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 경험과 주관에 의한 글입니다. 욕설이 난무하지는 않지만 여과되지 않은 표현이나 단어들이 있을 수 있어요. 지적하시면 반영할게요 또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 수정하거나 삭제될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1. 언제 적을 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대학시절. 저도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여고때 바르던 존슨즈베이비로션만으로도 반짝반짝 눈이 부시던 시절이 있었음을 회상해보는 건 너무 짧은 순간이고요. 오히려 다분히 그릇되고 편협할 수도 있는 남성관에 대한 정립의 시기는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시절은 바야흐로 운동권 막바지였고, 신세대니 엑스세대니 하는 단어가 난무하면서 요즘 애들 너무 싸가지 없어라는 늘 있어왔던 고루한 평판마저 때마침 활성화(?)되기 시작한 개인주의와 맞물려 절정을 이루었죠학교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운동()에도 연극()에도 끼어들지 않으리라 미리 다짐했던 나는 문학판에 투신함으로써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학청년이 되었어요. 그 시기는 너무 짧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 중 가장 강렬한 기억과 온통 모순적인 가치관만 심어준 몇 년이었어요. 어쩌면 그 전까지의 삶은 삶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 표현엔 부정적, 긍정적 모든 의미가 함축되었다고 해도 무방해요. 또한 그 집단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해서 그 속성이 달라졌을까에 대해서는 지금 생각해도 회의적이죠.

 

   하여튼, 그 시절엔 여자로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라는 최초의 자각과 함께 이것을 인간으로서의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라는 확장 단계에서 오는 혼란으로 일상과 정신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고, 생각이 많은 아이또는 메고 다니는 가방만큼 생이 무거운 아이라는 평판을 내심 자랑스러워하던 저에게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는 그 연령대가 흔히 겪는 범상한 혼란이었을 뿐임을 뒤늦게 깨닫고 많이 부끄러웠죠. 그래봐야 그것도 나이 서른 넘은 뒤, 고작 몇 년 전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성에 관한 한 어떤 부분에서도 쿨하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가치나 사고는 사람마다 너무 다르니 내가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겠지요.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소위 말해 의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20대 초반에도, 갑은커녕 을을 넘어 병, 정으로 넘어가게 생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십대에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한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수치심 또는 은닉해야 할 일로 여겨야 한다는 게, 타고난 성정에 따른 본능이었는지 학습된 결과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제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물리적 사건이나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이를테면 이런 거죠.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처녀인 지 아닌 지 알 수 있다.

  *손가락으로 코끝을 눌러봤을 때 가운데가 갈라지면 처녀가 아니다.

  *남자가 팬티를 벗길 때 엉덩이를 들면 처녀가 아니다.

  *여자가 얼마나 많은 남자를 상대해 봤는지, 관계하는 남자는 삽입 시 직감한다.

  *깡마른 여자애들은 남자 코피를 터뜨린다.

  *진짜 색*들은 관계할 때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어렸을 적, ‘섹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이후부터 저런 종류의 화장실 낙서와 괴담 수준의 뒷담화가 늘 불온한 공기처럼 떠돌았고 그 가운데서 나는 혹시라도 내가 처녀로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싶은 걱정에, 소위 말해 아다가 분명했던 시절에도 걸음걸이에 신경 쓰고 우울한 얼굴로 코끝을 눌러보기도 했어요. 이 부분에서 혹자들은 그런 남성우월주의의 왜곡되고 폭력적인 사고에 주눅든 제 소심함에 대해 비웃거나 한심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과연 이 부분에서 진짜 자유롭고 아무렇지도 않은 여자 또는 남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실재의 사생활이 어떻든 간에, 자기기만 어쩌고 하는 것도 떠나서, 성적인 도덕률의 색안경에서 진짜 자유로운 사람들요. 간혹 주변에서 그런 것 같은 사람()을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공공연하게 개인의 경험을 공론화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더욱이 더 이상 처녀가 아니게 된 이후부터는, 이성의 남자들이 평가하는 성개념보다 동성의 여자들이 평가하는 도덕적 잣대가 훨씬 더 까다롭고 냉혹하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죠. 같은 동성의 커뮤니티 안에서 누군가에게 걸레라는 주홍글씨를 갖다 붙였을 때 발생되는 엄청난 강도의 폭력과 회복되기 어려운 자존의 손상을 목도하면서, 진보적 여성관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다수의 이론적 목소리가 한 개인의 정신에 어떤 위로도 이득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조리돌림을 하는 인간들이 나쁜 것이지, 당하는 사람이 잘못은 아니다 라고 말해봐야, 언제나 고통은 후자가 겪는 것이니까요. 가혹합니다.

 

   1과 관련하여, 제가 들었던 가장 씻을 수 없는(그래요,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씻을 수 없어요, 저는) 담화는 이것입니다. 혈기왕성하고 감수성 예민한 남학생 몇몇이 밤새 술을 마시고 논쟁하다가 하필 그 쟁점이 성매매 여성에 다다랐답니다. 그때가 지금보다 십몇 년 전이니 요즘처럼 합리적이고 묵직한 고민들로 해결책을 간구해보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을 리 없음에도(공교롭게도 임권택 감독의 창' 이라는 영화도 개봉되었죠), (소수의 페미니스트들과)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이 화두는 늘 뜨겁고 새롭기만 한 주제인 것인지요. 성매매에 대한 가치판단부터 시작해서 개인적 경험들(대부분 과장 되었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그리고 더 나가 사회적 구제책 등등이 난사되는 가운데 그들은 새벽을 맞았고. 그 지난한 논쟁의 현장에 부재했던 저는 간밤의 일화를 자랑스레 털어놓는 남자선배에게서 이 모든 핫이슈를 일축하는 한 마디를 듣게 됩니다. 아마도 논점이 성매매 종사자들의 구제책의 일환으로, 감정적 교류를 통해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결혼함으로써 개인을 구제(?)하며 점차적으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는 것에 대한 논의였던 모양인데, 결론은 저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부재한 상황이어서 다 파악은 되지 않았지만 밤새 벌어졌을 그 논쟁이 결코 치기어린 감상에서 나온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진지하게 듣고 있던 제 입의 지퍼가 자동으로 닫힌 건 순간이었죠. 나름의 지성을 갖고 의식화 되었기에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하는 거라는 간밤의 이야기를 요약본으로 듣고, 그래서 다 같이 내린 결론이 뭐냐는 내 물음에,

 

   “미쳤냐? 창녀랑 결혼하게?”

 

     이것은 제겐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소수의 논쟁을 일반화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껏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남자들의 ‘(이중적)여성관이라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근원이 됩니다성매매와 가족론이 도저히 공존할 수도 없고 상상될 수도 없는 건 아마 이 지점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물론 이것은 듀게에 주기적으로 올라와 게시판을 달구는 성매매‘(합법화)론과는 사뭇 다른 관점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하등의 관계가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대체적으로 남성분들 사이에서 뜨겁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이죠. 많은 여자분들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또는 앞서 말한 대로 동성에게 요하는 더 높은 도덕적 잣대내지는 이중적 태도로 인한 적대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경험치 자체가 지극히 적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매매에 직접 해당되는 직군이 아니어서인지는 몰라도 '호스트빠'를 근절하자는 구호나 움직임 같은 건 이제껏 못들어봤다는. 쉽게 말해 관심을 갖게 될 만한 루트가 전혀 또는 많이 다른 거죠. 자칫 잘못 건드리면 부스럼이나 만들 수 있다는 오래된 피해의식도 알고 보면 모종의 직간접적인 피해에서 기인한 것일지도요.

 

   듀게에 올라온 관련글들만 보면 그나마 나름 진보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격적인 남성분들이 대대수인 것 같지만(그러나 내 실생활에서 검증된 적도 없는), 일개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지나지 않는 게의 몇천 명 또는 만 명 정도의 인식을 가진 분들을 현실에서 만나는 건 손에 꼽을 지경이라 착각하지 않으려고 늘 경계합니다. 이젠 경쟁력도 전투력도 없어서 어쩌면 여성으로서의 매력이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 지금도 이 지점은 늘 피곤하고 늘 바짝 날이 서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할 건 아니지만, 그저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자위해야 하나 생각을 하면 그게 슬퍼요.

 

   덧붙임 : 근무시간에 쓸 수 없어 퇴근시간에 남아서 쓴 글이라 개발괴발인데, 지하철 타고 집에 오면서 생각한 부연해야 할 지점을 역시나 다른 분들께서 써주신 것 같아요. 제가 말한 운이란, 운 좋으면 평범하게 살고 운 나쁘면 성매매에 종사하는 직업을 갖는다는 이분법적 의미가 아닙니다.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성매매에 종사하는  그들보다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이 아닌, 일종의 씁쓸한 자조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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