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다녀왔습니다.

2024.01.22 15:18

Sonny 조회 수:388

이번 주에만 켄 로치의 영화들을 세편을 봐서 그럴까요? 영화를 보고 난 뒤 그의 소시민적 투쟁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성일 평론가님이 GV에서 힘을 줘서 말했던 것도 기억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영화 보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아니냐고. 그래서 촛불집회를 더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장 쉽게 낼 수 있는 사회적 목소리라면 촛불집회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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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영혼(아직 살아있으심)이 저를 투쟁으로 이끄는 것일까요? 촛불집회를 가려다가 우연히 조선일보 건너편에서 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후다닥 뛰어가서 행진에 합류했습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집회를 두탕을 뛰는 날도 있네요. 행진 끄트머리에서 Free Free Palestine 을 외치면서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무슨 이벤트 참여하는 것처럼 길가다가 꼽사리 끼어서 행진을 하다니. 이렇게 이스라엔 대사관 앞에서 깔짝 구호를 외치고 바로 촛불집회 현장으로 떠났습니다. 매주 토요일 2시마다 같은 곳에서 팔레스타인 연대를 한다고 하니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참여할 생각입니다.


시청역 앞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게 뭔가 싶어 다시 공지를 조회해보니 아예 삼각지역 용산총독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기로 되었더군요.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게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와 인연을 맺으라는 뜻인가 싶었습니다. 아마 제대로 알았다면 아예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자체를 모르고 지나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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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는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전국 촛불집회 단체들이 다 모여서 북적거렸습니다. 절묘한 시간에 도착해서 행진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잡혀갔던 대학생 단체의 학생들이 트럭 위에서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동안 촛불집회 자체가 너무 중장년층 위주의 시위가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여성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맞춰 행진을 하니 그래도 다양한 세대들이 촛불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기성세대들이 'MZ'라는 세대적 구분으로 10대와 20대를 비사회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로만 프레이밍을 해도 이들 역시 부조리에 느끼는 분노는 저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행진이 진행됐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입니다. 저는 제일 오른쪽의 경찰 펜스 바로 옆에서 걷고 있었는데 제 앞의 어떤 중년 여성분과 남성분이 경찰에게 계속 이죽거리면서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뭘 굳이 저렇게... 라며 걷고 있었는데 펜스 라인에 서있던 어떤 여자 경찰분이 이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표정관리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모욕하냐는, 억울하고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앞의 집회 참여자들이 저 경찰분에게 혹시 성적인 언동을 한 것은 아닌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니, 아마 그럴 것입니다. 집회 참여자들의 말을 별로 신경쓰지 말라고 분명히 훈련을 받았을텐데도 그 경찰분은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웹툰 [송곳]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본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맞서는 사람들에게 비열한 공격도 서슴치 않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그 순간 힘이 빠졌고 굉장히 비겁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 경찰분도 윤석열에 대해 똑같은 정치적 반감과 의문을 품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히려 현장에 동원되는 경찰들의 불만도 당연히 클 수 밖에 없을텐데요. 그 분이 설령 윤석열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촛불집회를 곱게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분은 아마 복잡한 마음으로 양비론에 빠질지도 모르죠. 저희가 그 경찰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어떤 꾸짖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들 역시도 시민으로서 체제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고 한편으로는 또 집회 참여자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촛불집회는 트위터나 인터넷이 아니고, 제가 단순히 "차단"한다고 해서 뭔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전에 안내상씨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노동자 운동에 투신하려고 위장취업을 하고 보니 노동자들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회의를 느꼈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자세야말로 실존하는 사람이나 현실을 이상화하고 그걸 함부로 기대하는 자신의 오만이었다고. 집회 참여자들 모두가 제가 기대하는 품위를 가질 수 없고 제가 이들의 투쟁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의"의 기치 아래 개개인을 향한 무의미한 폭력들은 제발 자제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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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는 이태원을 경유하는 코스였습니다. 그 코스에는 여지없이 안티 촛불집회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이재명 구속을 외쳤습니다. 이재명이 목에 칼을 맞아서 죽을 뻔한 걸로도 모자란 걸까요?지금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불편을 끼치고 국가 운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안티 심리가 피곤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동시에 다가오는 총선이 낙관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이재명 안티 최우선주의의 입장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윤석열이 아무리 나라를 망치고 원칙을 파괴하든, 그냥 이재명만 보고 있을테니까요.


이 날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행진 인원들이 멈춰서 추모의 묵념을 했습니다. 박근혜 퇴진 시위에서는 세월호 진상 조사를 요구했고 이번 윤석열 퇴진 시위에서는 이태원 참사 진상 조사를 요구한다는 게 기가 막혔습니다. 국가라는 주체가 얼마나 무능하고 개개인의 삶에 무관심하면, 이렇게 시민들이 대량으로 죽고 거기에 아무런 조사도 없이 묻히는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진상 조사 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도록 건의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나라가 정말 너무 싫습니다.


행진을 한 지 1시간쯤 되니 피곤해져서 여기까지만 행진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가 중에도 이런 저런 생각들이 질질 끌려왔습니다.


@ 도대체 촛불집회는 박원순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사람을 두고 탄원서 요청을 하는 걸까요? 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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