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동화에서 왕자를 기다리거나 납치당하거나 쓰러지거나 잠들거나 하는 공주의 역할이 지겨워졌습니다. 
충고를 받아들여 "나를 위한" 연애를 해보기로 했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무작정 부딪히기에는 막막해서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능동적인 인물이 되기 위한 역할 모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오페라 관람을 하기로 했습니다. 

선택한 오페라는 <Carmen>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앞장서서 주도권을 쥐고 선택하는 전통적인 남성의 권리에 도전하는 여주인공이 나옵니다. 
카르멘은 자신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성을 다른 상냥하고 둔한 애인에게서 빼앗고 결국 그를 차버립니다. 
남성들이 흔히 저지르는 그런 전횡이 여성일 때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아서 카르멘은 불쌍하게도 성적 독립의 대가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가로 여성은 목숨을 잃거나 최소한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실망을 안고 두 번째로 연극을 관람합니다. 

선택한 연극은 <A Streetcar named Desire>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여주인공은 고등교육을 받은 몰락한 지주 출신입니다. 
과거의 환영에 계속 시달리는데 결혼한 남편은 동성애자였고 결국 그는 자살로 마감합니다. 
여주인공은 지성이 있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을 마주 볼 용기가 없어서 환상과 마법을 원합니다. 

남주인공은 말 그대로 원초적인 남성입니다. 
지성과 교양과는 거리가 멀고 야생마이고 성적 욕망에 충실하면서 하루하루 딱정벌레 같은 삶을 삽니다. 
현실 적응력 최상의 인물입니다. 

이미 게임의 결말은 정해져 있습니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과거를 폭로하고 여주인공을 겁탈합니다. 
정신적으로 파괴된 여주인공이 정신병원에 실려가면서 의료인에게 웅얼거립니다. 
"당신이 누구이건 간에, 난 언제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절망으로 여주인공은 삶을 놓아버리고 아무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육체를 맡긴 성적 자유의 대가는 과거의 폭로이고 파멸입니다. 

여성의 성적 독립이나 자유는 목숨을 잃거나 파멸입니다. 

연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남성은 환호와 열광을 이끌어내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성은 쉽고 헤픈(?) 여성이 되는 것에는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어요.
주변 모든 문화가 이렇게 견고합니다. 

세 번째로 도서관에 갑니다. 
그리고 문화인류학 책을 찾았습니다. 

Wilson의 난자와 정자의 전략적 차별성에 대한 생물학적 일반화가 눈에 띄는군요.

"남자들이 공격적이고 성급하고 무분별하게 처신하는 데에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
여자들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 가장 훌륭한 유전자를 지닌 남자가 수정 후 자신의 곁에 머물러 줄 것 같은 남성을 분간해 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 
난자와 정자의 전략은 또한 왜 남자들이 여자들을 강간하는지도 설명해 준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다른 영장류 실험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 암컷은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면에서 수컷만큼 드세고 암컷이 성적으로 수동적인 천성을 타고났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기존 교육에서 말해주지 않는 진실은 여자가 남자처럼 여러 성적 파트너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중 기준의 성 정치의 산물입니다. 
사회는 여성들의 노동력과 출산력을 통제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여성들이 여러 섹스 파트너를 둘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이득이 될 때에 한해서입니다. 
그 결과 여성들의 무분별한 성교는 창녀에게서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불행히도 그들은 접객과 성교하는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국가 수준의 사회에서 보통 남자는 외도를 즐길 수 있지만, 보통 여자는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이면 가혹한 벌을 받는 것이 거의 일반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았습니다. 
임신, 출산, 수유의 위험과 비용을 치르는 것은 남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공주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왕자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왕자를 구하고 싶은데 이미 공주는 죽임을 당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연애법은 이미 소용이 없지만, 공주의 영혼만으로 괜찮으시겠어요?

그나마 위안은 연애에서 서사적 주인공은 기다리게 하는 사람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모두 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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