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에서 쓰려고 했던 내용은 아닙니다.
그 내용은 사실 이번 주민투표랑은 직접 관계가 없는
선거-투표 일반과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의 유사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상 24일 투표 마감 후에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미뤘습니다.
어차피 투표율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테고.. 각자의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기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을 것 같아 올려봅니다.
전면 무상급식 반대 투표를 하겠다던 직장동료 2명과 오늘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1명은 설득, 1명은 재고해보겠다는 답을 얻은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1. 불법적 주민투표라서?
아니다.
법리적인 면은 잘 모르고 주민투표법 조항도 따로 읽어보지 않았다.
민변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반대 6문 6답"과
dragon2012의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기각' 결정의 의미(첫번째)"를 읽어보니
이번 주민투표를 불법이라고 단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이번 주민투표가 관련 규정이 의도한 입법 취지를 충분히 존중, 준수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이라고 단정할 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합법적 주민투표라도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으며, 나는 처음부터 이런 입장을 유지하였다.


2. 소득재분배와 보편적 복지를 위해?
아니다.

2.1
엄밀하게 말해 소득재분배 효과만을 고려한다면, 
전면 무상급식보다는 최하위, 차상위 계층에 대한 제한적 무상급식이 더 바람직하다.
비용은 전면이든 제한이든 어차피 누진세를 포함하여 조달되고
편익은 전면의 경우 전체에 뿌려지고, 제한의 경우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재분배 효과를 주요 근거로 전면 무상급식을 옹호하는 것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2.2
행정비용도 결정적인 반대 이유는 아니다.
무상급식 대상을 특정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소득 하위 50%를 기능적으로 정의하면 된다.
실제로 모든 제도는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법의 경우 시행령, 시행세칙 등으로 규정)
따라서, 교사-학부모-공무원이 학기마다 무상급식 대상 증명을 위해 고생을 하게 된다는,
즉 관련 행정 비용,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이다.
소득재분배 효과의 극대화가 핵심 목적이라면,
위와 같은 기능적 정의를 도입해서라도 제한적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점에서
행정비용 역시 주민투표 거부의 결정적 근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3 (2.1과 2.2의 보론)
미성년 의무교육 대상의 박탈감, 낙인감 등의 정서적 측면에 대한 보호 효과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것이며
부의 재분배 못지않게 중요한 정책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면 무상급식과 관련하여 보호 효과, 
그리고 그것이 갖는 교육 효과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재분배 효과 극대화가 주요 목적이고,
저소득 계층 학생의 박탈감을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그들에게만 무상급식을 집중시킬 수 있다면
제한적 무상급식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소득 계층 학생의 박탈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한 
구체적 논의를 부차적인 논점으로 간주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학생 보호효과는 전면 무상급식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지적으로 보다 정직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일 것이다.

2.4
복지 인프라의 확충 혹은 유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심의 여지 없는 당위가 될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
그것이 소득재분배나 빈곤 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제공을 의미한다면,
2.1에의 논의하였듯 전면 무상급식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보편적 복지 또는 사민주의를 얘기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주민투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입장을 표하는 장이 아니다.
이번 투표가 나가리 나든, 50%가 투표하여 과반수가 전면 무상급식안을 지지하든 마찬가지다.
이번 주민투표에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의 시금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바 혹은 아전인수 혹은 사기다.

(이번 투표가 나가리 났을 경우, 가장 정확한 해석은 

 무상급식 투표에 참여할 정도로 오세훈을 지지하는 사람이 33.3%보다 작다는 정도이다.

 이것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대리변수(proxy)로 매우 부적절하다.)

내용이 뭔지를 알아야 지지를 하든 말든 할 텐데, 
보편적 복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그에 대해 지지 혹은 거부를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 이념, 그것의 장점, 강점은 이번 주민투표 거부의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무상급식에 한정된 투표와 보편적 복지와 관련된 투표를 비교했을 때,
후자의 경우에 오세훈의 지지율이 훨씬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이번 투표의 쟁점이 복지 인프라 확충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3. 그러면 무엇?

나는 오세훈 심판, 견제를 위해 이번 주민투표를 거부한다.
오세훈은 전면 무상급식 재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돈을 쓸 데 없는 사업들에 낭비하였다.
나는 전면 무상급식이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세훈이 저질렀고 저지를 뻘짓거리들에 비해
무상급식이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지난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의 결과는 
오세훈에 대한 유보적 지지, 
시의회에 의한 오세훈 견제에 대한 지지를 말하고 있다.
시의회는 선거에 의해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오세훈은 이를 거부하고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돈을 쓰고 싶어한다.
특히 차기든 차차기든 대통령 후보 경선, 대통령 선거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돈을 펑펑 쓰고 싶어한다.

지금 오세훈은 이에 대한 시의회의 견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몽니를 부리고 있다.
몽니가 통하지 않으면 적당히 쇼하다가 시장 때려 치우고 다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잔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잡은 트집이 단계적 전면 무상급식이다.
단계적 전면 무상급식에서 '단계적'은 자기 마음대로 삭제하고 '전면'만 강조하는 트집 작전이다.

오세훈이 경제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이 주민투표를 추진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는 예전 한나라당 시의원들과 짝짝쿵하던 시절처럼
서울시 예산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인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곽노현보다 더 급진적인 전면 무상급식을 추진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번 주민투표가 성사된다면, 
이런 그, 그와 짝짝쿵하던 세력에 대한 견제가 심각하게 좌절, 제한된다.

오세훈 견제의 중요성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편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비용에 견주어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 비용이 일정한 수준을 초과한다면 나는 기꺼이 반대할 것이다.
"더러워도 할 수 없지 뭐" 하며 오세훈 손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나같은 보수 우파가 보기에도 곽노현 무상급식안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제적으로 별다른 문제나 위험이 없다.
오세훈 심판의 편익에 비해 그 비용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복지광풍, 포퓰리즘과 합리적 예산집행의 대결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하여 곽노현 무상급식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곽노현 포퓰리즘과 오세훈 포퓰리즘의 대결이다.

오세훈이야말로 세금폭탄이라는 공갈 협박을 동원한 포퓰리즘, 공포 정치 포퓰리즘이다.


곽노현 포퓰리즘이 승리한다고 해서 복지광풍이 불고 세금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세훈 포퓰리즘이 승리한다면 토건광풍이 지속되고 세금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한국에서 복지광풍은 분 적이 없고, 이번 주민투표 결과가 어찌되든 앞으로도 한참 동안 그럴 일이 없다.
이것은 연출된 위협이다. 그냥 사기라고 봐도 된다.

그러나 당신이 알든 모르든,
토건광풍, 토건포퓰리즘은 늘 불어왔고, 앞으로도 심심찮게 불어 시와 나라 살림을 크게 좀먹을 것이다.
이것은 실재하는 위협이다. 매우 실재한다.

이것이 당신의 이익에 부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의 이익을 크게 희생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 못 된다.
그렇다고 공공의 이익을 크게 헤치면서까지 나의 이익을 고집할 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다.
설사 내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의 이익을 일부 희생했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당신도 당신의 이익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공공의 이익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이번 투표 거부를 요청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든, 세금 인상에 절대 반대하든
당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라.
그게 무엇이냐고?
이번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것이다.
당신이 오세훈과 짝짝쿵하며, 사적으로 떡고물 얻어먹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나는 주민투표를 거부한다.
다행히도, 자주 그렇지만 이번에도,
나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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