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2 21:27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첫 번째로 세월호 관련 글은 수색 내지 인양이 모두 끝마치고 나서도 쓰고 싶은게 있다면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 관련 내용에 댓글을 달았는데 마치 '이런 시기에 국론분열 좀 안 되고 수색에 모든 힘이 집중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의 제가 아는 보수들이 자주 쓰는 화법을 무심코 썼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문제든 당사자주의를 기본으로 둡니다. 예컨대, 이번 세월호 사고의 당사자는 사고의 피해자들이며, 2차 관련자는 피해자의 가족입니다. 제가 이런 단계를 거친다면 4차 내지 5차 관련자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당사자를 따져 개입을 결정하는 버릇은 넷 상에서 누군가를 비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기 규제에서 나온 것일텐데, 문제에서 자신의 책임이나 권리가 어떤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사람이 많이 정이 없어 보입니다. (넷 상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죠.)
사고가 일어난 직후, 많은 피해자들이 지연되는 고통 속에 놓였습니다. 정확하게 따지면 관찰자 입장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연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지만요. 어쨌거나, 최근의 아동,청소년 관련 사망 및 상해 사고는 하루나 이틀이상 넘어가지 않았고, 사고의 수습과 사고 과정 및 내용의 정치화는 서로 시간 상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끔찍하게도 이번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약 일주일에 걸쳐 (또한 인양 작업이 예정대로라면 대략 20일에서 두 달까지) 지속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에 정치적인 해석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모두가] 공감하는 감정적 고통으로 구조 자체에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시선은 양 쪽으로 분산되고 있고, 그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예시는 하나도 들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생각해 볼 뿐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면 피곤하지 않을까. 여기서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이어지니 유의해주세요. 한국에는 어른이 없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스러움이란 무엇일까를 친족과 토의 해 본 적이 있었는데 제 식의 정의는 이러했습니다. '대상의 인식 범위 바깥에서 대상을 배려해주는 것, 대상의 인식이 변했을 때 그 배려를 파악하게됨.' 다만 이번의 어른이란 [책임을 지는 자]가 더 명확한 정의일 겁니다. 간단히, "정보 소통이 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게 제 생각이고, "정보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어른이 없다'이며, [책임을 지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초기에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진행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했어야 했고, 언론에도 전했어야 (논리가 타당하다면 통제해야) 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하고 있다, 는 것을 서술 전문가를 불러서라도 설명을 했어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고, 린치를 당해도, 그것이 책임을 지는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의 무능이 이 사태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도 저는 정부가 무능한지 유능한지조차 정보가 부족하기에 알 수가 없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진행 상황에 대해 언론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한테 밝히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계속 알렸더라면 상황이 더 나빠졌을까요.)
현대 사회에서 정보 공개는 최우선 순위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고 세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어떤 식으로든 이 사회에서는 정보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옳거나 그르거나는 상관 없이 저질의 정보가 아이들 색깔 칠하기 그림처럼 빈 곳이 뻥뻥 뚫려서 유포됩니다. 언론은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지만, 정확하게도 제공해야 합니다. 제가 굳이 언론 자료를 살피는 이유는 그것을 빠르게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터링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인데 언론조차 고급 정보를 제공하지 못 했습니다. 감정으로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형국에서 빈 공간이 많은 정보는 그 빈 곳을 채우게 만듭니다. 그것은 양 쪽 관계 없이 자기 취향대로 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전 아직도 당사자주의를 잊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 이 사고의 발언권 권리자는 아직도 1순위가 피해자, 그 다음이 피해자 관련자(가족)입니다. 다음부터 이런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관련자들을 정부에서 확실하게 확인하고 비관련자들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관련자들의 입장과 발언을 1순위로 듣도록 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찰을 나눠주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것이 모종의 효과를 이끌어냈다는 걸 보며 정말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피해 관련자의 발언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여러 행태가 제게는 최악으로 다가왔습니다. 피해자 입장이 여러가지 형태의 정치적 견해를 통해 [소모]되는 것이, 진절머리가 납니다. 다만, 저는 어느 쪽이 피해 관련자의 주장인지, 외부의 정치적 개입인지를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논리에 의하면 피해자 가족보다도 피해자가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앞섭니다. 진행이 뭐가 됐든 방해를 받지 않고 진전 되었으면 싶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성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진정성이 말 그대로 진정/진실truth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성은 [듣는 이가 설득 되는 것] 즉, 설득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가족의 진정성, 즉 설득력이 의미없이 소모되어가는 여러가지 여타 행위들이 정말 싫습니다. 저는 아직도 다른 것은 다 상관이 없고 수색 자체의 진행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일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이런 변화과정은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말이지 지칩니다. 적어도 수색이 종료되고 나서 이런 정치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욕먹을 걸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은 한국에 정녕 있을 수 없는 것일까요. 무능함을 인정하지 않는, 혹은 유능함을 공포하지 않는 편이, 욕을 먹지 않고 이러한 여러 음모론의 소용돌이에서 양 측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이 상황보다는 낫다는 것일까요. 한국에는 어른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지극히 개인적인 - 부터 여기까지 아마 다시 이런 개념을 언급할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번 사고에 대한 글은 이것이 마지막이고, 더 이상 쓰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4.22 23:16
2014.04.22 23:52
어른이 없고,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언젠가부터 위에서 군림하려하고 어른 '행세'하려는 자만 있고 책임지는 자는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른이라고 할만한 분들은 이 사회의 위에 책임질만한 자리에 있지 못하겠지요. 당사자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논의가 좀 확장되는 것이 우려스럽긴 하지만.. 예를 들어 장애인 운동에서는 지나친 생물학적 당사자주의는 경계하자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수색 자체에 집중하고 정치적 논쟁은 후에 하자.. 많은 분들의 소망이겠지만 또한 더불어 이와중에 경계해야할 사건이 터졌을 때, 그냥 방치할수만도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 아닐까요.. (우리는 아마 앞으로도 아주 많은 거대한 것들과 싸우면서 동시에 국지전을 벌여나가야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
2014.04.22 23:59
한국 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욕먹을거 뻔히 알면서도 행동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겁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아무리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할지라도 직접 상황이 닥치면 그 모든 사고가 일시 정지 할테니까요.
때로는 가족이라는게 발목을 잡고 때로는 체면이라는게, 때로는 돈이, 때로는 명예가.
그 모든 다른 기타부수적인 것들이 우리가 어른처럼 행동하는것 대신에 나 자신위주, 개인위주로 행동하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보는 쏟아져 나오는데 전달하는 과정이 문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전달하는 쪽이 있는그대로를 전달하지않고 위의 개인적인 입장과 맞물려서 자신의 이익과 부합한 정보만 전달하니까요.
2014.04.23 03:48
waverly_ 한국에는 어른이 없다, 는 표현이 문제 해결의 중심점에 있는 사람들 내에서 책임자가 없다는 이야기였지, 그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냉철한 사고와 행동은 정보를 뒷받침함으로써 가능한데, 애초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부족하며, 이입된 감정은 행동을 강제하므로 다수가 연역 추리를 할 수 밖에 없도록 강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 잘못된 결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부분에서는 사실만을 '인증'하는 주체가 있어야 혼란이 덜하겠지만, 한국에서는 다수가 믿을 수 있는 주체는 실종된지 오래되었습니다. 행정부도, 언론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어떤 지성적 진전이 있겠습니까.
차이라떼_ 어른과 아이 구조론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인정한다는데 강점이 있을 겁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는 신뢰가 바탕이 되며, 그것은 훼손되기 전까지는 설득력을 그에게 부여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른이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기보다, 책임을 지기 때문에 어른이다고 생각을 하기에 그 누구도 자리에만 있다면 어른이 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책임자가 되었을 경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고 관련의 2차적인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개입을 정지할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니까요. (당사자주의에 대해서는... 저를 비롯해서 한국에서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문제에 개입이 가능해질 때가 많고, 그렇기에 그런 개입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논리상에 필수 불가결적으로 감정 이입이 포함이 되죠. 가상적 주체로 문제를 다루려 하다 보면 무리가 많고, 객체로서 문제 개입을 시작할 할 수 있을 때가 정상적이며 설득력 있는 사회 운동이 가능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Neo_ 내가 초인이 아닌데, 남이 초인이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죠. 그렇기에 저는 인간 개인을 거의 믿지 않고, 제도(혹은 구조, 체제)를 믿는 편입니다. 개인이 거기까지 성숙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착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1차 자료를 가지고 부수적인 설명 및 해석은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고 초기 그러한 잡 정보들 중 천박한 것들이 얼마나 쉽게 비판받았는지를 보시면 알 것입니다. 저는 현장에 대해 아직도 알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데 [자신의 이익과 부합]하는 행동을 한다"는 전제를 추론하는데도 정보가 부족합니다. 예컨데, 행정부가 그렇게 할만한 역량이 없기 때문에 정보 전달을 못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고, 그저 제공에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왔고, 그렇기에 발전할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정치화를 피로해하면서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의견 1순위를 주장하게 되는 이 글에서, 저는 문제 해결 이후 가장 첫 번째로 다뤄져야 할 문제는 정보 소통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냉철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감정을 주체 못해 악악대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인터넷과 SNS로 온갖 비명과 악다구니를 서로에게 질러대는 한편, 정말로 귀담아 듣고 정리해야 할 정보는 어딘가에서 막혀서 고인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썩어들어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