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을 읽었어요.

2024.01.11 17:51

thoma 조회 수:232

모처럼 읽은 한국 소설입니다. 

권여선은 90년대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걸로 아는데 꾸준히 계속하여 상도 여러 차례 받고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고정 독자층이 생긴 것 같습니다. 계속 한다는 것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래 전에 [푸르른 틈새]만 읽었고 이번 소설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 낸 책과 최근작을 읽었네요. 어떤 글을 쓰나 궁금하기도 해서 읽어 보았어요. 


'사슴벌레식 문답', '실버들 천만사', '하늘 높이 아름답게', '무구', '깜빡이',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기억의 왈츠' 이렇게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제목은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네요. 

이 중에 '무구'의 중심 인물은 여기 소설들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 중 작가나 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인생을 살지 않나 싶었는데(이 인물은 건물주가 되어 세를 받아 은퇴 후 유복함을 누립니다.) 소설 자체로는 단편으로서 흠잡을 데 없이 잘 쓴 작품이다 싶었어요. 인물과 거리가 있어서 더 군더더기 없이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인물이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 나면서 미래의 삶에 조금 힘을 내게 되는 '기억의 왈츠'였고요. 


과거의 일이 현재에 소환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반영하며 고통스러워도 하고 애써 나아가려고도 하는, 회상을 기조로 하는 작품이 여러 편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슴벌레식 문답'에 보면 어찌 보면 말장난 같지만 의미심장하기도 한 화법이 나옵니다. 대학 신입생 때 같이 하숙한 친구 넷이 있습니다. 졸업하고 몇 년 후 함께 한 여행에서 숙소의 주인이 하는 말을 듣고 배워서 인물들이 응용하여 문답하며 노는데요, 다음과 같은 겁니다. 

-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도 살아.

-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강철은 어떻게든 단련돼.

-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 너는 어떤 소설을 쓸 거야?  나는 어떤 소설이든 쓸 거야.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에게는 사건이 생기고 서로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멀어지는데, 그러면서 서술자가 내놓는 사슴벌레식 문답은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지나간 삼십 년의 세월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대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나, 라는 질문들. 그런 질문들을 탐구하는 소설집이었습니다. 


외국 소설을 주로 읽다가 지금을 다룬 한국 리얼리즘 소설을 읽으니 기가 빨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너무 밀착되어 차마 마주 보기 저어되는 것들을 마주 보아야 하는 힘듦이겠죠. 권여선 작가 소설이니 조금은 예상하고 들어간 것이지만요. 하지만 힘내주시길 바라게 됩니다. 한때 후일담 소설이라는 용어도 있었지만 요즘은 이런 소설을 쓰는 이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고요, 계속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파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옛날에 친구 만나는 자리에서 술자리 동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야 이분이 책을 내면서 기억하게 되었지만 권 작가는 저를 기억 못하지요. 술 좋아하는 작가에게는 그 많은 세월 동안 그 많은 술자리에서 그 많은 동석자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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