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과 스타벅스

2024.02.07 12:20

Sonny 조회 수:614

해삼너구리님의 글을 읽다가 떠오르는 바가 있어서 같은 주제로 글을 이어서 써봅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메갈리아의 글이 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찾을 수 없는데 대충 이런 말이었습니다.


'성괴 성괴 거리는 놈들이 제일 웃김 자연괴물들이'


얼평할 자격도 없다는 말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엄청 웃었습니다.


사실 저런 식의 반박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외모를 자본으로 치환하고 해당 자본의 소유 여부로 반박하는 거니까요.

이렇게 하면 아주 소수의 비성형 미남들은 여혐의 권리를 여전히 갖게 됩니다.

그러니 원론적으로 반박하자면, 외모평가는 나쁘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모든 반박이 진지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권력을 둘러싼 투쟁은 종종 부정확하더라도 훨씬 더 직관적으로, 상대의 모자란 권력을 후벼팝니다.

어떤 '빻은 소리'는 종종 권력이나 계급의 상대적 격차에서 아래에서 위를 향할 떄 풍자로 용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리를 다 대의만 가지고 허용하자는 건 아닙니다. 강자 계급의 지배적 논리를 약자 계급이 카운터 어택으로 돌려줄 때, 원론적인 공격보다 훨씬 더 유효할 때도 있다는 현실적 측면을 말하는 것입니다(이렇게 안붙여놓으면 꼭 아무말이나 다 해도 된다는 거냐는 의도적 곡해 악성댓글들이 붙더라고요 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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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스타벅스 발언도 일단 그 논리 그대로 돌려주게 됩니다.

너네 서민들은 돈 없으니까 스타벅스 오기 힘들지?

이 질문에 원칙적인 반론은 서민타령하며 시민들이 소비도 못하고 사는 것처럼 시혜적 대상으로 보지 말라! 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응이 꼭 이렇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스타벅스 갈 정도의 돈은 있거든 한동훈 멍청아? 이렇게 흘러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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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의 핵심을 특정 커피숍을 소비할 수 있는 여유자금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커피숍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향유하는, 문화자본의 소비와 공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해외여행 같은 것이죠. 해외여행은 해외에 갈 돈이 있냐 없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훨씬 더 고급으로 간주하는, 문화적 체험 여부의 문제이기도 하죠.

해외여행 갈 돈은 여유롭게 있으나 한번도 해외여행을 안가본 사람과, 모은 돈이 없지만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이 이 문제로 이야기한다면 쟁점은 자본의 여부보다 문화적 체험여부로 더 복잡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한동훈이 건드린 건 너네 돈없지? 가 아니라 너네 스타벅스 이런 데 모르지?의 문화적 격차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나 다른 사람들이 욱하는 것입니다. 

스타벅스 그게 뭐 별거냐...? 이렇게요. 

원론적으로 반응하는 게 맞겠지만, 때로 어떤 쟁점이 현실적으로 너무 조악하거나 비현실적이면 곧바로 현실적 권력을 인용해서 맞받아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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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일가가 집권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발견한 게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게 자아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교양'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문화적 체험의 여부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믿고 그 미학적 가치를 계속 추구합니다.

이를테면 영화가 그냥 영화로만, 시간 때우기로만 소비되지 않습니다. 

영화보기는 애니메이션 보기나 유튜브 보기보다 훨씬 더 "끕"이 높은 취향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습니다. 

이게 맞든 틀리든, 어떤 식으로 어떤 취향들은 사회적 평가를 더 후하게 받고 그것이 개인의 됨됨이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 요소가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걸 왜 윤석열 집권 이후에 사람들이 발견했다고 하냐면, 이들이 이 문화적 가치를 아주 우습게 보기 때문입니다.

말을 천박하게 하고, 맨날 지각하고, 술에 취해 시뻘개진 얼굴로 나다니고, 이마에 검댕같은 걸 칠하고, 논문을 오타까지 포함해 복붙하는 이들의 꼬라지가 이 '교양'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금기를 건드립니다. 

진짜로 소탈하거나 사회적 격식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뭐 그럴수도 있죠. 

그런데 윤씨 일가는 제일 중요한 공적 장소에서의 태도나 일처리나 각종 지원금은 다 끊어놓으면서 본인들이 문화를 사랑하는 교양인인 것처럼 흉내를 냅니다.

바이든이랑 같이 노래 부르면 뭐합니까? 장렬하게 패싱당하고 아무 외교적 성과도 못내는데?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가짜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너무너무 아는 바가 없고 추구하는 것도 없으니 일차원적인 반짝쇼로 자신들이 교양인, 문화인으로 비춰보이길 기대합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추합니다. 공감성 수치를 일으킵니다.

코스프레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문재인이 독서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별 다른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책방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실제로 책을 읽고 꾸준히 추천서를 올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윤씨 일가는? 하... 

도서관 다 폐지시키고 책을 쓰는 사람들에게 가는 지원 예산도 다 줄이고 각종 책 관련 행사도 못하게 압력을 넣는데 또 독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김건희가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했다고 했을 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짜증이 솟구쳤을 겁니다. 실제로 작가들은 규탄 시위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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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스타벅스 논란도 딱 이런 수준입니다.

본인의 취향이나 애호하는 것에 대한 정보도 없고 욕망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볼만한 교양인으로 비춰보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스타벅스를 두고 서민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곳이라고 자의적인 선을 그으면서 아는 척을 합니다. 

이게 사람들을 돌아버리게 만듭니다.

실질적으로 문화자본이 전혀 없는데, 문화자본을 어줍짢게 독점하거나 과시하는 듯한 태도 말이죠.

이런 건 짭도 뭣도 아닙니다. 그냥 쪼다에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비춰보이고 싶어서 자꾸 없는 교양을 수단으로만 삼습니다.

정말 같잖음의 극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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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말이 있죠. 과시가 곧 결핍이라고.

한동훈, 윤석열, 김건희, 이준ㅅ 등 이 윤씨 일가의 보수 인사들은 자꾸 과시로 결핍을 드러냅니다.

이게 진짜 사람 돌아버리게 만듭니다. 문화자본을 독점하고 이걸 나눠주는 듯이, 자랑하듯이 내비치는 모습이 짜증납니다.

이런 지점에서 스타벅스가 뭐 대단하다고? 라고 저나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어줍짢은 문화자본의 전유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압구정 아파트들을 무슨 되도 않는 프랑스어나 라틴어로 막 이름짓는 것에 대한, 그런 거부감이죠.

아는 게 없으면 제발 닥치고 좀...!!


쓰다보니 왕창 길어졌네요. 

전 이 사람들이 천박함을 자꾸 흘려대는 게 싫습니다. 정말정말 미학적인 역겨움을 일으킵니다. 

스타벅스 및 모든 까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길 바라며... 


@ 해삼너구리님의 글을 반박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 말에 동의하며 추가적으로 이런 고민도 하게 된다는, 고민을 나눠보자는 취지로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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