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my, I have you (휴가 여행 이야기)

2016.07.27 15:05

Kaffesaurus 조회 수:1190

친구네 집 샴푸에서는 어릴 적 씹었던 노란색 포장지에 싸여있던 달콤한 껌 냄새가 났다. 보통 가게가 아닌 헤어 살롱에서 산 샴푸는 그렇게 나를 아스팔트도 되어 있지 않던 동네로 데려간다. 얼마나 다른 세상인가, 지금 스웨덴의 요떼보리(고텐버그)와 70년대의 면목동이라니.


오사가 요떼보리로 이사간 건 벌써 적어도 5년 전이다. 몇번이나 오라고 했는 데 빨라야 기차타고 3시간 20분 걸리는 곳을 애를 데리고 다니기도 힘들고, 또 워낙 이 친구의 가족은 린쇠핑에 사니, 자주 오는 편이고 그래서 정기적으로 만나니까 이렇게 저렇게 미루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 휴가떄 아이를 데리고 가면 좋겠다란 생각에 날짜를 마출려고 했더니, 오사 본인은 또 휴가때 다른 곳을 가니 내가 갈려는 때에 집에 있질 않았다. 아무래도 포기해야 겠다 하는데 친구가,  내가 아파트 열쇠 줄께 나없을 때 며칠 있다 가 라고 말했다. 아파트를 빌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안했는 데. 나의 스웨덴 친구들은 내게 집을 빌려준다. 


처음 들어간 오사 집에 오사가 없어 이상하지만, 둘러보면 이사가기 전 집과 비슷하다. 같은 소파에 같은 책들. 친구의 집은 내집과 비슷하다. 적당히 깨끗하고 우리집에 먼지 있는 곳에 먼지가 있다. 그래서 더 편하다.  


친구의 집은 딱 보면 60년대에 지어집 아파트다. 아파트란 사람이 사는 곳이란 생각에만 미는 생각지 않고 지은 건물들. 바로 뒤로는 세기가 다른 시대에 지은 아파트들. 요떼보리는 이상하게 베를린을 생각하게 한다. 일요일 아침 산책을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서양 건물, 예쁜 꽃들이 가득찬 발코니에서 아침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만화의 한 장면 같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책을 들고 서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이 책 진짜 좋지요? 갈수록 더 좋아져요. 라고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이상하지 않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휴가란 건 어린 아이들의 도시를 본다는 거다. 아이는 놀고 나는 바라본다. 아이들은 참 쉽게 다른 아이랑 노는 구나란 다시 생각한다. 동네 수퍼마켓 앞, 물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은 친구랑, 동생이랑 있는 데 혼자 였던 선물이는 어느새 누가 버리고 간 플라스틱 자동차를 주워서는 다른 혼자인 여자아이와 놀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이 물장난처럼 번저갈 때, 여자아이의 이탈리아인 할아버지는 영어로  he is beautiful, very nice, very very nice 라고 웃으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다음 날 바로 3분 거리에 있는 요떼보리 제일 큰 공원 놀이터에서도 선물이는 혼자 놀이기구 타는 여자아이 옆에 다가갔다. 둘이 같이 돌아가는 놀이 기구를 타고 내리더니 당연한 듯, 서로를 보다가 선물이가 우리 저 큰 미끄럼틀 타러가자 한다. 먼저 내려온 여자 아이는 선물이를 기다리고 어느새 둘이는 손을 잡고 공원을 돌아다닌다. 엄마가 간식먹자 하니 엄마 나 내친구랑 더 놀꺼야 하고 말하는 여자아이. 아이들한테 다른 아이는 이렇게 친구가 될 수 있구나. 혼자 노는 것 보다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고, 같이 놀면 친구이다. 우리는 언제 이렇게 친구되는 능력을 잃었는 지, 누구나 다 처음 보자마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건 누가 나한테 가르쳐 주었는 지, 나 또한 다른 사람한테 그럴 걸 가르쳐준 사람은 아니었는 지 잠깐 생각한다. 


요떼보리 가기 전부터 누누히 거기는 모르는 곳이니까 엄마한테서 떨어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아이가 5미터 만 떨어져도 선물아 선물아 불렀다. 돌아오기 전 저녁,숲 전망대에 올라 갔다 내려가는 길에 달려가는 아이를 부르니 계단에서 기다리던 아이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Mommy, I have you. 

면목동에서 여기까지 나는 여행아닌 여행을 하고 있다. 선물이 같은 동행자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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