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검색을 해 보니 공교롭게도 시즌 8의 첫 에피소드가 방영된 게 딱 20년 전입니다. 2000년 11월 8일이요. 대한민국에 방송된 건 2001년 12월 1일이라고 하니 19년 전이군요. 사람 기억이란 게 참 우습죠. 전 분명히 에이전드 도겟의 얼굴을 군대(...) 내무반 티비에서 처음 봤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때라면 제대 후거든요. 흠. 뭐 이렇든 저렇든 거의 보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입니다만.


 어쨌든 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년 묵은 드라마이고 메인 스토리 따위 어차피 개차반인데 뭐 어때요.



 - 스트레이트로 아홉 시즌이 나왔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 추가 시즌 두 개가 더 나올 정도, 게다가 단독 극장판까지 둘이나 나와 있을 정도로 흥한 시리즈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이상할 정도로 잘 나가다 '망한' 드라마라는 인식이 강하죠. 아마도 후반에 스토리와 캐릭터가 걷잡을 수 없이 붕괴하다가 끝나버려서 이미지가 확 상해버린 탓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붕괴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게 바로 이 시즌 8이에요. 나름 역사적인 시즌이랄까(...)



 - 왜 망했(?)는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달랐죠. 멀더의 비중이 확 줄어들어서 그랬다는 사람도 있고. 그냥 제작진의 아이디어가 떨어져서라는 사람도 있고. 제작 과정에서 벌어진 안 좋은 일들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고 뭐뭐뭐...  사실 제가 뭐라고 콕 찝어서 주장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왜냐면 제가 시즌 7을 본지 너무 오래됐거든요. 시즌 7까지는 정식 발매가 되어서 집에 디비디가 다 있긴 하지만 암튼 그걸 본 게 한참 전이라서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냥 '이 정도면 볼만했는데?'라는 정도. 

 분명한 건 제가 시즌 7까지는 '메인 스토리 너무 구려!!!' 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잘 봤다는 것이고. 그리고 시즌 8은 여러모로 별로였다는 겁니다만. 지금 다시 보면 시즌 7을 또 좋게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시즌 8이 엑스파일을 말아먹었다!!!"는 주장은 하지 않으렵니다. 그냥 "시즌 8은 구리다!"라는 정도? 



 - 음... 암튼 제가 생각하는 시즌 8의 문제점은 이렇습니다. 멀더의 신격화요. =ㅅ=


 그렇습니다. 멀더는 시즌 8에서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이자 메시아죠. 스키너도 스컬리도 시즌 내내 멀더! 멀더!!! 만 외쳐대구요. 멀대 이름만 튀어나오면 이성을 잃고 사방에 막 사고를 치고 진상을 부리고 다녀요. 크라이첵이나 외계인 바운티 헌터 같은 놈들도 그렇고 암튼 모든 길은 멀더로 통하고 모든 대화는 멀더로 끝납니다. 심지어 존 도겟은 극중 상황상 그 존재 목적 자체가 멀더를 찾는 거죠.


 위에서 제가 '메시아'라고 했는데 이게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멀더는 이 시즌에서 고난 받다가 죽음을 맞고 기적을 선보이는 원조 메시아의 코스를 그대로 다 따라요. 심지어 납치 중의 모습을 보면 십자가 고행 코스프레까지 하는 걸로 보이구요. 멀더가 귀환하는 에피소드를 보면 아예 무슨 사이비 교주 같은 애가 등장하는데 이 놈 이름이 성서에 나오는 인물 이름이고 또 실제로 성서 읽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뭐 암튼.


 그렇게 시종일관 멀더를 떠받들고 숭상(...)하다 보니 분위기가 영 괴상해집니다. 멀더가 애초에 그렇게 숭상 받을 캐릭터였던가요. 개인적으로 정이 들대로 든 사이인 스컬리, 스키너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사람들, 특히 빌런들에게 멀더가 그렇게 중요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심지어 메인 스토리와 관련이 없는 소소한 괴담류 에피소드들에서 조차도 멀더의 이름과 존재는 빠지지를 않아요. 대화로, 회상으로 계속해서 소환되는데 정작 주인공들에겐 멀더를 찾아낼 능력도 방법도 없죠. 그냥 데려갔던 애들이 변덕을 일으켜서 반납해주기만 기다려야 하는데 줄기차게 멀더 멀더 노래를 부르니 그 노래를 듣다 지치게 됩니다. '아니 걔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건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구요.


 또한 컴백 후 멀더 캐릭터도 문제입니다. 그냥 재미가 없어요. 맨날 정색하고 사고 치고 다니면서 적반하장으로 도겟에게 짜증부리는 게 전부죠. 특히 스컬리, 스키너랑 셋이서 도겟만 따돌리고 자꾸 사고 치는 걸 보고 있노라면 꼭 전학 온 학생을 따돌리며 괴롭히는 못된 초딩들 보는 것 같...;



 - 굳이 좋았던 점을 찾아 보자면 음...


 존 도겟의 캐릭터는 괜찮습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난 안 믿습니다.' 라는 대사를 백 번쯤 반복 하긴 하는데 그거야 당연한 일이구요.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며 살아가려 애 쓰는 고지식한 공무원이면서 동시에 허구헌날 자기 구박하고 무시하는 스컬리일지언정 그것도 파트너라고 열심히 챙겨주는 따뜻한 아저씨 캐릭터가 괜찮았어요. 멀더를 쥐어 패는 장면을 한 번 정도 넣어줬음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뭐.


 2020년에 어디에 영상화 하고 싶다며 들이대면 깔깔깔 비웃음만 사고 끝날 것 같은 소재, 설정들을 우직하게 마구 들이대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은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괴작 B급 호러 컬렉션(...)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특유의 투박한 연출과 (지금 보기엔) 저렴한 특수 효과까지 어우러져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막판에 정말 문자 그대로 '멀더와 스컬리의 사생팬' 캐릭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그건 괜찮았습니다. 이 시즌엔 가볍게 웃을만한 에피소드가 아예 없는데 이 에피소드도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끝장면이 맘에 들었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란 건 참 무섭더라구요.

 이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줄기차게 계속 이어 봐서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시즌 9 2화까지 봤는데 아직 18개를 더 봐야 시즌 10으로 갈 수 있겠군요. =ㅅ=

 이후 시즌들에 대한 평을 익히 봐서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한동안 제 인생 드라마였던 시리즈이니 확실하게 끝은 봐주려구요.

 




 + 보는 내내 한국 성우들이 그립습니다. 근데 뭐랄까... 보면서 종종 데이빗 듀코브니와 질리언 앤더슨의 연기가 좀 소울리스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뭐 대체로 얼척 없는 음모론 이야기를 개정색하고 진지하게 할 때 그런 느낌인 걸 봐서 제 선입견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서 성우들이 더 그립더라구요.


 ++ FBI에게 명예 훼손으로 소송 걸리거나 항의 받지 않은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90년대 미국 영상물 속에서 FBI가 유능한 집단으로 나오는 일이 극히 드물긴 했었지만 엑스 파일 속 FBI란 조직은 진짜... 고심 끝 해체가 유일한 답일 세금 도둑 집단이라고 밖엔. ㅋㅋㅋㅋㅋㅋ


 +++ 중간에 잠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자막이 정신줄을 놓는 부분이 있습니다. 갑자기 멀더랑 도겟이 서로 반말을 하면서 막 투닥거리다가... 문득 다시 원래 말투로 바뀌어요. 왜 그랬을까요. 번역하던 분이 중간에 잠깐 친구에게 맡기기라도 했나(...)


 ++++ 종종 엑스파일 관련해서 좋은 글 써주시던 옛 게시판 멤버분이 생각납니다. 마지막 글을 남기신지도 4년이 넘었는데.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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