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이드 스쿼드> 보고 왔습니다

2021.09.11 10:57

Sonny 조회 수:637

본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후기는 이제야 씁니다. 생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감상이고 뭐고 아무 것도 쓸 기력이 안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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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할리 퀸은 우려와 다르게 꽤 잘 뽑혔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리 쎈 여자, 강한 여자를 그려도 결국 남자주인공의 팔짱을 끼워주는 역할로 전락시키고 마는 제임스 건의 전력이 있으니까요. 할리 퀸은 무사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었는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에서 할리 퀸은 자유로운 '미친 여자'로 나옵니다. 하이라이트 액션씬을 독점하기도 하고요. 할리 퀸의 독무대는 굉장히 유려했고 전작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할리 퀸의 반동을 위해 깔려있던 전제들, 고문씬 같은 것들이 너무 가학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긴장도 했지만 생각보다 무난하게 흘러갔습니다. 그의 학살 씬은 이 시리즈만이 가지는 "광기"라는 개성을 가감없이 보여줬던 것 같아 흡족했습니다. 그는 춤을 추듯이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찌르고 쏘고 죽여버립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었죠. 제임스 건이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를 잘 해석하고 제대로 활용할 각오가 있던 것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서사 주변부로 치워놓고 적당히 건든 다음에 활약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캐릭터를 감독이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워낙에 독립적인 캐릭터이니 혼자 놀아도 상관없지 않겠냐는 마인드는 좀 배짱이 없어보였어요. 할리 퀸은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본래의 미션을 수행할 때 혼자 납치되서 중심서사에서 아무 것도 활약을 못하거든요. 그의 광기가 일으키는 파국이나 우연한 승리가 더 재미를 줄 것도 같았는데 영화는 안전한 재미를 위해 할리 퀸을 다른 무대로 격리시켜놓았습니다. 전작에서의 "연애중독"이라는 소재가 또 나와서 이 역시도 반전이 있다지만 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를 꼬마 여자아이처럼 그려놓는 게 그를 가장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작품들은 언제나 그를 성인 여성의 욕망에서 탈착시키지 못하는 인상이 있더라구요. 


그리고, 이 작품을 보면서 장르적인 질문에 맞닥트렸습니다. 히어로 영화 장르는 과연 B급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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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큰 가능성을 느꼈던 캐릭터는 폴카도트입니다. 그는 음침하고, 괴상한 소리를 하고, 혼자만의 환영을 봅니다. 그의 초능력은 자신이 원해서 가졌다거나 온전히 통제가 가능한 게 아니라 환자가 앓고 있는 병처럼 묘사됩니다. 이런 캐릭터야말로 바로 메이저 히어로 장르에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커다란 힘과 그 힘을 이용한 악당 퇴치'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B급 정서를 담고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요. 애초에 이 시리즈가 내세운 컨셉은 사회에서 격리된 geek들을 무대로 끌어올려서 괴상한 걸 보여주겠다는 것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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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는 이 캐릭터의 매력을 전혀 활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BADASS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폴카도트는 머리 좀 이상한 동네 친구 정도로만 써먹기 때문입니다. 이 캐릭터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B급 정서를 내세우는 이 영화가 결국 A급 정서에 함몰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괴짜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찌됐거나 멋있어보이고 주류층들의 인정을 받을 법한 근육마초맨들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헐리웃에서 제일 섹시하다는 이드리스 엘바와 프로레슬러 슈퍼스타인 존 시나가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죠. 그들은 메인스트림에 딱 걸맞는 터프하고 결단력있는 캐릭터들로서 화끈하고 멋있는 액션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중심이 마초 헬스남들로 맞춰져있고 그들이 아주 위험한 괴물을 쓰러트린다는 것이 주목적으로 설정되어있는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B급 정서가 되겠습니까. 그건 이미 아놀드 슈왈츠제너거와 실베스타 스탤론이 주구장창 하던 건데요. 


제임스 건은 이 영화를 B급으로 포장하기 위해 고어한 폭력씬들로 발라놓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나오는 새를 돌로 쳐죽이기라든가, 아군들이 몽땅 총에 맞아 죽는다거나, 잘못된 사람들을 죽인다거나 하는 씬들로요.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위악스러워집니다. 어떻게든 나쁜 놈인 척하고 싶어하고 고루하지 않은 척 하지만 결국은 다수의 타인을 위한,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한 익숙한 권선징악 구도로 가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의 폭력적인 씬들은 불쾌하다기보다는 의미값이 0인 씬들이 되고 결국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쎄보이고 싶어하는 어설픈 불량함만을 보입니다. 험악하고 잔인하다는 건 B급 정서의 핵심이 아닙니다. 히어로가 히어로답지 않아야한다는 게 B급 영화의 핵심이죠.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정서는 제임스 건의 가오갤 시리즈에 나오는 것들만큼이나 보편적입니다. 가족주의,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좋은 아빠였던 기억, 우정놀음, 약자로서의 소외감과 좋은 세상에 대한 고민... 그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하지만 좋은 세상에 민감하고 자신의 도덕적 성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뭘 놓지 못한 채로 계속 신경 안쓴다는 흉내를 내는데 그게 별로 멋있지가 않아요.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고루합니다. 미국의 위선을 고발한다고는 하지만 그 자체가 영화의 '정의를 놓을 수 없는' 강박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데드풀부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까지, B급을 표방하는 영화들은 결국 A급의 환영에 사로잡혀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더 넓혀서 생각을 해보면 킹스맨이나 킥애스도 그랬었죠. 히어로가 아니되, 히어로 워너비들을 포진시켜놓고 히어로랑 똑같은 임무를 시키는 건 이제 좀 지겹기도 합니다. 나도 나쁜 놈이지만 너네들같은 나쁜 놈들은 못참겠다? 히어로 장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크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이미 오만상 찌푸리며 하고 있는 게 배트맨이잖아요. 저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시리즈가 조금 더 발랄한 freak 쇼가 되길 바라지만 영화사들이 보편적 감성에 업혀가려고 하는 성향상 그건 좀 요원한 일일 것 같습니다. 


@ 저는 폴카도트 캐릭터가 너무 아까워요. 이 캐릭터가 어머니의 환영에 사로잡힌 걸 왜 구해주지 못한 걸까요? 고통받는 괴짜를 총알받이로 쓰고 버린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냥 괴짜들이 행복한 이야기로 하면 안될려나요. 아웃사이더고 괴팍해서 신경이 쓰여서 영웅답지는 못한 인간들이지만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게 정말 B급 정서에 맞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 피스메이커를 비판하던 블러드 스포트가 과연 할 말이 있을까요. 미국의 정보 은폐를 비판하던 그가 결국 한 선택은 "우리의 안위"를 위해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었고 그건 결국 미국의 행동과 다를 게 없어보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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