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2020.01.17 10:22

어제부터익명 조회 수:359

2019년 내내 영화 기생충의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송강호 대사를 반복해서 들은 거 같아요. 유행어는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팔도 왕뚜껑 공중파 광고에도 나오기도 했었죠. 기생충을 보면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에 따라 '계획'할 수 있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이 나눠지는 거 같기도 해요. 



하지만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음'이 삶의 유일한 속성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에 있던 시절에 저보다 한 살 더 많았던 동기와 외박을 나갔던 적이 있어요. 오랜만에 만끽하는 자유라 시간과 분 단위로 계획을 잡았더랬죠. 뻔하지만 계획대로 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이리저리 망가진 계획으로 터벅터벅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억울해하는 나를 가만히 보면서 그 동기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살아가는 묘미야."



영화라는 장르야말로 정교한 계획이 전제되는 작업이에요.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것 이외에도 온갖 프리 프로덕션 과정이 패스츄리 반죽처럼 켜켜이 얹혀있죠. 그런데 신기한 건 아무리 완벽한 플랜을 갖고 있더라도 촬영 현장에 가면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런 알 수 없는 우연과 화학 작용으로 어떤 영화는 마스터피스가 되고 어떤 영화는 망하기도 하죠. 이번 스타워즈의 시퀄도 처음 계획 당시에는 완벽했을 거 같아요. 처음 계획되었을 10년 전쯤에는 9편이 이렇게 나올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겠죠. 캐리 피셔의 죽음을 포함해서 말이죠. 



여행 준비를 하고 여행에 나서면서 계획의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질적인 낯선 곳에 가는 여정이라 제법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정은 전혀 알 수 없는 맥락으로 흐르더라고요. 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힘이 들어갈수록 그에 반해 여정은 전혀 다른 궤도로 튕겨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은 필요하겠죠. 여행도 사랑도 재물도 모든 게 계획대로는 안 되기 마련이지만 모든 게 끝나고 망했을 때 처음 시작했던 계획의 초심을 떠올려보는 건 중요한 의식 같아요. 이런 끝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어야 어떤 어른의 영역에 이르게 되겠고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41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6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82
126044 서울시의회, 민주당 압승 [4] 빈칸 2010.06.03 5902
126043 [사진] 진이인이와 함께한 주말 면식수행기 ^^ [16] gilsunza 2010.06.03 6311
126042 실망할 필요가 있습니까?! 러브귤 2010.06.03 4510
126041 와우 드디어 되는거에요? - 지겨운 단일화 이야기 [6] Apfel 2010.06.03 4817
126040 올킬 여사를 만났습니다. [6] 페리체 2010.06.03 6973
126039 예전보다 게시판이 너무 희미해 보여요; [10] skyafternoon 2010.06.03 5684
126038 표차가 얼마 안나네요. v 2010.06.03 4326
126037 민주당-진보신당, 결국 제 밥그릇 싸움 [10] 바오밥나무 2010.06.03 5778
126036 광우병에 대한 자료좀 부탁드립니다. [2] 2010.06.03 4689
126035 수도권 전체에서 압승했습니다. 지금은 좀 기뻐하자구요 [9] 담담 2010.06.03 5582
126034 방자전이 많이 야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근영 [10] 사람 2010.06.03 10213
126033 이경실씨 친언니가 구의원에 당선됐네요 [3] 꽃개구리 2010.06.03 7195
126032 듀나님 보시면 연락주세요. DJUNA 2010.06.03 4583
126031 로그인이 안 되는 분 계신가요? [4] paired 2010.06.03 4335
126030 [링크-우석훈 blog], 노회찬한테 뭐라 그럴 것 없다. [9] Luna 2010.06.03 6052
126029 노회찬의 득표율은 무슨 의미인가. [7] 마르세리안 2010.06.03 6861
126028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투표율 [20] clytie 2010.06.03 7137
126027 생각보다 많이 기운이 빠지네요 [2] 셜록 2010.06.03 5237
126026 배철수 아저씨는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3] 달빛처럼 2010.06.03 7505
126025 국민 아줌마 [11] 가끔영화 2010.06.03 704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