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희망버스를 다녀와서

2011.08.02 00:51

절망속아름다움 조회 수:1379

1. 지난 목요일 명동 카페 마리에서 열렸던 3차 희망버스 전전야제에 갔었습니다. 신림에서 버스를 타고 졸다가 동대문까지 갔었고 다시 명동으로 돌아오다보니 40분 가량 늦었습니다. 저도 이번이 카페 마리에 처음 가는 길이라 골목에서 좀 헤맸습니다.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가다보니 의외로 카페 마리는 을지로2가 사거리에서 명동성당 쪽으로 내려가는 대로변에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대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시인들의 시 낭송도 듣고 공연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황석영 씨도 오셔서 그동안 희망버스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앞으로는 관심을 가지겠다고 하셨고(실제로 3차 희망버스에 동승하셨습니다), 시인들에게 트위터와 새로운 매체들로 시를 지어보자는 제안도 하셨습니다. 명성만 익히 들어온 밤섬해적단의 공연을 보고 팬이 되었습니다. 연주는 투박했지만 풍자와 해학이 있는 노래들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오늘 공연하기 귀찮아서 기타를 안가져왔다는 보컬(장성건)의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2. 제 여자친구는 제가 희망버스에 참가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이번 3차 희망버스 출발 날짜에도 휴가를 냈으니 함께 놀러가자고 하기도 했고요. 1차 희망버스를 다녀왔을 때 여친은 자신이 경영자라면 회사가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를 해고할 수도 있고 그 경영자를 이해한다는 말로 저에게 상처를 줬습니다ㅠㅠ 여친은 경영학과를 나왔고 오랫동안 경제신문을 보아왔으며 보수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이해합니다. 여친에게 생각의 작은 변화를 주고 싶어 '노동자는 꽃이다'라는 글귀가 써진 티셔츠를 선물하였습니다. "이거 한번 입어볼래?"라는 소심한 말을 건네면서요...

 

3. 1차에서 3차 희망버스까지 낙타님을 따라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진보신당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소 지지해 왔던 정당이기도 하고 언젠가 진보 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꾸준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분으로부터 당원이 될 것을 권유받기도 하였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당비만 내는 당원은 제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고 열심히 운동에 뛰어들자니 소속이 없이 알바만 하고 있는 제 상황이 불안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제 또래의 중앙대 노영수 씨를 보면 느끼는 게 많습니다. 중앙대에 두산이 들어왔을 때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시위를 하고 한강대교 철골구조물에 올라서 사람들에게 알리려고도 하였는데 제게 그런 상황이 닥치면(사실 그런 상황에 이미 닥쳐있죠. 모교인 홍익대가 중앙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은 아니니까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습니다.

 

4. 이번 3차 희망버스에 참여하기 전까지 서울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가 7월 20일부터 30일 희망버스 출발시까지 하루 24시간씩 10여일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2차 때 평택 쌍용차에서 부산 한진중공업까지 걸어서 갔던 것에 이어 3차 때는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고 합니다. 서울 도심에서 트위터리안들이 촛불 산책을 며칠간 하였다고도 하고 부산 한진중공업 앞에서는 미사와 예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희망버스 다큐멘터리를 찍는 분도 만났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부산 경찰청을 둘러싸고 너희들은 고립되었다는 퍼포먼스도 하였습니다. 언론에서 주목하진 않았지만 재기발랄한 투쟁은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되고 있습니다.

 

5. 확실히 보수의 언어는 쉽고 강력합니다. 부산에서 영도 주민들이 희망버스 대오의 뒤편에서 수군대는 것을 우연히 들었는데 노사합의가 되어 이미 끝난 일을 제3자가 끼어들어서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라며 희망버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더군요. 그럴듯한 말입니다. 제가 이것을 한마디로 반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실 희망버스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야 할 정치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투쟁이며 곧 나에게 닥칠 일이기도 합니다.

 

6. 진보신당과 더불어 희망버스에 올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은 사회당입니다. 항상 최전선에서 유쾌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스머프(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한진노동자를 예쁘게 부르는 말) 가면을 쓰고 가장 앞장 서서 나갔습니다. 몇해 전 신촌에서 사회당의 선거 유세를 보고 무서워서 슬금슬금 피해갔던 제가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7. 토요일 부산에서 먹은 저녁이 체했는지 소화가 안돼서 대오의 뒤편으로 빠져 있었습니다. 배가 아파 웅크리고 앉아있는게 불쌍해보였는지 옆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께서 박카스를 한 병 주셨습니다. 챙겨주시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중동 종편채널에 참여한 동아제약의 박카스라니.. 역시 생활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주변에 계셨을 언론소비자주권 단체 분들이 보실까봐 재빨리 가방에 박카스를 넣었습니다.

 

8. 쌍용차 해고 노동자 중에 이창근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1차 희망버스 때 mc를 맡으셨고 난데없이낙타를 님이 쌍용차유재석이라는 애칭으로 부르셨던 분입니다. 1차 희망버스를 참여하기 전까지만해도 (공장에서 일하는)노동자에 대한 제 인상은 계몽해야 할 사람들, 배움이 짧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랬습니다. 이창근 씨를 만나보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분은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심지어는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기까지 합니다. 이창근 씨 한 명만 특출나서 그런 걸까요.. 아닐 겁니다. 제가 편협한 생각을 해왔을 뿐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멍청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해왔을 뿐이고, 노동자는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연대해야 할 존재라고.

 

9. 3차까지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마친 희망버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타성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희망버스라는 것이 3주에 한번씩 부산을 찍고 오는 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4차, 5차, 6차로 이어질 희망버스가 쌍용차로 유성기업으로 콜트콜텍으로 가는 그 날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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