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촛불시위!

2024.01.01 12:18

Sonny 조회 수:269

20231230-164920.jpg


원래 어제 올렸어야 하는 글인데 하루 지나고 올리게 되네요. 그동안 늘 참여하고 싶었지만 주말마다 놀거나 쉬느라 못나가서 아쉬웠던 촛불시위를 오랜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집회 전체를 참여하는 건 좀 무리같아서 행진만 하고 오고 오는데, 이번에는 시간을 좀 잘못 알아서 행진 시작 뒤에 집회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시위대를 쫓아가서 행진에 간신히 합류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 집회를 하면 한 4시쯤에는 현장에 도착해야 행진을 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분들의 나이가 제 또래들보다 좀 많아서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괜히 한국인 특유의 "순수일반시민"의 자기검열도 하게 됐달까요.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다른 분들이라고 일반 시민인 것은 아닐텐데, 이른바 "꿘"과 자신을 분명히 경계짓고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괜히 탈색시켜보려는 그런 생각말이죠. 한 10분쯤 걸으면서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을 외치다보니까 그런 의식이 금새 사라졌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도 또 생각이 나고 그랬네요.


시위를 하면서 무력감을 좀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신문 기사를 링크하거나 댓글로 대통령 및 여당을 욕하는 것에 정말 회의를 많이 느꼈거든요. 제 블로그에 윤석열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는 기사들을 하루에도 몇개씩 올리곤 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온라인에 조잘대는 건 정작 비판의 대상자에게 어떤 부담도 안겨주지 못하겠죠. 조금 더 실질적이고 유물론적인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 몸을 직접 이끌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실제로 모여서, 육성으로 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공유하는 경험은 꽤나 후련했습니다. 


현장을 걸으면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120 bpm]을 떠올렸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들이 정치적 시위에 어색하게, 때론 격렬하게 참여하는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새겨준 영화라 그런 것 같아요. 되짚어보니 다 프랑스영화입니다. 격하게 논쟁하고 때론 과격한 수단도 가리지 않는 그런 정신을 제가 좋아해서 그런 거겠죠. 한국의 역사에도 이런 민주시위가 없었던 건 아닌데 한국영화가 그리는 시위들은 어째 수동적이고 피해자의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군부독재정부가 시위를 진압하거나 참여자들을 괴롭히면, 그 폭력에 피투성이 시체가 되거나 피학적인 공감만을 호소한다는 점에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이제 한국영화계는 한국의 민주시위 영화를 조금 더 젊고 시민의 시선에서 그릴 필요가 있진 않나 생각해봅니다. 양복입은 중장년 남성들끼리의 느와르 권력 암투나 무협지 스타일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요.


새해에도 조건만 되면 부지런히 촛불시위에 나가야겠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부모님을 따라 시위에 같이 나왔는데 귀여웠습니다.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를 후세대 시민으로 열심히 누려야겠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41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6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92
125246 힐링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 [5] LadyBird 2024.01.15 231
125245 에피소드 #72 [2] Lunagazer 2024.01.15 46
125244 프레임드 #675 [4] Lunagazer 2024.01.15 46
125243 시대유감 - 서태지의 2024 리마스터링 버전과 첫 뮤직비디오 + 에스파의 2024 리메이크 버전 뮤직비디오 상수 2024.01.15 209
125242 [침묵]을 읽고. [11] thoma 2024.01.15 284
125241 바낭 - 맛있는데 떨이식 1+1이라서 좋으면서도 아쉬운 신제품 과자, 오이호빵(?!), 편의점 잡담 [2] 상수 2024.01.15 209
125240 끌로드 샤브롤의 [의식]을 다시 봤습니다 [6] Sonny 2024.01.15 194
125239 컴퓨터가 반고장나면 좋은 점 [3] catgotmy 2024.01.15 165
125238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23 추천작 리스트 [3] 상수 2024.01.15 375
125237 2024 Critics’ Choice Award Winners [1] 조성용 2024.01.15 139
125236 류츠신 원작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 공식 예고편 [5] 상수 2024.01.15 356
125235 [왓챠바낭] 추억으로 즐겁게 봅니다. '종횡사해' 잡담 [6] 로이배티 2024.01.14 307
125234 프레임드 #674 [4] Lunagazer 2024.01.14 75
125233 컴퓨터가 망가지고 [2] catgotmy 2024.01.14 188
125232 홍콩느와르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4] 돌도끼 2024.01.14 332
125231 라면 선전하는 아놀드 [2] 돌도끼 2024.01.14 318
125230 [왓챠바낭] 참 잘 했어요 왓챠.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잡담입니다 [20] 로이배티 2024.01.14 381
125229 이런저런 본 것 들(카지노 스포일러) 메피스토 2024.01.13 157
125228 Children of Dune/린치의 듄 메시아 각본 [1] daviddain 2024.01.13 187
125227 누구일까요? 엄친아를 가볍게 뛰어넘는 사기캐 [4] 왜냐하면 2024.01.13 52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