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리움>, 마그리트, 서사

2020.07.31 13:56

Sonny 조회 수: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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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움>은 거의 통째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가져와서 미쟝센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커플이 욘더라는 부동산 주택지에 들어설 때부터 마그리트 양식의 위화감이 드러나죠. 모든 주택이 동일하게 나열되어있는데 그 위로도 자연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동일한 형태의 구름들이 떠있습니다. 얼떨결에 9호 집에 갇힌 젬마와 톰은 그 집을 벗어나려 해보지만 절대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모든 혼란이 마그리트의 그림 안에서 펼쳐집니다. 부동산 문제, 인간의 거주지와 거기에 종속당하는 자본주의적 운명은 그만큼 초현실적이고 이해불가하다는 뜻일까요.


조성용님의 평을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사와 캐릭터가 부실하다는 평이었는데, 그걸 반박하고 싶으면서도 일견 납득하게 되는 부분이 있더군요. 실제로 <비바리움>에서 서사랄 것은 없습니다. 주인공들이 집을 찾는다, 주인공들이 우연히 둘러보게 된 집에 갇힌다, 주인공들이 그 집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이후에는 실패와 실패의 연속입니다. 상황은 타개되지 않고 주인공들의 정신적 상태는 점점 안좋아집니다. 이 영화의 서사라면 그 "점점"이라는 변화의 정도에 있을 것입니다. 결론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아끼자면 이 커플은 아주 불행해지구요.


일단 서사에 대한 비판을 형식적인 측면에서 변호해볼 수 있겠습니다. 제목인 "비바리움"은 곤충이나 다른 생물의 생태계를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리통 같은 것을 가리키는데, 이 영화 자체를 하나의 유리통으로 놓고 그 안에 떨어진 인간들의 반응과 투쟁을 유리벽(스크린)너머에서 관객이 관찰한다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죠. 이 때 서사는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리병 안의 생물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것들을 지켜보고 배열하는 식으로 기록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드라마적인 기승전결보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응들이 이 생물체들의 생존투쟁을 어떤 식으로 결론짓는지에 대한 "일지"의 감상일 수 있습니다.


맨 처음에 떠올린 변론은 이랬는데, 금새 또 다른 반론을 제가 마주하게 되더군요. 원래 영화를 비판할 때 다른 영화를 끌고 오는 것은 무의미한 방법입니다만, 어쨋거나 선대의 명작들에서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작품과 그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당연히 그 영향력 아래에서 논의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영화를 보고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집에 갇혀서 나오지 못한다는 설정은 큐브릭의 <샤이닝>과 피터 위어의 <트루먼쇼>를 떠올리게 합니다. 결은 다르지만 어쨌든 갇혀있는 세계 속에서 점점 미쳐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동일하죠. 이 영화들 역시 인물을 노골적으로 관찰하는 영화입니다. <샤이닝>에는 악마 혹은 악령의 시선이 있고 (가족들 포함) <트루먼쇼>에는 감독과 시청자들의 시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계 속 인물은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발버둥치며 인간적인 변화를 점점 일으킵니다. <비바리움>은 이 영화들에 비하면 뱅뱅 도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유기질적일 수 있는데 <비바리움>은 뭔가 무기질적입니다. 어떤 감정보다는 양식 안에서의 인간들에 대한 구경 같은 느낌이 더 강합니다. 그 세계 안으로 빠져들지는 못하는 거죠.


이 영화의 의도와 의미를 벗어난다면, 감흥적인 측면에서 <비바리움>은 양식만 도드라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차피 이 영화가 모든 것을 다 거머쥐려 한 것도 아니고 마그리트의 그림과 부동산 문제를 합치면 어떤 영상 서사가 나올지 아이디어 자체를 놓고 실험한 느낌이 있으니 아주 온당한 평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전체가 마그리트의 양식을 위해 복무한다는 느낌이 있죠. 끝없이 분열되는 집들과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초현실적인 느낌 자체가 설정과 양식에서만 나올 뿐 인물의 심리나 서사적 발전에서는 나아가질 않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 변모하는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냥 스트레스가 축적되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부분만 있을 뿐 이것이 인간 자체의 어떤 밑바닥을 드러내거나 궁극적인 실패를 그려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주 신비하고 몽환적인데 무한한 그 공간의 느낌만 있을 뿐이죠.


동시에 이 영화의 약점은 호러장르로서는 마그리트를 배반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들, It 이 자라나면서 괴기스러운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그런 것들은 "괴물"이라는 보편적 이미지에서 차용하고 마그리트의 그림과는 무관해서 정작 이 영화의 장르적인 재미를 가장 결정적인 곳에서는 조금 유치하게 깜짝쇼처럼 보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양식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분열되버린다는 아쉬워요. 판타지적 공포를 인간의 무의식에서 가지고 오다가 갑자기 중세시대의 악마에서 빌려오는 건 어딘지 아귀가 안맞죠. 


영화가 약간 "뮤직비디오"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영상이 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술을 위한다는 점에서 "미술"비디오라고 해야할 것 같아요. 그러면 이 영화가 재미없고 시시한 영화냐.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어떤 가능성을 어떤 한 부분에만 집중한 결과 다른 가능성을 놓쳤다는 아쉬움이라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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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다른 의문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미술은, 이미지는 과연 서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매우 강렬해서 보는 즉시 자동으로 서사를 발명하고 그것을 접목시키려는 본능이 발동합니다. 풀 밭 위의 점심식사라든가, 거인 같은 작품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앞과 뒤를 머릿 속에서 그려보게 되죠. 그러나 그렇게 펼쳐진 서사가 과연 이미지의 압축성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반 고흐의 일대기를 그의 그림으로 재구성한 <러빙 빈센트>를 보면서도 느낀 건데, 움직이는 이미지는 과연 이미지 원본의 오리지널리티의 확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그 자체로 변화, 변질되버린 서사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비바리움>은 거꾸로 마그리트 그림의 도구로서 서사가 소모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아주 신비롭고 단번에 알 수가 없어서 이미지 자체에서 계속 도상학이나 사회학적인 지식을 빌려 그 의미를 분석하게끔 하잖아요. 그렇다면 서사와 결합된 이미지의 운동도 동일한 독해를 자극할 수 있을까요. 이미지는 서사와 설정의 압축입니다. 영화는 압축되어있는 설정과 서사를 풀어나갑니다. 같은 이미지라도 시간과 운동이 결합되냐 마냐에 따라 이미지를 풀어내는 결과물은 완전히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지의 원본이 있는 경우에는 영화가 이미지라는 원점에 종속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바리움>과 마그리트의 연계에서 또 다른 약점은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초현실주의라는 점입니다. 서사는 기본적으로 개연성을 바탕으로 하는 현실적 도구입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고, 그것에서 종합적인 의미를 도출해낸다는 현실의 이해를 기반으로 합니다. 초현실주의는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의미와 인과과 뚜렷하지 않은 이미지를 보면서 감상자는 오히려 낯설어하죠. 물론 어떤 이미지들은 분명히 사회학적인 기호를 담고 있겠지만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그걸 계속 전복하려거나 확신을 깨트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점에서 <비바리움>이 담고 있는 인간의 욕망과 공포의 서사는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주 본능적이고 생물 본연의 위기의식이죠. 


<비바리움>의 결말을 양식과 연결지어본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현실과 초현실주의적인 판타지, 의미와 무의미의 충돌이 계속 일어나면서 머릿 속 수수께끼 안으로 파져들게 하는 감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론을 낼 수도 있지만 그 결론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가해에 계속 도전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매혹이 있습니다. 반면에 <비바리움>의 교훈은 너무 뚜렷합니다. 인간 세계는 잘못되었고 우리는 통 속에 갇힌 이 인간들처럼 이렇게 비루하게 끝장날 것이라는 도덕적 경고가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양식이 현실적인 경고장으로 마무리됩니다. 꼭 양식과 주제가 통일될 필요는 없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서로 마이너스가 아닐까요.


마그리트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생각해볼 수 밖에 없습니다. 초현실주의적인 것을 볼 때, 보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객관적" 태도를 견지하게 됩니다. 이게 뭐지? 뭘 의미하는거지? 하며 어떤 식으로든 해석을 하게 만든다는 거죠. 그런데 <비바리움>의 텍스트는 이미 해석이 완료되어있습니다. 뻐꾸기가 새끼를 밀어내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우리는 친절하게 자기 보금자리를 빼앗기는 결핍의 공포를 느끼고 시작하죠. 그리고 주인공들은 집을 찾고 있고, 그 집에 갇히게 됩니다. 어떻게든 집이라는 재산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그리트의 그림이 과연 풍자의 재료로 걸맞는가, 이미지 원본이 갖고 있는 그 거리감을 충분히 만들어내고 있는지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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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런 생각도 듭니다. 이왕에 마그리트의 그림을 빌려올거라면 마그리트의 그림이 일관되게 담고 있는 재현과 복사, 오리지널리티의 상실을 더 적극적으로 그린다면 어땠을까 하는 거죠. 너도 나도 다 같이 중절모 쓴 신사들이 된다는 그 양식을 담는다면 한결 더 마그리트를 통일성있게 영화로 재현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공포를 훨씬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었을거구요. 물론 이런 건 다 제작비를 따지지 않는 관객 입장에서의 감상이니 영화에 대한 평가에는 섣불리 적용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 실험성을 더 확장시켜보고 싶은 야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네요.


@ 쓰다보니 다른 이야기가 더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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