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관능성을 부여하는 전형적인 요소들을 몇 가지 떠올려 보면, 우선 죽음(살인).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야기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알 듯 모를 듯한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살인마가 등장한다면 그는 되도록 인물 좋고 부자이고 인텔리적인 사이코패스여야 하겠죠. 종종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동정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그 악마적인 매력에 현혹되어 노예가 돼버린 남녀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 신화적인 상상력과도 연결된 근친상간. 개인적으론 누나와 남동생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아빠와 딸, 오빠와 여동생, 엄마와 아들이라면 어딘가 권력구조적 이미지도 연상되는데, 누나와 동생은 왠지 조금 더 순수 에로틱의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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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작년 겨울너와 이별>(2018)은 그런 전형적 요소들을 배치하면서,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반전을 거듭하여 긴장감을 유지해 줍니다소설 원작으로 영화상으로는 제2장부터 시작하는 구조가 독특한데, 후반에 이르러 순서가 맞춰집니다.

 프리랜서 작가인 야쿠모는 사진작가 기하라자카의 작업실 화재사건을 취재하며그가 불길에 휩싸인 여성 모델을 계속 촬영했고 그 사진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혹을 가지게 됩니다탐문 취재를 바탕으로 야쿠모는 그의 성장배경과 이상 성격누나와의 묘한 관계 등을 알게 됩니다그리고 한 잡지사에 사건에 대한 기고를 의뢰하는데편집장인 고바야시는 어째서인지 오히려 야쿠모를 미심쩍어 합니다그리하여 사진작가와 누나작가와 그 여자친구편집장 사이의 꼬리잡기 놀이가 시작됩니다깔끔한 소품 느낌의 스릴러 드라마로기하라자카가 자꾸 기하라 작가로 들리는 건 함정.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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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이 왠지 안맞아 보여서 자꾸 고쳐 씌워주고 싶었던 야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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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내 남자>(2014)는 좀 더 파격적인 붉은색의 치정 멜로입니다나오키 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며, 작가에 따르면 과거로 거슬러가는 이야기 구조는 한국영화 <박하사탕>을 참고했다고 합니다그래서인지 원작에서는 옆집 한국인 여자라는 인물이 잠깐 등장하기도 합니다. 주인공한테 한 대 맞고 퇴장하는 역할이긴 하지만(...) 영화는 원작의 시간 순을 따르지는 않으며, 일본영화가 대개 좀 그렇듯 전개는 느슨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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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나미로 가족 모두를 잃은 10살 소녀는 먼 친척에게 입양이 되는데, 양아버지가 된 사람은 아버지라 하기엔 너무 젊은 26세의 남자입니다. 둘이 함께 살게 된 홋카이도의 거대한 설원과 유빙의 풍광은, 마치 소녀가 겪은 쓰나미처럼 압도감과 공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위험에 둘러싸인 외로운 두 사람은 가족인지 연인인지 정의하기 어렵고 어쩌면 할 필요도 없는, 절대적인 의존 관계가 되어 갑니다. 둘의 관계를 방해하거나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져도 됩니다. 그러나 어린 소녀는 자라고 젊은 남자는 늙어가지요. 소녀가 알을 깨는 순간, 그들만의 세계는 초라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기에 위태롭습니다.

 대체로 그렇듯 원작 본 사람들은 영화가 불만인 듯한데, 다행히 원작을 몰랐던 터라 영화도 나름 흥미롭게 봤습니다. 남자 역의 아사노 타다노부가 간만에 자기 색깔의 역을 선보이는지라 그의 팬이라면 또 볼만한 것 같습니다. 책도 한 번 볼까 했는데.. 왠지 초반부 조금 읽고선 흥미가 줄었어요파격적이기에 호불호가 극명할 수 있는 스토리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여자 캐릭터가 조금 더 담백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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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양의 나무>(2018)<종이 달>을 만든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미스테리 드라마입니다. (왜 그랬는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껀줄 잘못 알고 보게 됨..) 

인구 감소에 시달리는 시골 지역에 전과자를 정착시키려는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가 가동됩니다. 한적한 어촌 마을인 우오부카로 가석방 된 이들은 총 6명의 살인 전과자들로, 시청 직원인 츠키스에는 그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습니다. 편견 없이 그들을 돕고자 했던 츠키스에의 생활 속으로 그 존재들은 점점 가까이 침투해오기 시작합니다. 조용한 마을에 뭔가 일이 생길 때마다 츠키스에의 마음도 조금씩 균열되고, 그들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그저 일어날 일이었는지 알 수 없음에도 의심은 넝쿨처럼 자랍니다. 한편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주민들과 섞여 있던 전과자들은, 마을 전통인 노로로 신의 축제를 계기로 어렴풋이 서로를 눈치 채게 됩니다.

 만화 원작으로, 흥미로운 설정에 비해 뒷심은 좀 부족한 인상도 있습니다. 사실은 전과자 6명 보다는 주로 츠키스에의 시선이 중심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츠키스에 역을 맡은 니시키도 료가 중후반부 즈음에 보여주는 눈빛은 의외의 근사한 수확입니다. 전과자 중 한 명의 역할을 맡은 기타무라 카즈키는 처음 등장하는 뒷모습부터 너무 불량해서 피식 웃음이 납니다.ㅋㅋ <작년 겨울, 너와 이별>에서 70년대 방화 미남 스타일의 편집장으로 출연했던 그는 <양의 나무>에서는 폭행치사범으로 불량미를 한껏 뽐냅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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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직원에게 담배 셔틀 시킬려고 하는 불량한 뒷모습..)



 태풍이 지나가고 올해도 벌써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을 했네요.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 궁금했는데 개막작 예매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ㅋㅋ 나중에 볼 기회가 있겠죠! 
2편 예매했는데 재밌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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