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 잡담

2024.01.08 16:08

돌도끼 조회 수:290

요즘 사람들은 코난하면 시건방진 안경잽이 꼬맹이를 제일 먼저 떠올리겠죠. 만화 안보는 사람은 미국 토크쇼 진행자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그 꼬맹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코난하면, 발가락이 유난히 발달된 반바지 차림의 미래 소년, 아니면 빤스바람에 칼한자루만 차고 다니는 고대 청년이었습니다.

고대 청년 코난은 1930년대 미국 작가 로버트 E 하워드의 손에서 탄생된 캐릭터입니다.

하워드는 별 길지도 않은 기간동안, 대부분의 작품을 펄프잡지에 투고하는 형태로 발표했습니다. 잡지란 건 일회성 소모품이니, 시간이 지나면 거기 나왔던 것들은 다 사람들 기억속에서 사라질 운명이죠.

1940년대, 하워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10년 후, 하워드 작품집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출간됩니다. 약 30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의 절반 정도 분량이 코난 이야기였고, 이게 코난이 처음으로 온전한 책 형태로 출간된 거였다고 합니다.

1950년대에는 처음으로 코난 이야기만을 모은 전집이 나옵니다.
이때 이 전집의 편집을 맡았던 사람이 SF/환타지 작가이기도 한 L S 드캠프였는데, 잡지도 아니고 소설책에 무슨 편집자가 필요한가 싶기도 한데... 미국에선 그게 꽤 중요한 역할인가봐요. 제가 출판쪽을 전혀 모릅니다만...
드캠프는 하워드의 온갖 코난 이야기를 끌어모으고 미발표작까지 다 모아봤지만 그래봤자 책으로 두어권 남짓한 분량밖에 안나왔어요. 원래 잡지에 발표된 단편들이었으니까. 전집이란 말을 붙이기에 좀 민망한 두께... 드캠프는 분량 불리기에 들어갑니다.
하워드의 미완성 원고를 가필해 완성시키기도 하고, 거기까지야 정상적인 선으로 볼 수 있는 일인데... 그래도 모자라서는 하워드가 쓴 다른 모험소설들의 주인공을 코난으로 바꿔서 싣기도 했어요. 그리고도 모자라 마지막엔 스웨덴 출신 코난 팬 비요른 뉘베리가 쓴 코난 '팬픽'까지 추가해서 전 7권의 전집을 만들어냅니다.

지금같으면 그런짓 했다간 큰일나겠죠. 하지만 50년대니까요. 드캠프는 오히려 코난 사가를 정립한 공로자 대우를 받았습니다. 코난 이야기가 연대기형태로 정리되어 체계를 갖춘게 이때부터고, 드캠프가 한 분량 불리기는 나중에 수많은 다른 작가들이 코난 이야기를 창작해 코난 사가가 확장되게 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하워드와 친분이 있었던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 역시도 작가 사후 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추가하고 덧붙여서 크툴루 신화란게 만들어진 거니까요. 물론 지금 현재에 그런 일을 했다간 바로 소송걸리겠지만...ㅎㅎ

60년대에 미국에 반지의 제왕이 히트하며 환타지 붐이 불었다고 합니다. 업자들이 어디 쓸만한 환타지물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뒤지다 보니, 있었습니다. 그것도 미국에 톨킨보다 앞선 시기에. 바로 코난 사가였죠.
코난 소설은 재판되었고,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코난은 잡지연재되던 당시를 제외하면 아주 인기있는 출판물까지는 아니었던듯하고, 50년대 출판된 버전도 이미 절판된 뒤였죠. 하지만 60년대의 코난붐은 거의 해리포터급이었단 이야기도 있네요.

이때도 드캠프가 편집을 맡았습니다. 드캠프는 기존의 7권 분량을 재판한 것 말고도 본격적으로 본인 및 동료인 린 카터 등이 쓴 코난 패스티시 소설들을 추가해서 12권으로 분량을 늘립니다.

이 60년대판 코난 시리즈에서 주목할 점은 책표지를 프랭크 프라제타가 그렸다는 겁니다.
이미 타잔 등 고전 모험물을 재판할 때 프라제타에게 표지를 맡겨서 크게 성공한 전력이 있었던 출판사에서 코난의 표지도 프라제타에게 맡긴 거였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선택할 때 표지 그림이 주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죠. 60년대 코난붐의 1등공신이 프라제타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프라제타의 코난 그림들은 환타지 아트의 결정판으로,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은 지금 사람들이 코난하면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도 하워드의 글이 아니라 프라제타의 그림에서 나온 것입니다.(둘 사이에 꽤 차이가 있습니다.)

출판계에서 환타지 붐이 불게되자 환타지 만화를 내달라는 요구가 마블 편집진에게 빗발치게 되었고, 스탠 리는 슈퍼히어로물만이 만화의 왕도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 환타지 만화를 낼 생각따위는 없었는데, 하도 독자 요구가 이어지니까 걍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는 생각으로 하나 내기로 했답니다.
스탠 리는 보조 편집자 로이 토마스에게 일을 맡기고, '되도록 돈은 들이지말 것'을 요구사항으로 붙였다고 합니다.
로이 토마스는 코난을 만화화하기로 하고, 제작비 절감을 위해 글은 본인이 직접 쓰고 작화는 당시 외국에서 와서 자리를 못잡고 노숙자나 다름없는 상태이던 신인에게 맡겼습니다.
스탠 리는 대충 시간이나 끌다 인기 없으면 그걸 빌미로 '여러분의 요구는 들어드렸습니다' 하고는 끝낼 생각이었다는 모양인데, 스탠 리의 계획과는 달리 코난 만화는 대박납니다. 그냥 대박도 아니고 스파이더맨과 더불어 70년대 마블의 대표만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블 코믹스의 영역까지 점령하게 되면서 코난은 확실하게 미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 아이콘의 하나로 알박기를 하게됩니다.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시간이 지나 잊혀질뻔한 적이 몇번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럴 일은 없게되었죠.

60년대에 미국 출판계, 70년대에 미국 만화계를 접수한 코난은 80년대에는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미국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코난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부작용도 있었는데, 영화 주인공이던 아놀드 슈워제네거(프라제타의 그림을 찢고 나온 것 같은 남자)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코난=아놀드라는 인식이 박혀버려서 그후 몇십년간 더이상 코난 영화가 나올수 없게 되어버린 거였죠.

그 와중에도 코난 패스티시 소설들은 꾸준히 나왔고, 게임으로도 간간히 나오고, 실사및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로도 나오고 어쨌거나 꾸준히 이런저런 형태로 코난 작품들이 꾸역꾸역 나왔습니다. 화끈하게 대박을 친 건 없지만.
마블 만화는 90년대까지 계속되다 인기하락으로 중단되었는데 2000년대에 흑마 만화사에서 라이센스를 따서 재런칭, 다시한번 대박납니다. 지금은 흑마에서 또 판권이 넘어가 다시 마블 이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즉 디즈니 소속...)

그 사이에 코난 만화의 조역으로 탄생한 레드 소냐도 자기만의 시리즈로 갈라져 나갔고요. 지금은 코난과 소속사가 달라져서 만나기가 힘들게 되었다던가...

2011년 원작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한동안 세계 각지에서 코난 출판 붐이 불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에 아쿠아맨 주연으로 몇십년만에 영화판 리메이크가 나오기도 했지만 망했습니다.



...


우리나라에 코난이 처음 알려진 건 아마도 80년대 초, 일본에서 70년대에 저연령층용으로 재판된 버전(코난이 일본에 처음 알려진 건 70년대 초이고 70년대 중반쯤에 소년소녀세계명작에 편입됩니다)이 무단번역 출간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아동도서로 나왔기 땜에 일부 읽어본 아이들만 기억하고 있다가 이후 아놀드 주연 영화로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집니다.

그 뒤로 이런저런 것들이 찔끔찔끔 들어왔지만 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고, 2006년에 처음으로 완역이 시도되었으나... 삽화의 처참한 퀄리티만이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었을 뿐 조용히 망하고... 저작권만료시기인 2011년에 다른 번역판이 나오긴 했는데 여전히 사람들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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