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다 [딴지일보]

2012.12.26 22:33

흐흐흐 조회 수:2683

JOLA SURIJUNG
현재 딴지일보 상황입니다

http://www.ddanzi.com/blog/archives/115680

링크 눌러봐야 아무것도 안나와요

다 끝나긴 했지만 한 번 복기하는 차원에서

글도 재미있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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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아빠다.

 

나 이는 삼십대고, 장미란 같은 세 살 박이 공주님을 둔 행복한 아빠다( ㅠㅠ 야호~ ). 난 춘심횽아처럼 앞뒤 없이 속을 다 까는 일은 않을 꺼다. 사람은 항상 뒷쿠를 봐야 하니까. 그저 부모 잘 만나 타국에서 학생을 가장한 백수짓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정리를 해 두자.

 

딴지일보라는 미친종북좌파빨갱이편파 사이트에 외부필진이라는 따까리로 글을 쓴지도 1년이 지났다. 대망의 대선을 앞두고 우리가 처한 퐌타스튁한 상황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고자 한다.

 

말했듯이 나는 아빠다.

 

것 도 그냥 아빠가 아니라, 대한민국 3대 수드라 신분 중 하나인, 군바리 바로 위인 나이든 학생이다. 아빠도 급이 있다. 딴지 일보에 절찬리에 연재됐던 정우성님이 쓴 ‘나는 아빠다’에 나오는 정도의 아우라를 가지려면, 직업도 변리사 ‘쯤’ 되어줘야 하고, 집도 있고, 차도 꾸질하지 않은 걸로 제법 굴려야 어디 가서 아빠 소리를 낼 수 있다.

 

 

나 처럼 허구한날 체인이 벗겨져, 열쇠도 없이 길가에 대어놔도 거들떠도 안보는 자전차가 애마인 뚜벅이 족은 ‘너도 아빠냐’는 시시때때로의 존재적 도전에 직면한다. 다행히 머나먼 타국에서 그나마 아빠인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당근 내 팔팔한 XY의 파트너가 되어준 훌륭하신 친구님의 XX 염색체 덕이기도 하거니와 올 초 졸업한 친구님이 집안의 생계의 상당부분(최근은 사실상 전부)를 이끌어 나가시는 덕이기도 하다.

 

내 가 원하지 않은 임신 축복받은 아빠가 되게 된 것은 불측의 사고 때문이다. 뭐 3%의 그 된장 맞을 확률에 걸렸냐, 콘돔이 불량이었더냐, 콘돔회사에 소송이라도 걸지 그랬냐, 게서 지랄 맞은 호들갑을 떠는 너네들, 마 – 다 – 내 잘못이다…

 

하 지만, 나 남자다. 절대 캐나다서 태권도장을 하고 있는 둘째 처남이 무서웠다거나, 용인대 유도과 졸업생으로, 국대 출신 친구들이 즐비한 막둥이 처제가 무서워서 이런 결단을 내린 거 아니다. 목회하시는 장인이 새벽마다 새벽기도로 저주를 내리시는 걸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남자는, 마, 책임, 그러타, 책임으로 말하는 거다.

 

비 행기 티켓팅부터 재입국까지 3주가 걸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일정 속에,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했고, 다시 타국으로 잘 돌아왔지만, 문제는 예서부터 발생했다. 반대를 무릅쓴 결혼에 대한 보복으로 집에서부터 지원이 딱 끊긴 거다. 아예 전화도 안 받으신다. 결혼은 시켜줬으니, 이제 내 자식 아니라는 거지. 냉정하시데. 뭐, 쿨 하게… 여러 번 빌고 전화로 통사정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해서 타의로 독립을 선언하게 된 거다.

 

졸 업을 반년 남겨둔 친구는 계속 학교를 나가야 했고,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 휴학을 한 채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정규 일자리는 세금, 아, 그놈의 세금. 56만원까지는 세금이 안 깎이고 57만원부터는 세금이 많게는 1/4가량 떼이는 이 부조리가 믿기는가. 결국 어둠의 일자리를 찾아, 탈세로 탈세로 향해야 했다.

 

그 와중에 친구는 졸업하고 출산은 다가오는데, 어쩌냐. 당장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데.

 

 

친 구가 학생 때 들어둔 7만원 짜리 학생의료보험 하나만 믿고 무턱대고 지역 가족청을 찾았다. 진짜 안 도와주면 배라도 까뒤집고 누울 생각이었다. 근데 웬걸 – 날 한번 흘겨 본 가족청 직원이, 내 소득상황만 체크하더니 몇 마디 물어보는 것도 없이 도장 쾅~ 찍고 ‘며칠 있다 쏴 주께’로 끝내는 거 아닌가.

 

그 리고 며칠 뒤, 거짓말 같이 300만원이란 거금이 입금됐다. 한 달을 2.5명이서 20만원으로 날 때였다. 내 은행계좌 내역을 보여주고, 서류 한 두 장 쓴 게 단데, 난 세금도 여지껏 십 원도 안냈는데, 걔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내 이름도 발음 못하는데, 난 외국인인데… 내가 ‘아빠가 될 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300만원을 그냥 쏴 준거다.

 

300만원의 세목을 보니, 한술 더 떴다. 지나가듯이 말한 최근 우리가 이사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이사비용지원에, 아이방 도배비용, 아이유모차 비용까지 산정되어 가산되어 있었다.

 

허 – 이런 징하게 알흠다운 놈들.

 

출산에 닥쳐서는 더했다.

 

출 산하고 싶은 병원을 미리 선택해, 편한 시간에 견학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담당 산부인과 과장이 나와 출산과정과 출산방법을 설명해 주며, 수술실, 회복실 하다 못해 구내 식당까지 투어를 시켜 줬다. 막상 일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한번 투어를 돌고 나니, 스타를 복기하듯 시뮬레이션을 한번 돌려볼 수가 있어 마음이 편했고, 친구는 그런 날 보며 든든해했다.

 

다 들 아이 분만은 어떻게 하셨나? 차가운 수술실에 올라가 다리 벌리고 있는 산모를 보며, 캠코더를 든 손을 같이 덜덜 뻘며 그 과정을 향유하셨나? 우린 자유분만과 수중분만을 섞은 혼합분만을 했다. 한국에서 수 백만 원을 한다는 그 수중분만을 폼 나게 한번 우리도 해 보고 싶었지만, 감염의 위험이 희박하나마 있다는 걸 어디선가 본적이 있어 – 아 이 저주받을 잡식의 박식 스러움 – 그냥 안전한 혼합분만을 택하기로 했다. 친구님은 장차 집안의 기둥이니까.

 

 

혼 합분만은 뭐, 별거 아니다. 유도분만제 맞고 시간되면 다짜고짜 수술대 위에 올라가 다리 벌리고 눕는 게 아니라, 산모가 충분히 출산의 준비가 될 때까지, 욕조에서 긴장을 이완한 채 전문 조산원과 준비를 하다, 충분히 자궁이 열리면 출산실을 옮겨 출산을 하는 거다. 초산에 한껏 긴장해 있던 친구도, 촛불로 은은하게 유지되는 조명 속에, 욕조에 몸을 누이고 허브향을 맡으니 한결 덜 고통스러워했고, 야릇한 분위기 속에 아시아 여자 하나, 서양 여자 하나와 같이 욕조 옆에 있는 이 생경한 경험에 나 또한 뭐, 뭐, 굳이 표현하자면 Not Bad 였다. 남은 출산과정은 출산용 침대 근처서 앉았다, 누웠다, 일어섰다, 엎드렸다 하며, 힘을 줬다 뺐다 하는 과정인데, 진짜 똥쌀 힘까지 다해 아기를 낳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같이 힘을 주다 나도 약간 지린 것 같았는데, 이건 뭐 떠올리기 싫은 경험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여 하간 출산과 연계되어 제공되는 프로그램으로, 예비 엄마아빠의 출산교실, 출산 후 산모의 체형관리 교실, 출산 후 전문 산후조리원의 가정방문 도우미 서비스 및 출산과 관련된 입원비 등 모든 제반비용과 아이의 생후 3년간에 걸친 예방접종 그리고 진료시의 치료비 등 까지 이 모두 월 7만원씩 내던 친구의 학생의료보험 안에서 해결이 됐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할 판국에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물망을 내려주신 거지.

 

 

지금? 지금은 어케 사냐고.

 

다 행히 잘 키운 와이프 하나가 졸업을 무사히 하여 열씨미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 난, 우주경제를 걱정하고 있고. 근데 친구님이 아직 취직을 하신지 얼마 안되셔서 비정규직인데다 월급도 실하지가 못하다. 얼추 맞추면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될려나. 이걸로 우리 3식구가 한 달을 나야 하는 거다.

 

집 값으로 매달 70만원, 가족 보험비로 17만원, 전기세로 13만원 정도에다, 각종 통신비로 10만원 정도 나가고, 아이 유치원비로 매달 40만원 정도 내야 하니 이 정도에서 벌써 구멍이 난다.

 

아 마 소득하한선(월 240만원 소득)으로 분류되어 아이 유치원비가 전액 감면되지 않았다면 살기가 많이 빡빡했을 거다. 다행히 올해부터 3살이 된 우리 장군님은, 3살 이상은 무조건 무상교육이란 규정에 따라 소득과 상관없이 유치원비를 내지 않게 되어 한결 수월해졌다.

 

얼 마 전 유치원 재롱잔치에 갔는데 우리 장군님이 잘 적응을 못 하더라. 딴 얘들은 다들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얘는 그저 먹는데 정신이 팔려 어쩔 줄을 모르더만. 먹을 것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의사소통이 안 되서 ‘따’당하는 건 아닌가 잠시 걱정하다가 장군님 곁으로 가 장군님이 좋아하는 빵들을 슬쩍 내 호주머니에 챙겨왔다.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주변의 조언만 듣고 모국어만 우선적으로 가르쳤더니, 현지어를 이해 못해 못 섞이는 게 아닌가 걱정도 해 보고, 일주일에 한번씩 현지어로 집에서도 대화를 할까 고민해봤는데, 그냥 관뒀다. 걔나 나나 어슷비슷하겠더라고 말하는 건. 그제 학부모 모임에 갔더니, 3살 반부터는 외국아이들의 경우 따로 특별히 언어교육을 좀 더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우리 장군님이 말이 많이 늘었다. 조만간 날 추월하지 싶은데, 그 때를 대비해 군기를 바짝 잡는 중이다.

 

내 년 3월부터는 장군님만 좋다면, 발레학원이랑 악기학원에 보내려고 생각한다. 발레는 지엄마가 O(오)다리라 예방차원에서 내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거고, 악기는 저만 즐거워하면 첼로를 가르쳐 볼려고. 어차피 시에서 1/3을 재정지원 해 주기 때문에 월 5-6만원이면 둘 다 가르칠 수 있다.

 

 

어떠냐.

이 정도면 나름 쓸만한 아빠 아니냐?

뭐?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이런 ‘사회안전망’이 있는 곳을 택해 안전하게 낳아준 게 어디야. 바로 다 내 덕인 거다.

 

올 해에 장군님이랑 친구가 먼저 들어가는 것을 잠시 의논해 본 적이 있다. 절대 두 여자의 감시에서 벗어나 친구들 파뤼에도 한번 기웃거려보고, 말 잘 통하는 러시안 처자들과 밤새워 슈납스도 코 삐뚤어지게 마셔보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저 손녀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시는 애달아 하시는 부모님들과, 장군님의 교육문제 그리고 어차피 삶의 터전이 될 한국에서 미리 준비를 하자는 장래의 진로에 대한 염려 끝에 ‘사심없이’ 한 권유였다.

 

근 데 계산기를 좀 두드려보니 답이 바로 나오더군. 양가 부모님들은 다 지방에 계시지, 친구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지, 당장 거처할 집에, 생활비에, 이동할 교통비에 이리저리, 비용만 쌓여가는 거다. 결국은 돈이 문제. 당분간 거주지가 2곳이니 2중의 주거비용이 들테고, 친구가 들어간다고 해서 당장 직장이 쌍수 들고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최대한 낙관적으로 봐서, 친구가 월 2백으로 곧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쳐도 월세, 공과금, 아이 양육비, 생활비, 의료비, 부모님 용돈 등을 계산해보니 빠듯하거나, 허덕이겠고, 부모님들께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는 처지니, 친구가 2배의 몫을 해내어야 한다는 답이 나왔다. 친구가 바로 두 손 들고 주저앉는 건 당연지사.

 

뭣보다 친구가 주저앉은 건, 올 초 한국에 아이와 함께 자시 들어갔다 겪은 유모차 문제.

 

한 국에서 3살 미만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다니는 거냐? 무슨 휴대용 고양이 집 같은 아이들을 위한 간이 이동시설이 있는 거냐? 아니면 혼자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아이는 집에만 박혀있는 거냐. 도무지 차가 없이 유모차만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게 친구의 결론였다.

 

차 가 없냐고? 당연하지. 나 장롱면허만 합치면 십 년이 훌쩍 넘는 무자차주다. 말했잖냐, 내 애마는 도둑들도 안 쳐다보는 낡아빠진 자전차에, 든든한 두 다리 뿐이라고. 그래도 여기서는 이동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종종 왕복 50-100km 가 넘는 장거리를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이곳은 택시, 버스, 지하철, 기차 모든 대중 교통수단에 의무적으로 유모차를 위한 공간이 비치되어 있다. 그 말인즉슨 이 모든 대중기관에 유모차로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거다. 우리나라 버스처럼 다리 짧은 사람은 앞문으로 타기도 힘든 높은 계단? 그런 거 없다. 심지어 휠체어까지 손쉽게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차체와 도로의 턱이 균등하게 설계되어 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길이 모든 인도에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거고. 다들 아이들을 짐짝처럼 들고 다니는 거냐. 아니면 포대기에 싸매고 다니는 거냐. 근데 왜 그렇게들 여기 사람도 잘 안 쓰는 수백 만원 씩 한다는 슈토케 유모차는 불티나게 팔리는 거냐?

 

해서, 결국 넉넉히 살지도 못하고 따로 떨어져 고생만 똑같이 직사하게 할 거 그냥 같이 살자고 합의 봤다. 대충 월봉이 4-5백 정도 되고, 자가용이 없지 않으면 정상적인 도시민의 생활이 불가능해 뵈는 게 서울이더라.

 

 

실 은 비밀이지만, 친구가 정규직이 되는 내년 초쯤에 둘째를 한번 계획해 볼까 한다. 우리보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둘째는 꼭 있어야 한다는 주위 충고가 설득력 있게 들려서이기도 하고, 아이를 가지면 가외의 생기는 가외의 소득에 솔깃해서이기도 하다. 알아보니, 아이를 출산하면, 법적으로 출산 후 3년까지 아이엄마와 아빠가 선택해서 최대 12개월까지 유급휴가를 낼 수 있단다. 그 기간 동안 기존 임금의 65-75%를 받을 수 있고, 복직 후 불이익도 없고 말이지. 게다가 이제 세금을 내서 무상보육비와는 별도로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아이 하나당 매달 30만원 정도의 아동수당이 지원이 될 테니, 월 60이면 제법 든든한 수입원이다. 아직 이 정보를 모르는 친구 몰래 아동수당을 신청해서 내년쯤 별렀던 컴퓨터를 한번 바꿀까 싶기도 하다. 들키면 뭐, 죽이기야 하겠어.

 

근데, 나, 걱정이 하나 있다.

 

이렇게 해서 덜렁 얘까지 하나 더 낳았는데, 신의가호로 내 일정이 대폭 축소되어 내년 말이나 내후년쯤 우리 가족이 급작스럽게 귀국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거냐.

 

백수 엄마, 아빠가 갓난쟁이 하나에 -듣자 하니 갓난쟁이 하나에 들어가는 돈이 한국에선 최소한 월 백 만원이라는데- 4살 박이 얘를 한 팔에 하나씩 끼고, 서울에 상륙하면 살 수가 있는 거냐.

 

저 소득층 무상보육도 곧 폐지되고, 무상급식, 무상교육도 다 도로아미타불이 되버리면, 난, ‘저 거지에요’를 입증하러 동사무소로 구청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거냐. 선별적 복지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 아이가 제대로 된 보육을 받고, 교육을 받고, 치료를 받는데 부모의 소득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의식주에 대한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게 바로 보편적 복지 아닌가. 아버지가 이건희건 정몽준이건 먼저 똑같은 혜택을 줘라. 우리가 받는 혜택을 저네도 받아야 그게 좋은지 나쁜지 알 거 아니냐. 그리고 추후에 따로 더 세금을 걷는 거다. 감사하게.

 

왜. 우리 아이가 사회가 제공해야 마땅한 당연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아비의 무능함을 낙인마냥 이마에 새기고 다녀야 하는 건가.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받아야 하는 상처는 누가 쓰다듬어 주고.

 

 

그 제 토론을 보다, 박근혜 후보가 줄푸세는 경제 민주화라는 씨알도 안 먹힐 농담으로 국정을 농하는걸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그래서 그제 투표하고 왔다. 예서 투표장까지 갈려면 왕복 4시간에 차비만 5만원이다. 니네 그거 아냐. 나 이번에 우리 장군님 기차놀이 장난감 사줄려고 하루에 3천원씩 한달 가까이 은행에 저금한 사람이다. 짱깨 같이 생긴 외국인이 한 달을 매일 줄 서서 2천원이나 3천원씩 입금하면 나중엔 창구직원이 널 또라이로 추정하는 참사가 생긴다. 근데, 5만원이라니!

 

알다시피, 나는 아빠다.

 

수드라 계급에, 무능한 룸펜에, 셔터맨이나 꿈꾸는, 주는 것 없는 한심한 아빠지만,

하 루에 한 시간은 우리 장군님한테 책을 읽어주고, 자기 전에는 되도 않는 호랑이 이야기로 버전만 벌써 수 백 개가 되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빠다. 이 당연하지만 감사만 일상이 가능한 것은, 이미 나 같은 아빠를 꿈꾸던 예전의 어느 아빠들이 기나긴 수고로움 끝에 만들어놓은 복지시스템에 운 좋게 무임승차해 이 평온을 누리고 있는 덕택이다.

 

어느 아빠가 그러고 싶지 않을까.

 

 

우린 아빠다.

아이의 자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깨어있는 모습에 인사하고, 피곤에 쩔어 잠에 빠진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활기차게 아이와 함께 뛰어다니고 싶은 모습으로 함께하고 싶은 아빠다.

 

우린 아빠다.

비록 지금은 어쩔 수 없는 환경과 여유의 부족으로, 기계 속 톱니바퀴로 시름시름 앓아가는 아빠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부속품이 아닌 제 몫의 환경을 만들어 돌려주고 싶은 아빠다.

 

맞다. 우린 아빠다.

지금의 끝없을 것 같은 가난을 거쳐 아이의 아빠 됨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기꺼이 우리의 수고로움을 디딤 삼아 아이의 무임승차를 반길 우리는 아빠다. 아이에게 보다 나은 미래와 사회제도를 선물하도록 하자.

 

우린 아빠다.

아빠야, 투표하러 가자.

 

 

 

 

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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