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첫 번째로 세월호 관련 글은 수색 내지 인양이 모두 끝마치고 나서도 쓰고 싶은게 있다면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 관련 내용에 댓글을 달았는데 마치 '이런 시기에 국론분열 좀 안 되고 수색에 모든 힘이 집중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제가 아는 보수들이 자주 쓰는 화법을 무심코 썼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문제든 당사자주의를 기본으로 둡니다. 예컨대, 이번 세월호 사고의 당사자는 사고의 피해자들이며, 2차 관련자는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제가 이런 단계를 거친다면 4차 내지 5차 관련자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당사자를 따져 개입을 결정하는 버릇은 넷 상에서 누군가를 비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기 규제에서 나온 것일텐데, 문제에서 자신의 책임이나 권리가 어떤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많이 정이 없어 보입니다. (넷 상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죠.)


사고가 일어난 직후, 많은 피해자들이 지연되는 고통 속에 놓였습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관찰자 입장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연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요. 어쨌거나, 최근의 아동,청소년 관련 사망 및 상해 사고는 하루나 이틀이상 넘어가지 않았고, 사고의 수습과 사고 과정 및 내용의 정치화는 서로 시간 상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끔찍하게도 이번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약 일주일에 걸쳐 (또한 인양 작업이 예정대로라면 대략 20일에서 두 달까지) 지속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에 정치적인 해석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모두가] 공감하는 감정적 고통으로 구조 자체에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시선은 양 쪽으로 분산되고 있고, 그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예시는 하나도 들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생각해 볼 뿐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피곤하지 않을까.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이어지니 유의해주세요. 한국에는 어른이 없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일까를 친족과 토의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제 식의 정의는 이러했습니다. '대상의 인식 범위 바깥에서 대상을 배려해주는 것, 대상의 인식이 변했을 때 그 배려를 파악하게됨.' 다만 이번의 어른이란 [책임을 지는 자]가 더 명확한 정의일 겁니다. 간단히, "정보 소통이 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게 제 생각이고, "정보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어른이 없다'이며, [책임을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초기에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진행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어야 했고, 언론에도 전했어야 (논리가 타당하다면 통제해야)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하고 있다, 는 것을 서술 전문가를 불러서라도 설명을 했어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고, 린치를 당해도, 그것이 책임을 지는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의 무능이 이 사태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도 저는 정부가 무능한지 유능한지조차 정보가 부족하기에 알 수가 없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진행 상황에 대해 언론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한테 밝히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계속 알렸더라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까요.)


현대 사회에서 정보 공개는 최우선 순위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고 세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에서는 정보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옳거나 그르거나는 상관 없이 저질의 정보가 아이들 색깔 칠하기 그림처럼 빈 곳이 뻥뻥 뚫려서 유포됩니다. 언론은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지만, 정확하게도 제공해야 합니다. 제가 굳이 언론 자료를 살피는 이유는 그것을 빠르게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터링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인데 언론조차 고급 정보를 제공하지 못 했습니다. 감정으로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형국에서 빈 공간이 많은 정보는 그 빈 곳을 채우게 만듭니다. 그것은 양 쪽 관계 없이 자기 취향대로 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전 아직도 당사자주의를 잊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 이 사고의 발언권 권리자는 아직도 1순위가 피해자, 그 다음이 피해자 관련자(가족)입니다. 다음부터 이런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관련자들을 정부에서 확실하게 확인하고 비관련자들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관련자들의 입장과 발언을 1순위로 듣도록 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찰을 나눠주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것이 모종의 효과를 이끌어냈다는 걸 보며 정말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피해 관련자의 발언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여러 행태가 제게는 최악으로 다가왔습니다. 피해자 입장이 여러가지 형태의 정치적 견해를 통해 [소모]되는 것이, 진절머리가 납니다. 다만, 저는 어느 쪽이 피해 관련자의 주장인지, 외부의 정치적 개입인지를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논리에 의하면 피해자 가족보다도 피해자가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앞섭니다. 진행이 뭐가 됐든 방해를 받지 않고 진전 되었으면 싶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성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진정성이 말 그대로 진정/진실truth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성은 [듣는 이가 설득 되는 것] 즉, 설득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가족의 진정성, 즉 설득력이 의미없이 소모되어가는 여러가지 여타 행위들이 정말 싫습니다. 저는 아직도 다른 것은 다 상관이 없고 수색 자체의 진행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일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이런 변화과정은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이지 지칩니다. 적어도 수색이 종료되고 나서 이런 정치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욕먹을 걸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은 한국에 정녕 있을 수 없는 것일까요.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는, 혹은 유능함을 공포하지 않는 편이, 욕을 먹지 않고 이러한 여러 음모론의 소용돌이에서 양 측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이 상황보다는 낫다는 것일까요. 한국에는 어른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지극히 개인적인 - 부터 여기까지 아마 다시 이런 개념을 언급할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번 사고에 대한 글은 이것이 마지막이고, 더 이상 쓰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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