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정의로운 목소리

2019.09.26 22:18

Sonny 조회 수:949

가난에 대한 어느 남초 커뮤니티의 글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더군요. 저는 그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해당 커뮤니티에서, 그가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쓴 글을 당시 읽었기 때문이죠.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여자의 공포를 이해하지만, 남자도 남자만의 공포가 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아주 정성스럽게 본인의 경험을 곁들이고 온갖 고뇌를 붙여서요. 저는 그와 지독한 키배도 몇번 했었지만 그 때마다 저는 프로불편러 아니면 트집쟁이로 싸몰렸었습니다. 저도 그를 어쩔 수 없는 진보메일로 분류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그가 무슨 글을 쓰고 댓글을 쓰든 구석이 부숴져있는 담벼락을 보는 기분이 듭니다. 그를 기억하다보니 또 다른 댓글도 생각나네요. 여자들의 생리통이 아직도 이렇게 만성적인 이유는 남자가 생리통을 겪지 않아서 그렇다는 남성중심적 의학계를 비판하는 글에, 뇌부터 고쳐야 한다는 댓글을 달았던가...

그는 제게 "좋은 글을 쓰는 남자"의 표상입니다. 통찰력이나 문장력에는 저도 늘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젠더이슈만 가면, 그는 해묵은 아저씨처럼 굴곤 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알 거 다 알고 뻔히 보이는 현실을 저렇게 애써 부정하며 안티 페미니즘의 선봉에 설까. 그는 아니라고 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올바른 페미니즘을 찾는 수많은 남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지식과 통찰력이 아무리 정교해도, 젠더 이슈에서는 기어이 나무위키 수준으로 전락해버리는 그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정의당 같은 인간입니다. 저는 저런 남자들이 계급투쟁에 얼마나 절실한지는 알아요. 그건 진짜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여성이슈만 그 투쟁에서 쏙 빠져있을 뿐.

그 글이 얼마나 훌륭할지 저는 논평할 계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그의 글을 중립적으로 읽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러면서 감히 생각해봅니다. 왜 여자들은 남자를 용서하지 못하는지 알 것 같다고. 여성을 비켜나가는 남자의 정의롭고 훌륭한 목소리에, 저는 욕지기부터 올라옵니다. 아주 많은 남자들이 세계 전반에 대한 사색과 분석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세계의 절반을 채우는 여성의 현실과 이를 왜곡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합니다.

그냥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제 기분과는 무관하게 좋을 글이겠지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5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0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11
125179 [넷플릭스바낭]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님만 믿고 갑니다. '헝거' 잡담 [8] 로이배티 2024.01.09 292
125178 연상호각본 김현주 넷플릭스 신작시리즈 선산 예고편 [2] 상수 2024.01.08 419
125177 프레임드 #668 [4] Lunagazer 2024.01.08 63
125176 임선애 감독, 이유영, 임선우 주연 - 세기말의 사랑 메인예고편 상수 2024.01.08 198
125175 파묘 1차 예고편 [1] 상수 2024.01.08 238
125174 젤리아드 음악 [1] 돌도끼 2024.01.08 81
125173 코난 잡담 [11] 돌도끼 2024.01.08 290
125172 어제 1.7.일자로 63년이 된 사진/드 팔마 영화에 나온 드 니로 [6] daviddain 2024.01.08 297
125171 웅남이를 봤어요...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 [3] 왜냐하면 2024.01.08 536
125170 2024 골든 글로브 수상 결과 [2] 상수 2024.01.08 386
125169 뒤로 가는 남과 여에서 [3] daviddain 2024.01.08 202
125168 [디즈니플러스] 아주 독한 힐링물, '더 베어' 시즌 1 잡담입니다 [11] 로이배티 2024.01.08 452
125167 프레임드 #667 [2] Lunagazer 2024.01.07 60
125166 [넷플릭스, 디플] 도쿄 MER, 달리는 응급실 [4] S.S.S. 2024.01.07 289
125165 [시간의 향기] [4] thoma 2024.01.07 166
125164 2023 National Society of Film Critics Award Winners [2] 조성용 2024.01.07 164
125163 #경성크리쳐 시즌1 다보고<스포> [2] 라인하르트012 2024.01.07 404
125162 [넷플릭스바낭] 미국인들이 작정하고 건전하면 이렇습니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잡담 [8] 로이배티 2024.01.07 617
125161 열녀박씨계약결혼뎐 완결.. 라인하르트012 2024.01.06 295
125160 요즘 들은 신곡 MV들 - 1조, 도레미파, To X, Chill Kill, Love 119, What Love Is, Off The Record 상수 2024.01.06 1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