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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사건이 이래저래 많은 한 주였습니다. 이재명이 목에 칼을 맞는 초유의 테러범죄가 발생했고, 윤씨는 기어이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정말 이를 갈게 만들더군요. 독감이 어느 정도 회복도 되고 날씨도 아주 나쁘지 않아서 촛불집회로 향했습니다. 행진 시간을 잘못 알아서 또 늦게 가는 바람에 행진대열을 쫓아가느라 미친 듯이 뛰어야 했지만...


오랜만에 시청역에서 삼각지역 근처의 용산총독부까지 걸었습니다. 지난주보다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온 것 같더군요. 사회운동도 헬스장 운동이랑 비슷한 것인지...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탄핵을 외치면서 걸었습니다. 신원식 해임도 중간중간 외쳤습니다. 이대로 걷다가 끝나려나 싶었는데... 


용산총독부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워지면서 보니, 보수 단체가 작은 봉고차에 스피커를 한 스무개쯤 달아놓고 반복재생으로 어떤 구호를 계속 외치게끔 해놓았더군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괴로웠습니다. 도대체 왜 집회자가 직접 외치지도 않는 걸 반복재생으로 틀어놓는지, 메시지 전달보다는 오로지 음량만 고려해서 그걸 틀어놓는건지 목적이 너무 뻔해서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그냥 촛불집회 방해하려는 사보타쥬 목적이죠.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소리 재생은 어느 정도 데시벨 제한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떤 집회 현장이든 이런 식으로 사보타쥬를 해버리면 시위를 방해할 수 있게 되잖아요. 퀴퍼도 그렇고 촛불집회도 그렇고 극우보수단체들은 훼방을 놓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더군요. 본인들도 시위를 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소리가 정말 흉물스러워서 공포영화의 사운드 같았습니다. 


거기다가 경찰도 집회 방해를 했습니다. 용산총독부 앞에서 시위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 가려면 다섯명씩, 피켓이나 깃발을 내리고 경찰들이 짜놓은 좁은 대오를 통과해야한다나요. 집회 진행자도 짜증을 숨기지 않더군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뭐 이렇게 갑작스런 추가제약을 걸면 사람들이 용산총독부까지 안가고 그냥 이탈할거라 기대했겠죠. 그런데 이탈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이탈하려다가 어디까지 하나 싶어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보수집회는 이재명 구속 구호를 반복재생하고 있었구요. 시위를 빨리 빨리 끝내야 교통도 원활해지고 다들 집에 일찍 갈텐데 괜한 기싸움만 하다가 하이고...


중간에 살짝 몸싸움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시위대가 용산총독부쪽으로 빠지게끔 경찰이 통제를 다시 했고 트럭이 빠지고 남은 공간을 경찰들이 메꿔서 벽으로 만들었습니다. 거기로 나가려던 시위대 몇몇 분들이 경찰에게 밀리면서 좀 격해졌습니다. 그걸 보면서 현장의 시위라는 게 굉장히 유동적인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촛불행진이 딱히 이런 몸싸움을 계획한 게 전혀 아니었는데, 경찰들이 전혀 계획에 없던 시간끌기를 하니까 몇몇 분들이 좀 약이 올랐던거죠. 시위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격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걸 상기했습니다. 사람들이 폭력적이거나 경찰을 때려잡아야겠다고 결심해서 그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니죠. 이게 순간 어떤 사람들이 흥분하면 갑자기 흐름 자체가 변합니다. 


그나마 "평화시위"를 지향하는 촛불시위라 이게 통제가 되는거지 BLM 시위나 다른 시위들은 순식간에 파괴적으로 변할 수도 있겠더군요. 사람들이 공통된 분노를 가지고 행진을 하는 건 군중이라는 전혀 다른 단위의 사회적 생명체입니다. 종종 한국 네티즌들이 다른 나라 시위는 폭력적이다, 얌전하게 시위만 하지 왜 약탈을 하고 기물파손을 하느냐 하는데 그건 정말 시위를 이루는 에너지 자체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원래 인터넷이라는 게 멋모르고 뭘 재단하는 사람들 태반이지만...


어쨌든 무사히 용산총독부까지 가서 시위를 마쳤습니다. 특검법 거부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난게 느껴졌고, 또 이 화를 함께 행진하면서 구호로 외친다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신년 초 촛불행진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마 다음주에는 영화를 봐야해서 참석이 어려우니 다른 분께서 촛불행진에 나가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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