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술 양조 후기

2016.10.20 20:22

양자고양이 조회 수:2145

세 번의 시도끝에 드디어

쌉싸름하고 새콤한 자몽 사이다를 빚는데 성공했습니다.

두 번째에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처음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는 바람에 세 번째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자몽을 갈아서 천에 걸러 고운 주스를 만든 후 살균을 합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실패의 원인은 이 살균과정에 있었습니다. 

양조 과정을 모두 통틀어 가장 귀찮은 과정이기도 했고요.

Campden정이라고 화학적으로 살균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약품을 쓰면 발효에 필요한 균까지 죽이기 때문에 (모든 살균방법이 다 그렇지만) 

주스에 이 약품을 넣고 하루정도 기다렸다가 발효종균을 투입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발효가 일어나지 않더군요. 전혀...


그래서 일단 자몽은 보류하고 파인애플과 블러드오렌지를 사용하여, 화학살균을 하지 않고 중탕으로 가열 살균을 하였습니다. 

70도 이상 올라가면 나중에 술이 탁하게 나온다고 하여 온도를 체크하라고 했는데

물에 넣을 수 있는 온도계가 없어서 끓지 않도록 신경쓰며 가열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스를 맛을 봤는데 이상하게 파인애플이 달지가 않아서 설탕을 1컵 부었습니다.

실온에 가깝게 식혀서 플라스틱 병에 넣고 이스트 첨가하고 양조용 특별 병뚜껑 (인터넷에서 샀어요)을 덮었죠.

얘는 발효가 잘 되어서 술이 되었는데, 엄청나게 독한 술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이더는 알콜도수가 높아봤자 7-8%정도인데 제 느낌으로는 청주와 비슷한 것으로 봐서 16-7%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색깔도 예쁘고 맛도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친구들이 모두 싫어했어요.

너무 드라이하다고. 사이다를 기대하고 왔다가 와인이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왜 술에서 단 맛을 찾는지 이해가 안됨.

그리고 제 입맛엔 충분히 달달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 술은 아무도 손 대지 않아서 그냥 냉장고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파인애플과 블러드 오렌지 와인의 성공 (적어도 발효)에 힘입어

두번째로 자몽 사이다를 또 도전했습니다.

가열이 방법인데, 혹시나 과일향을 죽여버릴까봐 걱정되어 사무실과 가까운 홈브루 샵에 갔습니다. 이 곳에서 필요한 도구, 재료들을 모두 팝니다.

저는 이스트는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통은 플라스틱 음료수 병을 씻어서 살균해서 썼기 때문에 많은 도구를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플라스틱 병은 과탄산나트륨으로 세척 살균을 동시에 해결했고요. 

(과탄산나트륨이 은근히 쓸모가 많은 표백제, 세척제, 살균제더군요. 친환경에 인체에도 무해하여 지금은 칫솔, 워터픽, 김치통 등등 거의 모든 것을 과탄산나트륨으로 세척,살균하고 있습니다. 음식물 눌러붙은 냄비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어쨌든 그 가게에서 campden 정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더군요.

휘발성이라 하루 정도면 그 성분이 모두 날아간다고...

그 말을 믿은 게 실수였습니다. 안 되더군요.

물론 인터넷과 모든 참조자료, 수 많은 증인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살균하는 거라고 하니 거짓말일리는 없겠으나 어쩐지 우리집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가 않았습니다.

발효가 아예 안 일어나요....ㅠㅠ


그렇게 두 번의 실패를 거듭한 후 (자몽은 비쌉니다.)

화학살균따위는 잊어버리고 유일하게 성공했던 방법인 중탕 가열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약 45분간 가열하고 또 실온으로 식혀야 하기 때문에 은근히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통에 부은 후 기다릴 필요없이 이스트 넣고 뚜껑 닫아놓으면 끝!

이틀째부터 맹렬한 발효가 일어나며 짙은 거품이 가득 끼어 저는 곰팡이균이 번식하는 줄 알았답니다.

설탕도 따로 넣지 않았습니다. 발효가 시작되는 먹이로 한 숟가락만 넣었습니다.

저는 잉글리쉬 에일 이스트를 사용했는데 5%정도의 약한 알콜 돗수에서 죽는다고 해서 샀거든요. 그런데 순 뻥, 앞선 파인애플 와인이 거의 청주 수준인걸 보면 안 죽고 모든 설탕이 소모될때까지 살아서 먹어대는 게 틀림없습니다. 


5일째 저녁이 되자 빨래거품처럼 짙었던 거품이 발효가 끝남과 동시에 완전히 사라지더군요. 참 신기하게도 단 두시간만에 없어졌어요.

그리고 사이다는 자몽향과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이스트에 의해 빵빵하게 탄산이 채워진 여름에 어울리는 새콤, 쌉싸름 자몽술이 되었습니다.

남친님에게 시음하라고 주었더니 한 모금 마시고 뱉어버립니다.

남친님은 과일을 안 좋아하고 자몽은 더더욱 싫어합니다.

거기에 단맛은 완전히 빠지고 쓰고 신맛만 남았으니...


그런데 저는 이게 너무 맛있는 거예요. 저는 단맛엔 별로 취향이 없고 새콤한 것은 엄청 좋아합니다. 

문제는 제가 술을 못마신다는 거 (복용하는 약때문에)...

그것만 아니면 정말 제대로 즐겨줄 수 있는데요.

민트를 넣고 스프라이트랑 섞어서 독일식 라들러를 만들거나 아니면 칵테일을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거든요.

이 동네는 이제 여름이 오고 있어서 이 술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 됩니다.

알맞게 탄산도 잔뜩 생성되어 더위를 식히기엔 그만입니다.


게다가 세금을 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술입니다 (이건 양조용 병뚜껑을 파는 업자의 홈페이지에서 읽었습니다. 술 마실때마다 정부가 세금 걷어가는 거 싫으시죠? 집에서 빚어서 드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6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16
126021 [KBS1 독립영화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45] underground 2024.04.19 589
126020 프레임드 #770 [4] Lunagazer 2024.04.19 335
126019 아래 글-80년대 책 삽화 관련 김전일 2024.04.19 432
126018 요즘 계속 반복해서 듣는 노래 Ll 2024.04.19 441
126017 PSG 단장 소르본느 대학 강연에서 이강인 언급 daviddain 2024.04.19 449
126016 링클레이터 히트맨, M 나이트 샤말란 트랩 예고편 상수 2024.04.19 466
126015 [왓챠바낭] 괴이한 북유럽 갬성 다크 코미디, '맨 앤 치킨'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4.04.18 541
126014 오늘 엘꼴도 심상치 않네요 [7] daviddain 2024.04.18 475
126013 프레임드 #769 [4] Lunagazer 2024.04.18 343
126012 [근조] 작가,언론인,사회활동가 홍세화 씨 [11] 영화처럼 2024.04.18 913
126011 80년대 국민학생이 봤던 책 삽화 [8] 김전일 2024.04.18 711
126010 나도 놀란이라는 조너선 놀란 파일럿 연출 아마존 시리즈 - 폴아웃 예고편 [2] 상수 2024.04.18 521
126009 체인소맨 작가의 룩백 극장 애니메이션 예고편 [2] 상수 2024.04.18 439
126008 [웨이브바낭] 소더버그 아저씨의 끝 없는 솜씨 자랑, '노 서든 무브'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4.04.18 597
126007 이제야 엘꼴스럽네요 [3] daviddain 2024.04.17 493
126006 프레임드 #768 [4] Lunagazer 2024.04.17 349
126005 킹콩과 고지라의 인연? 돌도끼 2024.04.17 444
126004 파리 생제르맹 선수들이 찍은 파리 바게트 광고 [1] daviddain 2024.04.17 523
126003 농알못도 몇 명 이름 들어봤을 파리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팀 daviddain 2024.04.17 433
126002 아카페라 커피 [1] catgotmy 2024.04.17 4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