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3 00:28
김승옥은 제게 아주 특별한 작가입니다. 누구나 거쳤을 문학과 우정에 탐닉하던- 중2 ? - 그때 정통으로 만나서 이십대 초반까지
열렬히 구애를 했었죠. 어찌어찌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걸었는데 - 집이 송파구 쪽이더라고요 - 어떤 여자분이 지금 안계신다고
해서 떨리는 손으로 끊었던 기억까지 있습니다.
각설하고,
십대후반 이상문학상 1회 수상작인 서울의 달빛 0장을 읽어봤는데 전 이 작품을 아주 절절한 로맨스로 봤어요.
읽어보신 분 기억나시나요? 이혼 후 남자주인공이 신혼집을 팔아 본인은 차를 사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어 아내에게 주지요.
아내는 받는데 그런 아내에게 '당신 아파트에 가끔 들러도 되냐'고 묻습니다. 아내는 놀래요. 그리고 코피.
남주인공이 얼결에 닦아주려하자 아내는 쉰듯한 목소리로 뿌리치고 간신히 약솜을 사들고 돌아오자 그 자리에
찟어진 통장이 흩어진것을 봅니다.
이에 완전 무결한 이별을 느끼죠.
비록 아내의 행위때문에 격렬하게 다투고 이혼하지만 어쨌든 남편은 아내를 찾았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로 돈을 건네는데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목이 메어(?) 뿌리치고 진심을 확인하자 통장을 찟고 그 자리를 피한다고 생각했어요.
거기 메별이라는 단어도 나오지만 서로 소매를 잡고 울며 헤어진다는 장면이 떠올라서 더욱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평론이나 서술한 것을 보니 제가 완전히 반대로 받아들인거더라고요
돈을 미끼로 아내를 대했던 다른 남자들처럼 돈을 건넨거고
아내는 그것에 실망하고 통장을 찟어냄으로써 강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십대후반에 성묘사가 진한 이런 소설에 대해 서로 대놓고 토론하기도 어려웠고 그러려니 했던 대목을
새롭게 알게 되어서 다시 보게된것이 놀라워서 적습니다.
2014.04.23 00:32
2014.04.23 01:03
2014.04.23 08:11
김승옥은 아내의 코피에 어떤 상징성을 넣은 거겠지만, 저는 그냥 읽으면서 그 상황에서 갑작스레 코피가 터지는 상황이 너무나 오묘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요. 뭐라 설명을 할 수 없는 그 오묘한 느낌.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이 무진에 딱 도착했을 때 개가 침을 흘리며 교미를 하는 장면과 같은, 그런 오묘한 느낌이 김승옥 소설에는 많아서 좋아요.
2014.04.23 08:50
주인공 본인은 나름 절절한 진심으로 행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결과적으로는 아내를 비참으로 몰아넣은 세상의 다른 폭력성과 다를 바가 없어서 문제였지만.... 개인적으로 <서울의 달빛 0장>은 주인공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눈이 마주치고 나서 몇 초 동안 그 눈을 들여다 보다가 아내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나(말 그대로 첫 눈에 반하는) 다른 여자의 품을 돌아다니다가 아내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는 대목의 심리 묘사가 참 좋더군요.
2014.04.23 09:20
대부분 독자가 룸방에 가서 몸팔던 아내의 자격지심을 부추긴 행동으로 읽지 않았나요? 저도 당연히 그렇게 읽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