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세로 걸으시나요

2011.09.08 14:01

知泉 조회 수:1722

저는 최대한 반듯한 자세로 걸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걷는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발은 1자로 하이힐 굽이 흔들리지 않게 무릎을 펴고 허리를 세우고 목을 뽑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걷습니다, 터벅터벅 걷거나 신발이 끌리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 뮬도 잘 안신고 슬링백을 신고 끈을 발 아래로 넣지 않아요.


제가 이렇게 걷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전학가기전 중학교까지 이지메를 겪었습니다. 등교하면 책상 속에 쓰레기가 가득했고 며칠 된 우유도 들어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으면 등에 샤프심 자국이 빼곡히 찍혀 있었습니다. 도시락에 방부제를 부어놓곤 먹으라고 얼굴도 박혔습니다. 가방은 쓰레기통에 있으면 다행인데 걸레통에 들어있어서 시궁창 냄새가 났습니다. 걸레물에 젖은 교과서는 주황색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책상에 연필로 쓰여진 욕은 괜찮지만 칼로 정교히 새긴 욕은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저를 표적삼아 비비총을 쏘는 놀이를 했습니다. 가끔 반애들에게 몰매를 맞을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침을 뱉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애들이 그렇게 한 이유를 모릅니다


그때 저는 세상에 부끄럽고 제가 부끄러워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 "너는 짱돌로 그 애들의 머리를 찍어버렸어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걷는 자세를 바꿨습니다. 걷는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차하면 힐을 벗어 머리를 찍어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눅진한 침을 닦으며 본 저녁노을을 잊기 위해 저는 반듯한 자세로 걷습니다.


네, 제가 잘못을 했을수도 있고 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설사 잘못했다 하여도 그것들을 감내할 이유는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째 심란합니다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뭐, 육체적 폭력은 없으니 그냥저냥... 너랑 닿으면 썩는다고 했던 말도 기억나지만 저를 향해 침을 뱉던 얼굴이 더 기억납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표나지 않는 것들은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바른 자세로 걷습니다.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오늘은 꼭 글렌 굴드의 바흐를 들어야겠습니다. 고양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걸으시나요? 어떤 생각으로 걸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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