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보고 왔습니다.

2011.06.13 00:52

질문맨 조회 수:1591

0.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여자친구 몰래 다녀와야 하는 공연이 아니라 여자친구를 보쌈이라도 해서 같이 봐야 하는 공연이었다는 느낌?

 

1. 대부분의 공연/전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도 발레에는 문외한에 가까워서 딱히 할 말이 많지는 않아요. 기억 나는대로 몇 가지만 정리해 볼께요.

 

2. 백조의 호수는 이번이 세 번째 관람입니다. 첫번째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였고 두 번째 본 것이 해설이 있는 백조의 호수 였습니다.

실제적으로 전통적 해석의 백조의 호수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드라마틱하면서도 볼거리라는 측면에서 매우 풍성해서 초심자들도

꽤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에서부터 무대셋팅, 군무나, 독무, 파드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더군요.

 

3. 왕궁과 호수의 대조효과가 극명한 느낌의 무대셋팅이 매우 아름다웠어요. 왕궁은 황금색으로 무대 가득히 치장하여 화려함으로 가득 메웠다면

호수 장면은 적절한 실루엣 처리와 청색 조명으로 은은하고 신비로운 달빛 아래의 정경을 잘 묘사해 내었더군요. 엄청난 무대 장치를 쓴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기능적이면서 아름다운 무대 장치라서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4. 백조의 호수는 조카아이가 좋아하는 발레인지라 영상물을 자주 접한 편인데 이렇게 군무가 섬세하면서도 화려함을 내재하고 있는지 직접 무대로 보니까

실감할 수 있더군요. 매튜본의 백조들이 정말 동물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에 비해 여성 발레리나들이 만들어 내는 백조의 모습은 확실히

청조하면서도 마법에 걸려있기에 불안함과 신비함을 겸비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24마리의 백조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확실히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재현 할 수 없는 무대극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더라고요.

 

5.  32번의 푸에테,  백조의 호수는 난이도 높은 발레 기술로 유튜브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작품이지만 역시 백조의 호수는 여느 작품보다 상반신의 감정 표현이나

몸의 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주는 작품이에요. 상대적으로 이 작품이 쉽게 보이는 것도 상반신으로 많은 언어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김지영씨의 오데트는 선의 아름다움과 불안과 사랑, 그리고 서정적인 감정의 유려함을 정말 멋지게 표현하시더라고요.

블랙스완의 영향으로 흑조의 오딜을 유심히 봤는데 자신의 역량을 과감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자유로움이 엿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관능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마치 총총거리는 악마요정을 보는 듯한 느낌. 관능적이라는 느낌은 성숙한 불안이 더 엿보였던 오데트가 더 가까웠다는 느낌이에요.

 

6. 지그프리트는 다소 균형을 잃은 모습을 종종 보여주워서 조금은 실망스러웠어요. 긴장을 조금 많이 한 듯한 모습. 상대적으로 파드되의 안정감은 좋은 편이더군요.

그런데 사실 백조와 왕자의 파드되는 아름다웠지만 흑조와 왕자의 파드되는 솔직히 기억에 남지 않아요.  1장 2막 초반의 악마와 왕자의 파드되가

결박되어버린 인생의 굴레를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라서 더 인상깊었고요.

 

7. 블랙스완을 메인 포스터로 삼았기에 블랙스완 영화 버전인 줄 알았는데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해피엔딩 버전이더라고요. 1장 2막에 백조 한명이 대기 도중에

미끄러 넘어지는 실수가 있어서 관객들의 나지막한 탄성이 있었지만 전 그 넘어진 백조가 블랙스완이 되는 거야! 라면서 마음속으로는 흥분하고 있었어요.

 

8. 블랙스완을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긴 했어요. 확실히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보다는 얌전하기는 하죠. 그런데 화려한 무대에서도 지지 않는 고결한 달빛 같은

아름다움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는 것을 실감하기는 했어요. 그러기에 정말 흔하게 올려지는 작품이지만 고전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설렘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죠.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은 발레라는 무대극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도 이런 장점이 쉽게 전달된다는 점이지요. : ) 

 

9. 옥의 티라면 무대 시작전에 급조된 식전 행사. 갑자기 올라와서 진행해야 할 진행이라면 그냥 안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요?

 

10. 빌리가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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