라고 하는데 어쨌든 정말 맛있습니다.

다 늙은 딸이 끝내 시집 못 갈까봐 전전긍긍 남편감을 물색하고

누가 봐도 제 취향이 아닌 남자를 매우 조심스럽고 끈질기게 권유하는 모습을 보면 참 귀엽고... 번거롭습니다.ㅋ

젊은 시절 많은 물의를 빚었던 아빠가 종교에 귀의하면서 급 가정적으로 변하여 뒤늦게 딸바보 포텐을 터트리는 걸 보면 이러다 저도 효심이 싹트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엄마한테는 제가 요즘 찬밥입니다.

원래 제 포지션이 "친구 역할에 가끔 엄마의 엄마 역할까지 겸하는 딸"이었는데

요즘 올케한테 완전 밀렸습니다.

뭐, 저도 올케 좋아합니다.

저와는 달리 어른들께 살갑게 구는데다 천성이 여유롭고 순해서 제가 봐도 귀엽습니다.

이러니 당신 아들과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주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눈에는 얼마나 이쁘고 고맙겠습니까.

가족 모임에서 제 입에서 "맛있다" 소리가 나오는 반찬이 있으면 냉큼 들어서 (심지어 뺏어서) 며느님 앞에 갖다 바칩니다.

반응속도로 봐서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동반사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살~짝 고부갈등이 일어날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더욱 며느님을 더 잘 모셔야겠다고 각오를 다지게 된 듯 합니다. ㅋ

 

 

근데 이 며느님은 고맙게도 오빠를 참 좋아합니다.

물론 오빠가 가정적이고 올케한테 잘 합니다. 올케를 정말 사랑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올케가 엄청 잘 나온 오빠 사진을 보면서 "원래는 이것보다 더 잘 생겼는데 오늘은 못 나왔다"고 속상해하는 걸 듣고

뭔가 굉장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그건 마치..오빠가 올케는 차가운 걸 잘 못 만져서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캔 음료를 못 들고 있는다는 얘기를 엄청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을 때 느꼈던 그런...

음, 그러니까 뭐지, 어 그래, 신고 버튼!

 

하지만 슈퍼 갑은 조카애기입니다.  

이건 뭐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그 분의 미소와 울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슈퍼 을이 됩니다.

걍 그 분은 그런 분이에요.ㅎㅎ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하도 심심해서 기나긴 바낭을 해봤습니다.

주말에 조카 얼굴 볼 생각이나 하면서 다시 일 시작해야겠네요.

그리고 돈 벌어서  늙어가는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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