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성향과 윤리관은 관계가 있죠.

2011.09.15 04:14

산체 조회 수:3100

0. 특정한 정치 성향과 그 정치 성향을 지닌 사람이 윤리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더라도, 정치 성향과 윤리관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리관이 정치 성향을 결정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봐요.



1. 보통 정치 성향을 진보와 보수로 많이들 나누죠. 저는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리버테리안, 우리말로는 자유 지상주의자들의 정치관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에서는 정치성향을 네 가지로 나누더라고요.

정치, 사회적 논점에 대해 보수적이면서 경제적 논점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면 국가주의.

정치, 사회적 논점에 대해 보수적이면서 경제적 논점에서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면 보수주의.

정치, 사회적 논점에 대해 개방적이면서 경제적 논점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면 진보주의.

정치, 사회적 논점에 대해 개방적이면서 경제적 논점에서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하면 자유지상주의.


제가 어쩌다가 공부하게 된 책은 로스바드(Murray Newton Rothbard)라는 아저씨가 쓴 For a new liberty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로스바드씨는,

'미국의 건국 이념은 보수주의가 아닌 자유지상주의라능. 미국은 현재 미국이 떠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건국이념으로 돌아가야 한다능...'

이라는 주장을 가열차게 하셨습니다. 이 글의 주된 논점과는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진짜 무슨 SF 소설 같습니다.

요는 자유지상주의의 가장 크고 궁극적인 적은 국가이며, 국가가 없는 세상이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최종 목표인데, 그렇다면 국가가 없을 때 과연 이 세상이 잘 굴러갈 수 있을까에 대해 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론은 뭐 잘된다는 거에요. 최소한 현재 국가가 있는 형태보다는 효율적으로 돌아갈거라는 주장인데, 이게 처음에는 허무맹랑해 보이더니 자꾸보다보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재미있는 SF 소설들이 그렇죠. 그럴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2. 어떤 정치 성향이 윤리적인지 따지기 전에, 윤리적인게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만 잘 생각해보면, 정치 성향과 윤리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묶여있음을 알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든지, 남의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 것들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점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엔 이런 식으로 '누가봐도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이 그리 많지가 않아요. 논쟁의 여지가 있는 행동들이 상당히 많죠. 상당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저는 이런 행동들이 대다수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라든지, 낙태라든지,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지에 관한 문제라든지, 어떤 사람들은 그 행위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슈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렇듯 '어떤 행동이 윤리적인가'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고 여러 행동들을 평가하는, 개인이 가진 직관이 있을거에요.

그 직관에 따라 어떤 사람이 보수적 정치 세력이 추구하는 윤리관을 가졌는지, 진보적 정치 세력이 추구하는 윤리관을 가졌는지 대략적인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3. 그런 의미에서 저는, 최소한 윤리적인 논점에 있어서 만큼은 보수가 의미하는 바가 문화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보수적인 윤리관이라고 하면 청교도적 윤리관이 되겠죠.

어떤 나라에서는 가톨릭, 어떤 나라에서는 이슬람,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화 된 유교 문화가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윤리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비록 자신의 윤리적인 입장이 보주수의지만 다른 나라의 보수적 윤리관에 대해 비판하고 경멸하는 상황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을 안까진 않을거 아니에요. 더했으면 더했지.


하지만 이 각각의 보수주의자들이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윤리적인 강령들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거나 실제로 보수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건 아니죠.

이쯤에서 '윤리적 논점에 있어서 보수주의'라는 개념을 제 멋대로 허접하게 막 규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리적 논점에서 보수주의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윤리관을 유지 확장시키려는 입장이다. 정도로요. 뭔가 빈틈이 많고 허접한거 같은데 제가 하는 짓이 다 그렇죠 뭐. 



우리나라에 한정시켜 이 보수주의적 관점이 나타난 규율들을 생각해보자면 이런게 있지 않겠어요?

손 위 사람에게 깍듯이 대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여자는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 어른이라면 때가 되면 꼭 결혼하여 가정을 이뤄야 한다. 등등


소위 미풍양속이라는 것들에 경기를 일으키는 저이지만, 논란이 될만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예시로 고려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제가 싫어한다고 그런 윤리적 내용들이 나쁜건 아니거든요.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제 입장에서는 나쁜게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어떤 객관적인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반대로 저 같은 사람은 동성애 같은 이슈에 있어서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보수적 윤리관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의 패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이 글에서 어떤 윤리관을 채택해야 옳은 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글의 주제나 범위를 벗어난다고 생각해요.




4. 그럼 진보적인 윤리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진보적인 윤리관은 보수주의적 윤리관과는 달리 어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의 진보 세력이나 유럽의 진보 세력이나 한국의 진보 세력이 서로 다른 내용의 윤리적 규범을 가진 것 처럼 보이진 않아요. 물론 구체적인 내용이나 정도의 문제에서 드러나는 차이가 분명 있습니다. 이게 쟁점화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도 진보적 윤리관이 더 보편적 특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일단 진보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전통이나 문화적 특수성 보다는, 인권이라는 어떤 보편적인 개념에 호소해서 윤리관을 구축하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보수적 윤리관에 포함되는 내용이 많고 세세한 것과는 달리 진보적 윤리관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많지 않고 몇 가지 원리에 의해 개별적 내용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차원에 있어서는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개인적인 차원에 있어서는 종교의 자유, 성적 취향의 자유, 신체의 자유 등등을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라고 상정하고

이러한 권리들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는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진보주의의 윤리관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들은 진보적 윤리관을 가진 사람들 뿐 아니라 보수적 윤리관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 상황 속에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보수적 윤리관은 위의 규범들을 무시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문화권의 보수적 관점에 따르면,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등은 국가나 민족의 이득을 침해하는 경우라면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보적 윤리관에 있어서는, 지켜야 하는 규범들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위의 규범들이 보장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예외의 상황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위의 권리들을 침해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이며 정치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건 사견이지만, 내세우는 규범들의 숫자가 적다보니 그걸 위반하는 경우에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5. 진보와 보수 간의 입장 차이가 가장 극적으로 대비되는 주제가 바로 경제적 자유? 혹은 사유재산에 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진보적 입장에서는 대체적으로 정치적 자유나 사적인 자유가 다른 개인이나 국가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기본적인 권리로 여기는 반면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다른게 아니라 세금 문제인데요, 진보적 정치 성향에 있어서는 국가의 권위로 사유 재산을 일정 비율을 강제 징수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공산주의같이 사유 재산을 인정안하는 경제체제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진 입장의 사람들이 비일관적인 윤리관을 가진건 아니죠. 국가가 개인의 돈을 가져가서 다른데 쓰는게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니,

오히려 전체적인 인권의 증진이라는 점에서 이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분명 일관된 입장이 맞긴 한데 그래도 제 입장에서는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진보적 입장에서 봤을 때, 윤리적 논점에 있어서 국가와 개인은 대립되는 주체들인 것 같습니다. 개인은 다른 개인에게서 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위에서 언급한 권리들을 보장받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윤리적이지 못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논점에서 봤을 때 개인은 국가의 관리 감독에서 자유로워서는 안됩니다. 비록 자신의 능력으로 부를 축적했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차원의 효력을 가지는 이상 일정부분 국가에 귀속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보수적 입장은 정반대죠. 보수적 입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등은 국가나 민족의 이득이라는 측면에 비추어서 때로는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는 권리입니다.

반대로 경제적 자유, 사유재산의 권리는 가능한한 최대한 보장해 주려고 합니다. 하다못해 미국에서 보수주의자들이 기업가나 자본가에 요구하는 윤리란 기부를 많이 하라는 것이지 세금을 많이 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도 뭔가 표리부동한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개인의 권리보다는 가족이나 민족, 국가같은 집단의 이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제적으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 단위의 이득,

즉 효율성이 극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보수주의자들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진보적 입장과는 정 반대의 지점에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은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있습니다.




6. 주절주절 글을 늘어놓다보니, 원래 의도했던 주제와는 벗어나는 내용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어짜피 헛소리 쓸모없는 정도는 비슷할 겁니다.


뭐 정리하자면 이런 겁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어떤 사람이 상식적 차원에서 더 윤리적인지, 덜 윤리적인지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모두들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상식적인 차원에서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은 진보적인 입장에 가든, 보수적인 입장에 가든 옳지 못한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어떤 사람의 정치 성향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윤리관을 가지고 사는지는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윤리관을 통해 정치 성향을 짐작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물론 뉴스에서 보니 동성애자면서 보수 정당의 요직에 있는 정치인도 있고, 커밍아웃을 한 카톨릭 신부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는 진보적 정치 성향을 지니고 있겠죠. 성적 취향보다 윤리관이 더 중요한데 그 윤리관이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커밍아웃 안하고 자신의 성적 취향을 무시한 채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제 입장에서 제가 어떤 정치 성향에 속하는지 판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그 정치 성향이 추구하는 윤리관이었습니다.

그 윤리적 입장 내에서도 제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반대편의 있는 윤리관은,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저런 식으로 판단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돈은 원래 없으니까 경제적인 논점이 제가 속한 정치 성향을 결정하게 된 것 같지는 않고...



개연성의 차원에서 정치 성향과 어떤 윤리관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는 충분한 상관관계, 혹은 인과관계를 논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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