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30 15:05
정말 진지한 질문입니다.
저는 직장맘이에요.
아이가 3개월차부터 할머니에 의해 키워지다가 3살때부터는 같이 살았어요.
그러나 아이는 할머니가 계시면 무조건 할머니와 자겠다고 울고 불고 떼씁니다. 할머니가 없다면 엄마와 자구요.
제가 육아를 책으로 배우기로는, 애착이 여러명에게도 형성이 될 수 있으며 주양육자가 바뀌지 않는다면 애정결핍은 없을 것이며, 분리불안은 돌때쯤 매우 격렬해지다가 이후 나아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달랐습니다.
애착이 할머니,할아버지, 엄마(저), 아빠 모두에게 형성은 되어 있으나
1순위 할머니 >>>> 넘사벽>>>>> 2순위 엄마> 3순위 아빠,할아버지 정도 인듯 합니다.
현재 5살이니 누구를 더 좋아해?라고 비교급으로 물어보면 '둘다 좋아'라는 영리한 답변만 할 뿐 절대 말을 하지 않으나,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무언가 하고 싶은 건 할머니와 하고 싶은 마음뿐이 없는 듯 합니다.
3살때 처음 같이 살때는 아직 할머니와 애착이 강하니 그러려니 하고 갈수록 엄마에게 쏠리겠지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아요.
갈수록 더 강해지는 듯 합니다.
가끔 할머니와 떨어지는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더 열심히 할머니와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하고, 할머니에게만 안아달라고 떼씁니다.
물론 여기에는 제 탓도 있어요. 저는 일이 워낙 비정기적으로 야근이 많고 심할 땐 일주일 가량 아이 잠든 모습만 볼 때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체력이 아주 강하지 않아 일에 녹초가 되어 집에 와서 아이를 재우기까지는 못했죠.
아이가 할머니와 자고 싶어해도 제가 너무 피곤해서 졸려도 처음부터 저와 자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이렇게까진 안되었을텐데 이젠 저와는 절대 잠을 자려하지 않아요.
동화책을 읽어줘도 너무 졸려서 잠이 들 것 같으면 할머니와 자야겠다며 나가버립니다.
일을 그만 두고 시어른들과 살지 않고 제가 육아를 온전히 다 한다면 좀 나아질텐데
저는 제 일을 매우 좋아하고 돈도 꽤 버는 축이라서 외벌이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이는 할머니만 좋아하는데, 저는 훈육을 많이 하다보니 아무래도 많이 혼내는 쪽이고, 앞으로 아이가 클 수록 더 내말을 듣지 않으려 할텐데 싶어져요.
아이는 외동 남자아이라 가족들 모두 예뻐만 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지적은 많지 않아요.
저는 어릴 때 엄한 가정에서 커서 그런지 성격적으로 조금 규칙이 많은 편이었으나 아이를 키우면서 득도하는 기분으로-_- 모든 규칙을 내려 놓았죠.
그래도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예를 들어 물건을 던진다거나 양치를 안하고 자려고 한다거나) 점에서는 억지로라도 훈육시키려고 하는데
저만 엄하고 무서운 엄마가 되어가고 있어요.
제가 어릴땐 엄마에게 디지게 맞아도;; 엄마가 쓸어안고 위로해줄떄 울면서 잠들면서 '그래도엄마가 날 사랑해'라는 안심은 있었는데
지금은 저는 야단만 치고 아이는 다른 가족에게 가서 위로를 받고 있죠.
남자아이는 안그래도 엄마와는 '언젠가는 대화가 단절될텐데,
저를 완전히 싫어할까봐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티비나 영화를 보면 아예 단절되어서 살아도 엄마를 그리워하던데
제 아이에게서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단 한순간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와 오래 떨어져있어도 할머니만 있다면 아주 행복하고 즐겁게 잘 지내거든요.
첫번째 고민은 아이가 계속 엄마를 영원히 좋아하지 않는거 아닐까,난 그냥 장난감 사주는 셔틀인가;; 하는 불안이고
두번째는 그럼 일을 그만둬야 하나(수입은 어쩌지?), 일을 계속하되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고 제가 완전히 주양육자가 되어서 아줌마를 써야하나(그럼 아줌마가 이상한 분이면 어쩌나)
이런 딜레마에 빠졌는데 진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도 모르겠어요.
2014.09.30 15:38
2014.09.30 15:48
혹시 '엄마 없어서 슬펏니'라는 책 보셨나요? (아이도 없는 주제에) 육아에 대해 걱정이 되어서 찾았던 책인데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하면서 아이키운 엄마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한 글이라 추천합니다.
2014.09.30 15:49
상황 설명만으로 봤을때 '엄마'를 (엄마의 기대만큼)좋아하지않는게 5살아이에게 당연해보입니다. 마음을 얻는다는 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요. 5살 아이와 친해지려면 시간과 몸으로 노력해야합니다.
윗분이 말씀하셨다시피 10% 님만의 매력으로 어필하려면(그게 뭘까요? 다른가족과 차별화되는게 무엇일지) 아이가 좀더 커야할 것 같습니다.
2014.09.30 15:56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애착관계 형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자기조절(self-regulation) 능력인데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조(부)모 손에 자란 남아의 경우, 자기조절 능력을 발견하고 이를 학습하면서 배가할 기회를 많이 잃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쳇말로 '오냐오냐' 하면서 자라거나 특히 남자아이이기 때문에 '잘한다'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니까요. 이렇게 한 시기를 넘긴 아이가 엄마에게 혼나거나 뭘 자꾸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경우 혼란해합니다. 혼란한 이 시기에 뭔가를 판단하고 결정하게 해주는 것 또한 자기조절 능력의 반영이겠지요. 무엇보다 아이가 어떤 룰을 깨달아야 합니다. 엄마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집안 사람들이 함께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그것이 아이 처지에선 하나의 '룰'이 되는 거겠죠. 아이와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 가령 둘만 가는 영화관 이벤트나 엄마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벤트 등으로 특별하거나 색다른 엄마의 기억을 만들면서 시작해보세요. 아이도 아이 나름의 또래,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 점점 변하게 될 것 같아요.
2014.09.30 16:04
문자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이와의 관계는 매우 주관적인 개인적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일반 이론이나 사례 같은 걸로 적절한 도움을 얻기 어려울 것 같네요. 좋은 아동상담센터를 찾아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2014.09.30 16:07
저희 올케도 비슷한 상황(의사)이어서 걱정을 많이했는데 의외로 나이가 드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물론 올케가 퇴근 후에 노력을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놀라웠던 건 아이를 믿어주는 태도였어요.
처음에는 할머니 밖에 모르고 엄마, 아빠가 퇴근하면 정말 눈물바람 많이 지었지요. 근데 뭔가 작정한듯 일희일비하지 않더군요.
대신 퇴근한 후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와 약속하고, 그런 뒤에 아이와의 약속을 서로 점검하고
자신을 봐주든, 안 봐주든 아이를 기다려주고 믿어주더군요.
차츰 조카도 어린이집 가고, 유치원 가면서 엄마, 아빠 개념을 배우게 되구요.
하루 대부분 떨어져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아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약속을 어떻게 지켰는지, 왜 못 지켰는지, 왜 안 지켰는지
엄마와 소통하면서 매일매일 성장하고 있어요.
때때로 저렇게 키워도 되나 싶어서 조카한테 은근히 시험삼아 부채질도 해보고 그랬는데 (^^)
의외로 아이는 자기를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대우해주는 엄마에게 가장 많이 애착관계를 가지고 있더라구요.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느냐는, 어떤 부모가 되느냐에 전적으로 달린 것 같습니다.
2014.09.30 16:34
저도 직장맘이 될 예정이고...어릴 때 제 어머니도 직장다니시느라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큰 사람이라 공감합니다.
지금 너무 걱정해서 날카롭게 반응하시면 오히려 역효과일거에요. 어릴 때도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내 애정문제로 갈등이 있다 이런건 다 감지가 되더라구요..
제가 어릴 때(유치원-초등저학년 무렵)에는 규칙을 좀 더 강조하는 엄마가 더 어렵고 할머니할아버지 쪽이 더 좋았는데, 자라면서 서서히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는 엄마에게 애정을 올인했구요.
2014.09.30 16:47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두 아들을 키우는데요. 둘째는 저희 내외가 데리고 자지만 첫째는 돌되기 전에 어머님이 키우기 시작하셨어요. 아직도 할머니랑 자고 할머니를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는 그와 별개로 의지하고 좋아합니다. 아이가 이쁜 것도 때가 있어서 크면서 조금씩 징그러워지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면 제 나름대로 판단하고 붙을곳 의지할 곳을 가려가며 자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뭐랄까... 엄마니까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1순위로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만 좀 줄이셔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차피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 없으시다면 그나마..시간이 있을때 아이와 함께할 뭔가를 찾아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같은 경우에는 쉬는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잠자리를 잡거나 메뚜기를 잡거나 하면서 놀았더니 그런 면에서는 엄마 아빠에게 의지를 하면서 더 좋아지더군요.
2014.09.30 17:31
꼭 할머니 아니어도 엄마가 많이 바쁘고 다른 주양육자 (소위 이모님) 이 키워주시는 경우에도 이런 경우가 많더라구요.
애착은 여러명에게 형성될 수 있고 주양육자가 바뀌지않으면 문제 없다는 말은 맞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 없다는건 아이에게 문제가 없다는 거겠죠.
10% 의 배터리님이 느끼시는 문제는.아이에게 문제인게 아니라 엄마로써의 본인에게 이 상황이 문제가 된는 거구요.
그런 문제를 느끼는게 잘못되었다라는 말을 하려는건 아니구요.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현실이 다르다고 억울해하시는것 같아서 그건 아니라고 집고 넘어가고 싶었어요.
이 상황이 문제되는 것이 아이의 입장에서 문제인지 엄마의 입장에서 문제인지 구분이 필요한것 같아서요.
이런 상황이 싫어서 이모님을 바꾸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이 봤습니다. 엄마에게 애착을 옮기려고...
그런데 솔직히 이모님도 아니고 할머니시라면 그냥 조금은 내려놓으셔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할머니에게 조금 더 애착이 형성될 수 있어도 나이가 들수록 염마의 존재를 아이가 찾을꺼에요.
아직은 5살이니까 할머니나 엄마나 비슷하게 느끼겠죠. 나이가 들어도 할머니를 보면 조금 더 애틋하고 그런 느낌이 들 수는 있겠지만 엄마는 또 엄마 나름대로의 자리가 있을껍니다.
이왕이면 애기때부터 같이사시고 잠은 꼭 엄마가 재워줬으면 좋았을텐데 안그럼 1-2년은 고생하더라구요.
할머니랑 같이사니 더더욱 엄마와 새로운 애착을 형성하는데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아이는 갑자기 주 양육자와 떨어지는 스트레스를.겪지 않아도 되고 조금 오래걸려서 엄마 입장에서 서운해서 그렇지 사실 걉자기 할머니와 떨어져사는것보단 아이에게 훨씬 좋은 상황일것 같아요. 너무 조급해하지마시고 천천히 엄마의 자리를 찾아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