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로망?

2012.04.26 02:01

살아 움직이는 조회 수:2266

그 날 데이트는 밤산행으로 오래전부터 약속 잡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한번은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지금 같은 날씨였어요.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불었어요. 어릴 때 상상했던 그런 바람이요. 


신발 밑창은 흙이 묻어서 조심조심 발을 놓으며 앉았습니다. 우리는 도서관에 있는 것처럼 조용조용 대화했어요. 


저는 언덕길만 보면 좀머 씨 이야기가 생각나요. 어릴 때 그 책을 참 자주 읽었는데요. 책 첫 이야기가 그거 잖아요. 


자기가 꼬마일 때, 너무 가벼워서 언덕에서 달리면 몇 초간 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왜 그리 재미있던지, 언덕만 보면 가끔씩 


그 책이 생각난다니까요. 아.. 안 읽어봤어요? 장 자끄 상뻬가 그렸거든요. 그 꼬마. 다음에 빌려드릴께요. 근데 좀 책이 오래돼서 좀 누런데... 


이런 이야기할 사이는 아닌데, 분위기에 취해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꿈 이야기도 하다가 


아 좀 늦었구나. 별로 재미없죠? 일어날 채비를 하니, 좀 더 있다 가재요. 


그제서야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야 그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냥 목소리를 들었어요. 느릿느릿하네. 말을 참 느리게 하는 사람이구나. 


말이 멈추는 순간도 그냥 애초에 말하지 않았던 사람 같았어요. 하늘도 아니고, 정면도 아닌 어중간한 하늘을 보다가 


귀를 만지작 거렸습니다. 귀에 손이 스치는 소리를 듣다가, 아.


우리가 얼른 오래돼서 아무 말 없어도 민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얼른 실없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가 군대에 있을 때 밤바다를 봤는데, 그 보기 싫은 횟집, 노래방, 술집 간판이 어우러져서 너무 예쁘더라구요. 날이 추워지면 우리 바다도 가요. 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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