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에 '다운튼 애비' 영화가 나옵니다. 트레일러로 유추하건데 1927년의 영국 요크셔에 그랜섬 백작가 크롤리 패밀리는 영국 왕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크롤리가의 장녀 메리는 이 큰 행사를 혼자서 다 감당하기 힘들어, 은퇴한 집사 카슨씨를 다시 부르게 되죠. 티비 시리즈 '다운튼 애비'는 화려한 파티, 아름다운 의상, 사냥 장면을 뽐내는데, 그런 장기를 보여주기에 적당한 상황이지요.


'다운튼 애비'는 하이클레어에 있는 하이클레어 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프로듀서들은 이 저택이야말로 드라마의 중요 인물 중 하나라고 강조합니다. 지상으로 5층 (실제로는 3층), 지하 공간이 있고 지하에서는 하인들과 하녀들이 일합니다. 윗층/아랫층이 중요한 요소지요. 아랫층에 사는 사람들은 벨이 울리면 윗층으로 달려갑니다. 아래층 사람들은 검은 치마/흰 앞치마 혹은 검은 정장/흰 셔츠를 입습니다. 일부 하인들은 '몽키 수트'라고 부르면서 그 옷차림을 싫어하죠. 윗층 사람들과 접촉하는 접점이 많을 수록, 아랫층 사람들은 윗층 사람들과 비슷하게 입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닙니까? 


다음은 안수찬 기자가 쓴 가난 보고서입니다.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년들 역시 도심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 있 긴 하다. 편의점·대형마트·커피전문점·백화점 등에서 일한다. 그래 도 우리는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의 표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모든 청년 노동자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은 빈곤을 탈색시킨다. 예부터 귀족은 하인들이 제 옷을 입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불쾌하기 때문이다. 가정부는 주인이 마련해준, 레이스가 달려 보기에 좋은 ‘메이드 드레스’를 입는다. 이제 빈곤 청년은 기업이 마련해준, 화려하여 금세 눈에 띠는 유니폼을 입는다.


우리 곁에서 일하는 빈곤 청년은 자신의 가난을 '화장'한다. 화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곁에 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용모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단정하게 유니폼을 입은 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의 거의 전부는 시급 4천 원짜리 계약직이다.


'다운튼 애비' 이야기는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1912년, 에드워디안 시대에서 시작하여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을 지나 1920년 중반까지 달려갑니다. 언뜻 보기에 귀족들의 한가한 사랑 이야기 같은 이 시리즈에는, 20세기 초반에 영국 귀족들 (앙샹 레짐)이 어떻게 새로운 자본을 빨아들였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랜섬 백작 (아버지)는 신대륙 미국에서 온 유대인 부호의 딸과 결혼하지요. 그 지참금으로 다운튼 애비는 첫번째 위기를 넘깁니다. 그리고 나서 그랜섬 백작은 자신의 아내인 코라 부인의 지참금을 한 회사에 홀딱 투자해서 날립니다. 이 두번째 위기는 장녀 메리가 중산층 변호사 매튜와 결혼해서 해결합니다. 매튜는 약혼자 라비니아가 있었는데, 라비니아에게는 런던에서 변호사로서 큰 돈을 번 아버지가 있었죠. 라비니아의 유산으로 다운튼은 두번째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그랜섬 백작의 차녀인 이디스 크롤리는 허버트 펠험과 결혼하는데, 허버트는 식민지에서 차(茶) 재배로 큰 돈을 번 친척이 죽어서 상속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신대륙의 돈 - 글로벌 도시 중산층의 돈 - 식민지에서 빨아모은 돈으로 이 귀족 가문은 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죠. 15년 남짓 동안 다운튼 애비는 기술의 충격 (라디오, 전화, 자동차, 냉장고)과 계급의 붕괴를 겪습니다. 저택 아랫층에 있던 하녀는 평지로 올라와 식당을 차리고, 회계사가 되고, 자동차 운전수는 자동차 판매점을 차립니다. 


영화 '기생충'과 '다운튼 애비'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운튼 애비의 하인들은 극단적으로 갈등을 폭파시키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에게는 시간과 여유가 있어요. 하지만 한국엔 없죠.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가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인터뷰예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 몇백년에 걸쳐서 만들어온 근대화를 짧은 시간안에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천천히 갈등을 겪을 여유가 없죠. 지금의 계급(선)은 돈으로 급조한 것이고, 그래서 계급을 넘는 방법도 지키는 쪽도 필사적이죠. 그래서 이건 소득 불평등에 대한 영화일 뿐만 아니라 계급에 대한 영화지 싶네요. 듀나님 리뷰를 보니까 영국에서 리메이크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네요. 리메이크 잘할 것 같아요. 계급간의 미묘한 갈등과 선을 넘고 싶은 간절한 욕망에 대해서는 영국인들이 잘 알겠지 싶네요. 


영화 '기생충'에 반전이 있고 그게 집과 관련이 있다고 하길래, 저는 지하실에 박사장 아버지를 숨겨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집 주인이 벤처로 성공했다지만 사실은 그 부는 아버지에게서 왔을 거라고. 그 아버지가 죽으면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로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아버지를 숨겨놨을 거라고.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고나서 이건 너무나 진부한 설정이기에, 이런 결말이라면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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