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감정을 고스란히 끌어안기

2014.08.26 17:24

올가 조회 수:1758

행복한 순간은 불안을 동반하는 것 같았어요. 이것이 깨지면 어떡하나, 그때의 균열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우울과 불안도 그렇게 처리하려 했죠. 언제나 감정은 양면적이야, 이 시점이 지나가면 이후론 웬만해선 편안하겠지 하면서요. 어떠한 감정이 몰려올 때마다 거기 100% 몰입하는 대신 슬쩍 피해가거나 인지로 처리하는 전략을 쓰다보니 온갖 희로애락에 초연해지데요. 인생이 지루하고 시시해지긴 했지만 그럭저럭 평온했습니다.

그러다 올 여름, 참으로 오랜만에, 밀려오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재생불가능, 지속불가능한 행복의 순간을 맞이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 기회에 내재한 불안과 한계를 알면서도 일단 취하고 보는 걸 택했고, 짧은 시간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힘으로 정상적인 일상을 더 잘 꾸릴 수 있을 거라고도 믿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 '그리움'이라는 막강한 감정이 늦여름의 저를 잠식해버렸어요.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을 떠올리며 우울해하고만 있습니다. 이것이 두려워 지난 수년 동안 제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제거하려고만 애썼던 거죠. 감정처리에 취약한 저를 새삼 발견합니다.

감정을 온전히 끌어안고, 담아내고, 거기에 머물러있을 수 있는 분들. 많이 계인가요? 기쁨도 우울도 황홀감도 좌절감도, 내게 오는대로, 굴절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요. 감정을 인지로 처리하는 능력보다, 감정에 직면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태도에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자에 힘이 필요하다면 후자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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