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귀신을 만나서

2020.08.19 07:30

어디로갈까 조회 수:612

# 일주일 전, 둔해진 감각으로 몇달 만에 작업을 하나 했습니다. 다시 들여다 보는 게 부끄러워서 덮어뒀다가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어제부터 수정에 들어갔어요. 추가하고 덜어내고 재편집하노라니, 무능한 사람이 그동안 없는 실력을 짜내며 근근 버텨왔던 거구나 라는 자괴감이 절로 듭니다.
순발력이 있다 해도 수집된 지식이 있고서야 생각머리가 뭐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죠.  A4 한 장의 문서를 제대로 작성하려면 백 권의 독서가 필요한 것이고, 오 분짜리 영상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천 편의 그림/영화에서 배운 게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 정도 공부는 한  것 같았는데, 메마른 머리에서 기름을 짜내느라 안간힘을 쓰노라니 비감만 드는 게 아니라 그냥 지겹네요. 지겹습니다.  

거실과 침실에 내 사랑 고흐의 그림을 두 점 걸어두고 있는데, 기분전환을 위해 오가며 곰곰 바라보노라니 허술한 복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선이며 구도며 색이며 내러티브며 그와 나는 다른 차원의 존재구나 하는 팩폭이 세차서 거듭 시무룩해졌....- -

# 예전에 은사님이 "너무 자신을 다그치면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미분되고 분노는 적분되어 괴로운 법이다."고 토닥이던 말씀이 문득 떠올라서 해보는 생각입니다.
수학/과학자들의 미분 differentiation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미분은 한 점에서의 기울기'라는 기본 의미는 접어두고 우리 삶에서 짚어보자면, 미분한다는 것은 머리로 무한소 infinitesimal를 미세지각하는 것이고 눈으로 순간의 미학을 포획해 내는 일인 것 같습니다. 휴먼의 감각에서 저절로 빠져 달아나기 마련인 아주 작은 부분들, 미세한 부스러기들에 대한 존중 같은 것.

가령 칸딘스키의 그림 - 추상과 구상의 선들로 이루어진 삼각형 꼭지점의 특이점 - 은 한 인간의 미분 불가능한 지점에 대한 형국이 표현된 것이라죠.  또한 현대음악의 시원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 쇤베르크의 음악도 무조성이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인간의 정신을 진동시킨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것. (저는 쇤베르크의 곡을 음악으로 듣기 보다 그림으로 읽는 측면이 있는데 이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어요.)
피타고라스의 삼각형, 플로티누스의 삼각형, 라이프니츠의 삼각형, 프로이트의 삼각형 등등 오랫동안 무한소 개념에서 신성성과 그 미소함 사이의 불균형을 삼각형 형태로 추구해온 서구의 지평을 따라 저도 이 새벽 제 속의 삼각형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불안의 강도가 센 만큼 섬광의 발견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없어요. 

라이프니츠의 관점을 생각해봅니다. 미분했다가 적분하는 것, 그에게는 이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죠. 멀쩡한 사물을 분해했다가 다시 짜맞추는 헛일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의 홀로그래피적 성격 - 사물의 물질적 조건을 살펴보기. 
그리하여 저 높이가 아니라 그 깊이에 가닿을 수 있다면 저도 참새의 날갯짓 같은 이 새벽의 파장/파동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인고할 자신이 있습니다. 근데 쑥쑥 살 빠지는 느낌만 너무 크고 호흡이 점점 가빠져서 황급히 이 횡설수설을 마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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