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보면, 듀게에 글을 쓰는 건 저를 흔드는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자주 그러합니다.
무엇에 도달하고자 시도하 -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 -는 글쓰기가 있는가 하면, 어딘가에 도달하기 두려워서 즉 도달하지 않기 위해서 쓰는 글도 있어요. 이런 글쓰기의 아이러니는 어둠과 아픔의 종착지를 알면서도 모른다는 표정을 연출하는데 있습니다.

모른다는 표정을 꾸민다고 해서, 직시해야 할 슬픔이나 진실이 내부에서 희석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잠시 자신을 잊을 수는 있죠.
마음이 괴롭고 무거운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모음과 자음을 끌어모으는 순간 누군가 제 내부에서 번쩍 눈을 떠요. 그리고 '그녀'와 '나'가 구분되지 않는 두 개의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두 음성이 겹쳐지면 '나'에 대한 해석은 잠시 사라져요. 그런 한점 허공을 응시하는 순간의 기능이면 충분합니다.

때로는 살면서 밖으로 내놓는 모든 말이 해석이 부재하는 아이러니의 말인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서글프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아이러니는 표면과 다른 진의, 숨겨진 의미에 시선이 닿는 방법이기도 하고 눈 앞의 삶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삶에 느낌이 닿는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지극한 몰두와 지극한 각성만 유지할 수 있으면, 제 시선이 닿는 모든 것에서 세상사의 시작과 종국을 감지할 수 있는 거라는 짐작을 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네, 도피하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자주 그렇습니다. 도피조차도 본영本影의 본영, 중심의 중심이 되는 열락의 시간이 있습니다. 생각의 절벽에서 폭포수가 쏟아져 내려요. 초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 나르시시즘의 느낌이 많이 나는 말이겠지만,  편집기를 열고 글을 쓰는 동안 제 얼굴이 제 눈에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 초점으로서의 나, 그저 실존적인 응집점으로서의 나, 그런 '나'의 집합들이 아니라 의미로서의 '나'를 확보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확보의 욕망은 사실 정결하지 않고 피로한 것이죠.

가장 단자적이고 실존적인 개체로서의 '나'로부터 욕망의 그물망인 언어 속으로 진입해 가는 일, 그러다 멀미를 일으키며 다시 물러서는 일, 그 과정을 반복하며 저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유영을 통해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었을까요? 저는 조금씩이라도 더 솔직해지고 더 명철해지고 더 넓어지고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_-
한가지 분명한 건, 오늘도 제가 삶의 매순간들에 발레리 라르보 식으로 이렇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는 거예요.
'Bonjour les choses de la vie!   삶의 소소한 일들아,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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