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그룹 잡담

2024.03.22 11:39

돌도끼 조회 수:135

한때 싸구려 저질 영화의 대명사였던 캐논 그룹.

나름의 팬층도 있고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영화보는 사람들'은 기피했던 회사였죠. 그치만 한때 미국 영화계에서 나름 입지를 다졌었던 그야말로 풍운아였습니다.

캐논은 60년대말에 미국에서 설립되었는데 그후 약 10년간은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이회사가 두각을 나타낸 건 이스라엘에서 온 사촌형제, 메나헴 골란과 요람 글로부스가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였죠.
두사람은 이스라엘 영화 역사에서는 나름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성공적인 영화인이었다고 합니다. 골란은 영화를 잘만들고 글로부스는 사업감각이 있었죠. 사실, 골란은 그야말로 영화에만 미친, 현실감각은 없는 사람이었고 그런 골란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 것이 글로부스였습니다. 둘이 합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성공은 없었을지도...

골란과 글로부스는 이스라엘에서 제작한 [그로잉 업]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대히트하면서 쌓이게된 총알을 바탕으로 미국에 진출해 별볼일 없는 군소영화사였던 캐논을 인수합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에서 만들던 방식 그대로 영화를 만들었죠. 이게 캐논의 초기 성공비결이었습니다.
미국 영화계는 다른 나라들과는 아예 단위가 다르잖아요. 미국에서 저예산, 쌈마이 취급을 받는 영화들이 다른 나라에 가면 총력을 기울여 만든 그나라 기준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슷한 급이었죠.

미국 기준으로는 껌값에 불과한 예산에 후딱후딱 찍은 영화들을 미국이란 넓은 시장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관객들을 대상으로 풀어놓게 되자 어지간해서는 손해는 보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영화들을 성공시킨 캐논은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고, 골란-글로부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킨' 사람들로 매스컴을 타게 됩니다.

매스컴의 속성이 늘 그렇죠. 골란-글로부스의 영화들의 '성공'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그 영화들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 같은 거엔 슬쩍 눈을 감았습니다. 이렇게 주변에서 불어넣은 바람이 정통으로 허파에 들어간 골란 사장님께서는 더 큰 꿈을 꾸게됩니다.

캐논은 찍어내는 영화 편수로만 보면 메이저급이었어요. 일년에 10여편은 거뜬히 내놓고 있었다고 하니...
그럼... "진짜 메이저가 못될 건 또 뭐람"
골란은 수십년간 메이저 영화사들이 고정되어있고 신규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걸 지적했고, 캐논 영화의 예산은 부쩍 올라가게 되어 천만단위를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작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불과 몇년까지만 해도 골란은 메이저들이 쓸데없이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비판하던 사람이었어요.

"나한테 천만달러 줘봐요. 그돈으로 영화 열편 찍습니다!"(사실 백만달러만 되도 그시기 캐논 기준으로는 블록버스터 수준의 어마어마한 예산...ㅎㅎ)
그랬던 사람이 스탤론 같은 스타를 끌어들이며 "천만달러를 출연료로 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슈퍼히어로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 [슈퍼맨4]를 제작하기도 했고, 글구, 스파이더맨 판권도 사들여서 그후 수십년간 분란을 일으킨 불판의 기틀을 닦기도...(...골란 사장님이 염두에 두고있던 스파이더맨의 감독은 앨버트 피언...이었다고 해요. 아니 뭐... 당시 피언은 캐논의 에이스였다구요.....ㅎㅎ)

그치만 뭐 비료 많이 준다고 호박이 수박 되겠어요. 캐논 마인드는 그대로였는데... 그래서 캐논이 돈좀 써서 만든 영화들도 상태가 뭐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캐논은 계속해서 큰돈 들여 똥볼 차는 영화를 만들었고, 저예산일 때야 몇편 실패해도 리스크가 적었지만 단위가 커지자 회사가 휘청거리게 됩니다. 글로부스가 돈 없으니 긴축해야된다고 하자. 골란은 오히려 큰소리쳤답니다. "그럼 영화를 더 많이 찍어서 더 많이 벌어야 할거 아냐". 이 형 도저히 답이 없다 생각한 글로부스는 어쩔수 없이 사촌형을 쫓아냅니다. 대신 이런저런 편의는 많이 봐줘서 골란은 '21세기 영화사'를 인수했어요.



한편, 캐논이 한장 부상하고 있을 시기쯤 메이저인 엠지엠은 망하기 직전에 몰려있었습니다. 메이저라는 품위유지를 위해 일정수의 작품을 제작해야하겠는데 가오만 있지 돈이 없던 상황이라... 그때 엠지엠은 캐논의 생산능력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캐논과 파트너십을 맺고는 캐논 영화를 엠지엠 이름으로 배급하게 됩니다. 캐논이 만들어낸 영화의 꼬라지를 보고는 실수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더라도 손절할만한 처지도 못되었...


캐논 및 엠지엠은 프랑스회사에서 자금지원을 받게 되고 글로부스는 그걸 동력으로 해서 엠지엠 사장까지 되는데, 그 회사가 사실은 문제가 아주 많은 회사였다고 해요. 그 문제가 터지면서 글로부스는 실각해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되고 캐논도 망했습니다. 캐논의 자산은 엠지엠에 귀속되었습니다.

골란은 '21세기 영화사'에서 캐논 스타일의 영화들을 계속 만들다가 거기도 캐논과 비슷한 시기(21세기가 되기 한참전)에 망했습니다.




캐논 영화들은 당시에도 지금도 웃음거리인 것들이 많죠. 그래도 닌자 시리즈라거나 척노리스 영화라거나 일부팬들한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장르물, 컬트영화 대접 받는 것들도 꽤 있죠. 뭐 진짜로 괜찮은 영화들도 가끔씩 있었고요.

한편, 캐논은 헐리우드 주류의 눈밖에 난 작가 감독이나 유럽 감독들을 지원하기도 했고 해외 영화들을 수입하기도 했어요. 골란 본인이 감독이고 영화에 미친 사람이었으니, 와인스틴같은 작자와는 달리 터치하거나 재가공하지도 않았다고 해요. 그러니 아티스틱한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거에 비해서는 자기들이 직접 만든 영화의 퀄리티가 좀...(그니까 지금의 넷플릭스와 비슷한 점이 꽤 있는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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