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가 아닌 이별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입니다.


앞서 다른 분의 이별 관련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에, 그렇게 이별의 고통에 몸서리 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댓글이 저에겐 정말 크나큰 위안이 되었어요. 그렇게 울고 가슴이 막혀오고 우울하고 화나고 괴로워도, 이게 바로, 평온하고 감정의 굴곡없이 안정적, 밋밋한 삶을 살던 시절에 아쉬워하던 그 extreme의 한 지점에 내가 있구나, 하고요. 어제도 밤에 침대에 엎드려 울면서 속으로 나는 살아있는거야, 이게 내가 원하던 살아있다는 증거야 라고 되뇌었죠.


예전에 그는 나의 감정에 세심하게 관심을 갖고 내 걱정을 자기의 걱정처럼 다루던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그가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만큼의 친절과 관심조차도 저에게는 의도적으로 거두어 버렸다는 사실이 많이 많이 괴로워요. 왜 굳이 그렇게 차갑게 변해야할까. 그냥 친구만큼이라도 대해줬으면.  나를 보고 분노하거나 소리지르고 화내주었으면 좋겠는데, 전혀 자극되지 않는 그. 연극 같은 차가움. 제가 더 이상 그의 가슴에 아무 감정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는 것에서 스스로 무력함, 그리고 그를 향해 약간의 분노를 느껴요. 결국 그의 인생에 더이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이것 때문에 우울하네요.


비록 이별하면서 자기 마음이 떠났다고 말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별의 원인이 저였다는 걸 제가 믿게 만드는데 성공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저 때문에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고 저를 변화시키려고 애썼고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 _ 연애 사랑 결혼에서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가 왜 연애하고 싶은가 인생에서 중요한게 무엇인가 등등.. 밑에서 좀더 설명할게요 _ 에 대해 몇달간 고민하고 생각해보고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다녔고 결과적으로 이게 저를 예전보다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제 친구들은 제가 너무 모든 잘못과 책임을 다 안고 가는 걸 안쓰러워하구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친구들이 고맙지만, 근본적으로 제가 연애에 있어서 너무 어리고 미성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떠났다는 제 근본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그로 인해 제가 변했다는걸 그에게 진심을 다해 느끼게 할 수 있으면 그가 돌아오지않을까 기대하고요.


이별 후 n 일이 지났고 그 사이에 난 이만큼 성장했어요. 그 연애가 이별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으면 저에겐 지금의 성장도, 변화도 없었겠죠. 나에게 변화의 동력은 연애가 아닌 그 끝인 이별이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은데, 두가지가 두려워요. 나의 고마움을 전했을 때 예상되는 그의 차가운 반응. 진지하게 성찰의 시간을 통해 연애와 사랑에 대한 관점이 예전과 완전히 바뀌었고 그리고 그걸 진심을 다해 그에게 표현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번째 두려움은 실현되었을 경우엔 또 저를 성숙시킬 아픔이겠죠.


곧, 용기를 내서 당신이 준 이별이 나를 이렇게 바꿨다, 전하려고 합니다. 잡아 보려고요.. 두렵긴 하지만.

 

이별이 저를 바꾼거 하나.


예전에는 늦기 전에 결혼해야한다는 초조함,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결혼이 더이상 제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아직 무조건적으로 목숨바쳐 타인을 온전히 사랑해본 적이 없는 저는 죽기전에 꼭 그런 사랑을 주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거, 이게 달라진 점이에요. 여기서 중요한건 그런 사랑을 받고 싶다는게 아니라 그런 사랑을 주고 싶어요.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생긴거에요 


이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그런 제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남자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요.


그 사랑을 하려면, 어떤 조건의 사람을 만나느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인 그 "타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 타인을 만나느냐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느껴요. 내가 기대가 0인 사랑, 내가 받는 것이 0인 사랑을 타인에게 주면서 거기에서 100%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캐파가 있는 인물이냐는거. 이것과 비슷한 깨달음 중 하나가, 이별 전에 저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연애에서는 약자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 했던 제가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더 많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더 그릇이 크고 더 성숙한거 같아요. 전 쿨한 사랑을 하는 여자가 아닌, 더 많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그리고 그 많이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연애를 통해서 더 알게되는 거 같아요.


근데 이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저는 한번 벽에 부딪히는데,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 때 부터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도, 누군가 그런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걸 가까운 관계에서 본 적도 없어요. 마더테레사의 삶에 대해 읽어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실제 살아오면서 그게 어떤 건지, 어떤 느낌인지 모릅니다. 부모님도 저에게 조건없이 사랑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엄마는 기대안하는듯 하면서도 한순간 쌓여있던 기대가 폭발하는 순간이 있곤 하는 불안정한,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를 제가 어릴때 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표현했죠. 성인이 되어서 엄마가 자식에게 기대안한다고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은 기대가 쌓이고 쌓이는 걸 억누르고자하는 다짐이나 주문 같은 거라고 느꼈어요. 진심이 아니었죠. 아무튼 저는 가족관계에서도 기대하는 것 없이, 정말 주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친구 관계에서도... 엄마가 자식과 남편을 위한 인생을 살고 그러면서 본인의 인생이 없었던 걸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기 때문에 너는 이런 인물이 되어야한다는 논리를 적용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나를 위해 살겠다고 어릴 때 부터 다짐했었어요. 엄마처럼 자신이 없는 인생을 살진 않겠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 제가 굉장히 이기적인것 같고, 친구관계에서도 좀 거리가 있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그런 관계를 긴 기간 동안 가꿔본 적이 없어요. 또 완전히 아낌없이 주는 우정을 실천해본적이 있었나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비록 사랑에 대한 새로운 욕구는 생겼지만, 그건 정말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라는 거.. 약간 걱정도 되고 뭐 살짝 기대도 되고 그러네요.


그나마 가장 근접한 경험이라면, 이별을 저에게 안겨준 그 사람이 연애 초기에 저를 대했던 거, 거기서 그런 조건없는 사랑의 가능성을 봤던 것 같긴 해요. 그게 어떤 사랑인지도 조금은 느껴본 것 같구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저처럼 경험없는 사람에게 하는 조언으로, 봉사활동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사랑의 기쁨을 기대가 성취되었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주는 것에서 느끼는 것. 그게 그사람의 고민을 나의 고민처럼 생각하고 해결했을 때 그 사람의 기쁨을 보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저는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기브 앤 테이크, 비즈니스 적인 자세를, 로맨틱한 연애 관계에 까지 가져갔던게 이별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연애에서도 어떤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계산하고 행동하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거든요. 그 기대가 충족되었을 때 기뻤지, 그 기대로 이르는 과정이 기쁘진 않았던 것 같아요. ㅜ ㅜ 사회생활에서도 커리어에서도 학생일 때도, 노력하면 노력한만큼의 대가를 기대했고 그 기대가 성취되었을 때 돌아오는 열매에서 큰 기쁨을 느꼈던 사람이구요. 물론 연애에서는 그 열매가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 상대방의 고민이 나 덕분에 해결되는 모습일 수도 있긴 하겠죠.. 


이별이 저를 바꾼거 둘


예전에는 사랑을 받을 때, 상대방이 나의 기분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나의 고민을 같이 고민해줄 때, 그런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후회합니다. 사랑을 받는게 사랑인줄로 착각했던거요. 일단 저는 사랑을 줘야하는 건줄 깨닫지 못했고, 어떻게 주는 건지도 몰랐어요. 사랑을 주는 방법이 저는 언어, 같이 시간보내기, 선물,, 이 수준에서 성장을 멈췄는데 그가 보여준 사랑을 주는 방식은 완전 새로운 세계였거든요. 저도 참 어릴 때 부터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다는 가족사회문화적 가르침을 듣고 자라서인지, 사랑을 줄 때 어떻게 줘야하는지 몰랐고, 제가 줘야하는지 몰랐어요. 저는 함께 연애하는 거 만으로도 충분한줄 알았던 거죠. 그러다보니 그가 나에게 사랑을 주는걸 너무 당연시 했고, 주지 않았을 때 너무 불안했죠. 이부분은 연애에서 배운 것 (사랑을 주는 방법) + 이별에서 배운 것 (사랑을 나도 함께 줘야한다는 것. 받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것) 이 섞여있군요. 이별하기 전엔 몰랐습니다. ㅜ ㅜ


이별이 저를 바꾼거 셋

 

사랑하는게 인생에서 너무 너무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어요. 전 20대를 학업과 커리어와 진로 고민에 쏟아부으며 살았습니다. 연애, 하긴 했지만 제대로 안했어요. 정말 게임으로의 연애, 챙겨주는 것으로의 연애, 놀이로의 연애, 아직 꼬맹이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중요한거라고 생각하지도않았고. 지금은 일도, 나의 꿈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너무너무 중요해요. 어느 정도냐면,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위해서 제가 제 꿈을 잠시 내려놓고 밥벌이 해야한다면 정말 기쁘게 할 수 있을 꺼 같아요. 그 사람의 꿈이 나의 꿈이니까..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이별하기 전에, 심지어 연애 중일때도 저는, 그와 오래 함께 하다가 그의 꿈을 위해서 나의 꿈을 미뤄야한다면 내가 미룰 수 있을까에 대해 혼자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마치 그와 경쟁하듯, 나혼자 양보할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 인생의 우선순위가 달라진 것 같아요. 그사람의 꿈도 내 꿈만큼 소중하게 다뤄줄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이건 아직 이별 상태에서 쓴 글이고, 어찌보면 제게 이별을 고한 그 사람을 못 잊은 상태에서 느낀거라.. 실제로 다른 연애나 사랑을 시작했을 때 정말 내가 다짐한대로, 느낀대로 실행할지는 모르겠네요..


지금도 아직 많이 아프고 우울하지만 그래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그와 연애하고 이별하고 이 고통을 다시 겪겠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예쓰라고 할 것 같아요. 물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별이 오지 않도록 좀 잘해보고 싶긴합니다 ㅜ ㅜ 흑 모순인가요.


다른 분들은 이별 후의 고통, 받아들임, 등등 그 이후에 어떤 변화를 겪으셨나요.  같이 이야기하고 위로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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