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라이트는 상영하는 극장이 너무 없어서 cgv 여의도까지 가서 봤습니다. SoundX 시스템이니 뭐니 해서 천 원 더 받던데, 제가 막귀라서 그런지 딱히 메리트가 느껴지진 않더군요.
영화는 좋았습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속여가며 중독자로서의 삶을 살던 남자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자신이 가진 어떤 문제를 바로 볼 수 있게 되는 이야기인데, 로버트 저메키스가 꽤 리드미컬하면서도 안정적인 연출로 이야기를 잘 살리더군요. 어떤 면에선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의 다른 판본 같기도 했습니다. 비행기 추락 장면이나 호텔방 장면, 청문회 장면처럼 긴장감 확 조이는 부분들도 인상적이었어요.
2. '링컨'과 '제로 다크 서티'는 cgv 압구정 아카데미 기획전에서 봤습니다.
링컨은 변호사 마인드를 바탕으로 때로는 꼼수나 약간의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정치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념을 품은 휴머니스트, 아들을 잃고 또 한 명의 아들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아내와도 종종 갈등을 빚는 지친 가장, 국민의 사랑을 대가로 너무 많은 짐을 떠안아야 했던 한 인간으로서 링컨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수정안 통과 이슈를 둘러싸고 여러 인물들을 한 데 모음으로써 당시 미국 사회를 압축적으로 그려내 보이기도 하고, 또 이 모든 것들을 훌륭한 정치 드라마의 틀 안에 잘 녹여냈더군요.
아무래도 미국 정치에 밝지 못한 입장이라 영화를 온전히 즐기진 못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토미 리 존스로 대표되는 배우진의 명연기, 야누스 카민스키의 촬영, 존 윌리엄스의 음악 등 장인들의 솜씨가 한 데 모여 만들어낸 진수성찬을 대접받은 기분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3.제로다크서티는 캐스린 비글로우의 전작 허트로커와 주제 면에서 유사한 인상을 줍니다. 마야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집착을 더해가며 변하는 모습이나 마지막에 마야의 그 혼란스런 표정을 보면 꽤 명확히 드러나죠.
그런데 십 년이란 세월을 압축하면서도 긴장의 끝을 놓치지 않고, 또 그러면서도 마야가 견뎌야 했던 그 기다림과 실패로 점철된 시간들을 관객에게도 전달해 내는 그 연출력을 몸소 체험하다 보면, 캐스린 비글로우가 허트로커 때보다 더 괴물이 됐구나 하는 게 여실히 느껴집니다.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빈 라덴 사살 작전 시퀀스와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결말부가 주는 인상은 정말 강렬했고요.
4.
그런데 세 편 볼 때마다 관객 매너가 썩 좋지 않았던 것 아쉽네요. 매 번 제 옆 자리에 폰을 만지작거리시는 분들이 앉아서 정말 ㅜㅜ
플라이트 때는 혼자 온 남자분이 계속 나즈막히 혼잣말을 하면서 보더니 계속 폰을 꺼내서 확인하면서 이따금 카톡까지 하더군요. 나중엔 전화가 왔는데 극장이라고 말하고 끊더니, 나중에 또 전화 와서 그땐 아예 나가더라고요... 다시 들어온 뒤론 괜찮아지긴 했습니다만.
링컨 때는 제 옆 쪽에 앉은 중년 부부가 종종 쌍으로 폰을 꺼내들고 만지작거리는데 그 불빛 때문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더군요. 잠깐 하다 집어넣고 또 잠깐 하다 집어넣고 하니까 뭐라 말할 타이밍도 놓치고. 영화 끝나니까 박수 치시던데 어찌나 얄밉던지요.
제로다크서티 땐 한 여성분이 늦게 들어오셔서 제 뒷줄을 휘젓고 다니시더니 제 줄로 와서 앉으시더군요. 그러더니 영화 중반쯤부터 폰을 엄청 만지시는데... 손으로 가려도 다 빛 사방으로 퍼지니까 카톡 제발 좀 ㅠㅜ
세 편 다 영화들이 길어서 그런지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많고 폰 확인하는 사람도 많고 하여간 전체적으로 관람 환경이 많이 어수선했던 것 같아 좀 아쉬웠어요ㅜ
플라이트는 추락장면 빼고는 느긋하게 진행되는 영화일줄 알았는데, 사람의 선택과 관련된 긴장감이 (좋은 의미로)몸을 비틀게 하더군요. 속으로 "제발 좀!!"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