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로 안나 카레니나 보고, 맥플러리 하나 먹고 후딱 먹고 팝콘 쿠폰 쓰고 바로 이어서 장고를 봤습니다.
돌아와서 낮잠 좀(?) 자고 일어나서 저녁 먹고 나니 토요일이 다 가버렸군요.
여튼 영화는 둘다 좋았어요. 두편 다 2시간이 넘는 긴 영화들인데 지루하지 않게 잘 봤습니다.

먼저 안나 카레니나. 원래도 키라 나이틀리를 좋아하지만, 이 영화 속 키라는 정말 이때까지 본 것 중 제일 예뻤습니다.
의상도 아름다웠고 망사(베일?) 달린 모자는 뭔가 없던 페티시가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고요.
근데 그렇게 예쁨에도 불구하고 참 이해도, 감정이입도 안되는 인물이더군요.
카레닌에게 용서 받았다가 다시 브론스키에게 가겠다는 무렵부턴 거의 뭐 저런 미친X이 다 있나... 이런 심정이었어요.
본래도 불륜 로맨스를 견디지 못해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앙투아네트와 페르젠도, 잉글리시 페이션트도 -_- 이런 표정으로 보는 사람이긴 해요.
중학생 때 안나 카레니나(한권이었으니 축약본이겠죠)를 읽던 친구가 바람 피다 애인한테 버림 받고 자살하는 여자 얘기-라고 거칠게 요약하면서
불쌍하다고 평한 것에 대해서도 아니 도대체 뭐가 불쌍해? 지가 먼저 남편을 배신했는데? 라고 했던 전력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사교계가 배우자에 대한 충성보다는 기만으로 꽉꽉 채워진 사회였으리란 점은 제 아이패드를 걸 수 있을 만큼 확신하고,
남들 다 하는 짓인데 단지 공개적으로 했다는 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생매장 당한 점에 대해서는 좀 억울할 수 있겠지만 그래봤자 자업자득이랄까요.
게다가 아무리 봐도 브론스키는 허세 쩔고 인간 덜 된 애로 보이고, 카레닌은 역시 별 매력은 없지만 그래도 아내한테 저런 대접을 받을 이유는 없어 보여서요.
원작을 읽으면 카레닌과 브론스키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고 안나의 선택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구석이 생기려나요.

사실 원작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 건 레빈과 키티 때문입니다.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낫(?) 들고 땀 흘리다 일꾼들이랑 들판에서 저녁 먹는 레빈을 보고 잉? 뭐 저런 사기캐가 다 있지? 이러고 충격 받았는데
나중에 레빈의 부인이 된 키티가 레빈의 형을 닦아주는 장면을 보고는 심지어 부부 사기단이었어!!! 이러면서 또 경악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아는 게 워낙 없어서 불륜 치정극 보러 왔는데 난데 없이 무신론자 동물행동학자 부부가 튀어나온 기분이었어요.
여튼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로 인해 이 이야기가 좋아졌어요. 원래는 키라 나이틀리 때문에 약간 의무감으로 본 영화였는데 말입니다.


장고는 바스터즈와 비슷한 종류의 재미가 있는데 개인적으론 바스터즈 쪽이 조금 더 좋았어요.
장고는 닥터 슐츠가 죽은 이후부터 집중력이 확 떨어져서 장고가 열심히 악당들을 처치해도 사족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최고 명장면을 꼽는다면 슐츠가 악수 때문에 캘빈과 신경전을 펼치다가 그를 쏴버리곤 "미안, 견딜 수가 없었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고를 겁니다.
아마도 타란티노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으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말도 이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마지막에 캔디 랜드 저택을 날려버려도 과연 장고와 브룸힐다가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쓸데없는 걱정이 들어서 편하게 결말을 즐길 수 없었던 것도 같아요.
바스터즈를 볼 때는 크리스토프 발츠의 이마에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지는 걸 보면서 브래드 피트의 안위를 걱정하진 않았거든요.
대신 캔디 랜드에 가기 전, 슐츠랑 장고 둘이서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약하는 부분은 정말 유쾌하게 봤습니다.
워낙에 말을 좋아해서 슐츠가 자신을 소개할 때 꼬박꼬박 자기 말을 소개하는 것도 귀여웠고,
제이미 폭스 가 새옷(파란 거 말고요) 쫙 빼입고 나오는 장면에선 옷발을 너무 잘 받아서 놀라기도 했고요.


이래저래 두 감독의 다음 영화도 기대에 차서 보러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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