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2시간 10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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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원제도 '복사기'라는 뜻이라는 것 같구요.)



 - '수리아니'라는 여대생이 주인공입니다. '마타 하리'라는 연극부에서 홈페이지 제작 및 관리 일을 맡고 있구요. 가난한 형편이라 매 학기 빡세게 살아 장학금을 타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동아리 부잣집 선배 아빠가 자기네 회사 홈페이지 관리를 맡기고 싶으니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연극제 뒷풀이 파티에 가요. 그런데 거기서 분위기에 휩쓸려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정신을 차려 보니 다음 날 아침 자기 집 침대입니다. 헐레벌떡 일어나서 장학금 심사 면접을 갔는데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썩어 있고. 파티에서 술에 취해 찍어 올린 본인 셀카를 들이대며 '너님 아웃!' 이라네요.


 하지만 '내가 그랬을 리 없다!'는 확신에 찬 주인공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누군가 나에게 약을 탄 술을 먹이고 헤꼬지한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니는데, 당연히 상황은 꼬이고 꼬이면서 이야기는 점점 어두컴컴해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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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별 것도 아닌 일로 정말 대차게 인생 꼬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좀 많이 구린 가치관을 풍자하는 걸로 시작하구요.)



 - 아니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인도네시안 스릴러'라길래 봤어요. 제가 맨날 얘기하는 넷플릭스의 가장 큰 장점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낯선 나라의 장르물을 보며 그 동네 사람들 사는 모습 구경하는 거요. 그리고 이 영화는 다행히도 그런 제 취향에 꽤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뭐 영화가 묘사하는 인도네시아의 풍경과 풍속에는 당연히 MSG가 다량 첨가되어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대략 그런 분위기구나'라는 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영화 속 인도네시아의 풍경은 대략 이렇습니다. 일단 나시고랭을 많이 먹습니다 기술적 편의와 재미를 누리는 쪽으론 이미 다른 선진국들 못지 않게 첨단을 달리고 있구요. 다만 사람들의 가치관은 20세기 가부장제 스타일을 거의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서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 와중에 빈부 격차 문제가 사회적 이슈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영화의 이야기와 주제에 녹아 있어요. 말하자면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스릴러였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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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취한 셀카 한 장으로 대학 등록금이 날아갑니다. ㅋㅋㅋㅋ)



 - 두 시간 십 분이라니 짧지 않은 런닝타임인데요. 사실 초반엔 좀 당혹스럽습니다. 천천히 느긋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사실 별 '스릴'이 없어요. 보통 헐리웃이나 한국 영화였음 저런 도입부에서 다짜고짜 성폭행, 최소 성추행이 튀어 나올 텐데 이건 고작해야 취해서 잠든 셀카가 인스타에 업로드 되었는데 난 기억이 안나... 일 뿐이거든요. 물론 그래서 경제적 데미지를 입고 학업 중단 위기에 처했으니 웃어 넘길 순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스릴러의 발단을 장식하는 사건으로는 한참 약하죠.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에겐 초딩 때부터 절친으로 지내는 남자 사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생긴 것도 둥글둥글 귀여운 데다가 주인공과 죽도 잘 맞고. 뭣보다 뭔가 되게 쓸 데 없이 헌신적으로 주인공을 도와요. 그래서 보다 보면 이거 이러다 둘이 로맨스로 가는 거니... 그런 거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 더 불안해지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흐르고, 그 때부턴 정말 스릴러다운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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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정말 이대로 로맨스로 가 버리는 줄 알았다니깐요. 진지하게. ㅋㅋㅋ)



 - 스포일러를 안 건드리면서 말 하자면... 음. 이미 위에서 말 한 대로 '그 모든 것'이 총출동해서 하나로 엮이며 흘러가구요. 주인공의 고난은 하드에서 하더, 하디스트를 넘어 하드코어로 가구요. 점점 더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며 주변에 마구 유탄을 뿌립니다. 지루하거나 재미 없는 게 아니고, 이야기가 나쁜 것도 아니고, 다 좋은데 그냥 소재와 주제 의식 자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없이 갑갑해지는 이야기... 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몇 가지 희망 때문이었죠. 설마 장르가 있고 주제가 있는데 이야기가 그냥 이렇게 끝나겠냐. 라는 계산(?)이 첫 번째였고. 다음엔 마지막 즈음에 가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연대의 기운 같은 것이 있었고. 마지막으론 이게 그쯤 가니 의외로 상당히 감정 이입이 되더라구요. 막판에 찡한 순간을 자아내는 인물들도 몇 있었고요. 또 '반격의 실마리인가!!?' 하는 순간에는 나름 장르적으로도 재밌게 잘 연출을 해 놓은 편이었습니다. 뉘신지 제가 당연히 알 길이 없는 배우님들 연기도 아주 좋았구요. 그래서 끝까지 재밌게 잘 보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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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만 삽질을 하고 뻘짓도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신념을 갖고 밀어 붙이는 주인공이라 결국엔 응원하게 됩니다.)



 - 결말에 대해선 좀 사람들마다 반응이 갈릴 수 있겠습니다.

 일단 장르적 권선징악은 기대하지 마시구요. 막 정교한 두뇌 싸움 끝에 벌어지는 반전 같은 것도 기대하지 마시구요. 스포일러 없이 대충 느낌만 설명하자면 이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선언 그 자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성은 좀 많이 날아가구요. 이야기가 다루는 소재와 등장 인물들의 처지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에 따라 반응이 격하게 달라지겠는데. 전 원래 아주 분명히 이런 걸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이상하게 울컥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보는 도중의 생각보다 더 잘 만든 영화였나? 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어요. 어쨌던 저를 막 이입을 시켰다는 거니까요. ㅋㅋㅋ 


 하지만 물론. 다 보시고 나서 '뭐야 결말 쓰레기잖아!!' 라고 화를 내시면 그 분 말씀이 옳습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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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연예인 누구 닮았는데... 라고 내내 생각을 했지만 누군지 떠올리진 못 했던 분. 누구일까요... ㅠㅜ)



 - 그러니까 대충 이렇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는 거 구경하면서 스릴러도 보고 싶다. 라든가,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담은 장르물을 좋아하신다든가. 그럼 보세요. 괜찮습니다.

 다만 그냥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두뇌 게임 류의 스릴러나, 놀라운 반전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작품 같은 걸 기대하신다면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어쨌든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전 재밌게 봤구요.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이미 영화를 잘 만드는구나!! 라는 오만한 깨달음(?)을 얻으며... 앞으론 좀 더 겸손하게 사는 걸로. ㅋㅋㅋ

 뭐 그러합니다.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누명(?)을 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좀 과격합니다. 본문에서 말한 오랜 절친 남자 사람 친구가 학교 앞에서 복사집을 하거든요. 다짜고짜 거기로 쳐들어가서 '연극부 애들 핸드폰 해킹 좀 하자'라는 거에요. (주인공이 컴퓨터 공학과 학생이라는 핑계가 붙습니다.) 그래서 복사집 와이파이를 꺼놓고선 출력 하러 온 학생들이 핸드폰을 케이블로 PC에 연결하도록 유도한 후 갸들의 사진 폴더를 열심히 복사해대다가... 드디어 그럴싸한 후보 하나를 찾아냅니다. 술 먹기 게임을 할 때 뱅뱅 돌리던 인형 머리를 조작하던 놈인데 자기에게 술 먹이기 전에 골방에 들어가서 한참 뭘 하다 나왔네요. 정황상 이게 확실하다고 확신한 주인공은 다짜고짜 이걸 증거로 들이대며 연극부에 피바람을 몰아치게 하는데... 확증이 없어서 싸움이 격해지자 파티를 주최한 부잣집 아들이 '다 같이 가서 cctv를 보자'고 제안해요. 그리고 그 결과...


 술 먹인 놈이 골방에서 오래 있었던 건 우울증이 격하게 와서 혼자 꺼이꺼이 울다가 약을 먹고 나오느라 그랬던 거고. (주인공 때문에 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죠) 결정적으로... 술 때문에 곯아 떨어지기 전에 자기 혼자 핸드폰을 꺼내 셀카를 찍는 자신의 모습이 찍혀 있습니다. 으악 멸망(...)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아요! cctv를 몇 번을 돌려본 결과 본인은 술을 네 잔 밖에 안 마셨음을 확인하고. 남자 사람 친구와 함께 폭음의 밤을 보내며 본인의 주량을 확인해 봅니다만. 어라. 몇 잔이 아니라 몇 병을 마셔도 멀쩡한 주태백이셨던 겁니다. ㅋㅋㅋ 그래서 다시 의심을 시작하죠. 그 놈이 아니었다면 대체 누구였을까. 그래서 또 여기 들이 받고 저기 들이 받고 하다가... 음. 너무 길어지니 대충 생략하고 결말로 건너 뛰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파티를 주최한 부잣집 아들입니다. 사실 짐작하기 쉬워요. 애초에 일자리를 미끼로 주인공을 파티에 강제로 참석시킨 게 이 녀석이라서요. 이 놈은 연극부에서 세트 디자인을 맡고 있는데. 예술가병에 빠져서 자극적인 뭔가를 추구하다가 처음엔 남의 은밀한 사진들 같은 걸 구하러 다녔고. (이때 사람들 폰을 해킹해서 이 놈에게 사진을 공급하던 게 바로 그 절친 남자 사람 친구였다는 충격과 공포의 반전이 있습니다 ㄷㄷ 다행히도 주인공은 용서 없이 바로 떠나 버려요.) 나중엔 아예 자기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에게 약을 먹이고 피해자 신체의 은밀한 부분들을 사진 찍은 후 쉽게는 못 알아보도록 슬쩍 변형해서 세트 제작에 집어 넣고 있었던 거죠. 당연히 주인공 말고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었구요.


 주인공은 바로 이걸 들고 학교 윤리 위원회로 가서 신고를 합니다만. 빌런네 부모님은 엄청 부자이고 인도네시아도 '엄청 부자'들은 대충 법은 무시하고 잘 살 수 있나 봅니다. 오만가지 압박과 협박이 한 큐에 몰아치며 주인공은 오히려 공개 사과 영상을 찍어서 교내에 동네방네 하루 종일 방송되게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립니다. 참담하기 그지 없지만 이 때, 그동안 내내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무기력하게 살던 엄마가 딸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요. 거기에서 위로를 받는 와중에 주인공 외의 다른 피해자들, 주인공이 먼저 알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걸 뿌리쳤던 사람들이 그 사과 영상에 빡쳐서 주인공을 찾아 옵니다. 저걸 가만히 둘 수는 없다!


 그래서 (또 중간 생략) 어찌저찌 드디어 스릴러스런 작전을 짜고 어쩌고 해서 빌런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손에 넣습니다만. 그러자마자 주인공과 동료들은 의견 대립을 벌입니다. 이거 어차피 다 불법 수집 증거다. 게다가 경찰이 공정하게 해 주겠니. 괜히 우리의 노출 영상만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돌고 돌 거고... 이러는 와중에 드디어 아예 막 나가기로 작정한 빌런이 폭력배들을 데리고 들이닥쳐 주인공들을 제압하고 증거가 담긴 핸드폰을 불태워 버린 후 깔깔대고 웃으며 사라져요. 아직 백업도 하기 전이라 이걸로 게임 오버... 인데요.


 이때부터가 엔딩입니다. 주인공과 다른 피해자 콤비가 아까 그 나아쁜 남자 사람 친구네 복사집으로 들이닥쳐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복사기 하나를 끌고 나가요. 둘이서 그걸 밀고 당기며 대학 건물 옥상까지 가서는, 아직 자기들에게 남아 있던 '결정적인 증거는 아닌' 정황 증거들을 마구 복사해서 아래를 향해 뿌리기 시작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여서 그걸 읽고, 잠시 후 연극부의 다른 여자 부원들이 말 없이 올라와 자신들의 고백을 적고, 복사해서 뿌려요. 잠시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합류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합류하고... 그러다 마지막엔 본인들의 얼굴을 복사해서 뿌리기 시작합니다. 처음과 다르게 강한 의지가 담긴 당당한 표정들이 담긴 복사지들이 학교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엔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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