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는 늦여름에 세가지가 아주 싸고 질도 좋아지는데

토마토+가지+주키니(애호박같이 생겼고 질감도 비슷한 데 맛은 다른) 가족들 입니다.

다들 모양새도 각각의 이데아 마냥 탱글해지고 색도 진해지고 굽이치는 것도 그럴 듯 해요.

지금은 끝물이라, 마지막으로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이 야채들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이야 무한정이지만

배고픈데..힘들어요.

그런데 제철 야채의 힘이 엄청난 것인지

이 세가지를 비슷한 크기로 쓱쓱 썰어 기름도 안 친 팬에 볶아 소금만 뿌리면..

아주 잠시 아 난 요리에 숨겨진 어떤 감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망상이 스물 올라옵니다.

단 한가지 유의할 게- 가지는 생각보다 제대로 익는데 시간이 걸리니 좀 먼저 볶는게 좋아요-

아니면 특유의 설은 질감이 나면서 씨앗이 씹힙니다.

 

잠시 나누고 싶은 말은 제 친구중에서 특히 지혜로운 한 사람의 말입니다.

언제나 내가 지금 이걸 해도 되는건가..내 처지에.. 내가 날 속이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달고사는 제게

친구가 해준 이야기에요.

 

"말했듯 그건 착각이 아니다

니가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다

기왕이면 그때 그때 주어지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화내고 울고 그렇게 지내야겠다

절대 적절한 때 같은 건 오지 않는 거니까

걍 '굳이' 시간의 틈을 비집고 즐기고 행복하고 슬프고 아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다른 경로로도 비슷한 내용을 듣거나 읽은 적은 있겠지만, 와닿는 건 오늘이네요.

그렇게 일부러 삶을 살지 못한다면 최소한 오는 감정은 검열하기 보다는 겪어야하는 게 아닐까요.

 

 

..

 

어제 어쩌다보니 잠을 설치고 오후에 30분정도 쓰러지듯 잠들었습니다.

그 단시간에 참으로 심란한 꿈이 오갔어요

미국에 있는 제가 전화를 몇일 못받은 (안받은?) 사이에 친오빠가 덜컥 장가를 갔더군요

그것도 무척이나 섭섭한 일이었는데 새언니가 꽤나 연상의, 아이있는 이혼녀에 특별히 볼 것 없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드라마는 많이 안보지만 드라마 시놉시스 보는게 취미중 하난데 그 영향을 받는건지..

꿈 와중에도 그 누군지 모르는 아이 주변에서 마음고생할 오빠 생각에 마음아파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결혼을 하게 할 수가 있어!!!"라고 막장 시누이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다 깨서 너무 생생한 꿈을 돌이켜보니 우스운 게

평소에 이혼이 낙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상황이 아니니 모르지만

오빠의 결혼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오빠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서로 사랑할 사람이면 괜찮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봉인이 풀린 꿈에서는 당장 내가족 손해볼까 안달밖에 안나더란 말이죠.

그리고 엄마가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걸 알면서, 실로 마음 더 쓰이고 아프다는 걸 알면서

엄마에게 소리부터 지르는 모습은 꼭 제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 그대로였구요. 

뭔가 헐벗은 원초적인 초상화를 목격한 기분입니다. 평소에 연락 잘 안되는 죄책감까지 드러난

부글부글 끓는 이드 가득한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행동을 이렇게 반추해 보기는 또 처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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