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박정현 콘서트 후기

2011.05.25 10:23

abneural 조회 수:3948

지난 주에 박정현의 '조금 가까이' 콘서트를 보러 LG아트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스트레잇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현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오곤 하는 지인 한 명이 있었는데, 저도 막연한 호감만 조금 가지고 있다가 나가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세히 알게 김에 질러서 같이 다녀왔습니다부산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콘서트를 한다고 하는데, 보러가실 분은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테니 읽지 않으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가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이전, 박정현에 대해 갖고 있던 독특한 인상이 있었습니다. 얇은 목소리로 비교적 세련된 가요를 얌전하게 부르다가 마지막 부분에는 목이 터져라 폭발하는 게 확실히 다른 여자 발라드 가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는데, 얇은 미성과 후반부의 애드립 양쪽 모두가 독특했어요. 그래도 그런 스타일이 저에겐 크게 와닿지는 않았었고 박정현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얌전하고 세련되었지만 열정적인 그런 면을 좋아하나보다 하고 생각했었죠. 콘서트 지르고 나서 예습한다고 그동안 냈던 음악들을 들어보기 전까지는, 얌전함과 열정의 괴리가 획일적인 한국 대중 음악 형식에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담기 위한 고군분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콘서트 시작하자마자 공연장 환경에 귀가 적응을 못했던건지 너무 음량 때문에 힘들었고, 여유있는 멘트들에 비해 음악은 조금 급하게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4~5 지난 이후부터 귀에 차게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때부터의 공연은 기대치를 채우고도 남더군요. 극성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팬들과 매번 콘서트 마다 또는 심지어 5회의 콘서트 중 두 번 이상을 보러 간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로.


가장 인상깊었던 멘트들 중의 하나가 공연 준비하기 위해서 집에서 종이를 앞에 놓고 프로그램을 먼저 짠다는 이야기였는데, 꽤 스케일이 큰 공연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개인적으로 뼈대를 짠다는 면에서 가수가 가진 음악 세계가 매우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 음악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요. 듣고 싶은 노래들이 빠졌다는 아쉬움이 담긴 후기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동안 꾸준히 일곱장의 앨범을 발매하면서 꽤 많은 곡들이 쌓였나봅니다. 그 중 3~4 곡씩을 묶어서 선곡하고 선곡 이유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하비샴의 왈츠-몽중인-사랑보다 깊은 상처" 이어지는 선곡, "Puff""꿈에"를 이어 부르던 부분, 콘서트의 엔딩이었던 "만나러 가는 -P.S I Love You" 그리고 앵콜 첫 곡이었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였습니다


박정현의 음악에 푹 빠진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와서 관객들이 잠시 웃은 후 하비샴의 왈츠가 시작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천장에 새장이 몇 개 달려있는 붉은 조명의 무대 위에 스크린 뒤로 박정현과 남자 무용수 명의 실루엣이 보이면서 노래가 시작되었고 굉장히 다이나믹했어요. 세 곡은 피아노 반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애잔한 분위기와 큰 스케일이 공존하는 멋진 무대였죠. 이번 공연에서 최고라고 할 만한. 


박정현이 혼자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는 이번 콘서트에서 거둔 의외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임재범의 솔로 버전 '사랑보다 깊은 상처' 가요가 보여줄 있는 아름다움과 울림의 정점을 보여준 노래라고 생각해요. 사실 박정현과의 듀엣 버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곡을 부른다는 말을 들었을 누군가 게스트가 나와서 듀엣을 혼자서 부를  별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 여자 혼자서 부르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임재범 버전의 원곡 같은 울림을 느끼게 해줄 거라고는 전혀 기대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임재범 특유의 금속성 울림이 어떻게 박정현 목에서 나오는거죠. 콘서트 티켓 내고 하나만 다시 들을래 해도 아마 돈내고 듣고 싶을 같아요. 열심히 검색을 해서 제가 갔던 날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팬이 녹음한 것을 발견했는데 다시 들어봐도 때의 느낌이 전해지더군요. 노래가 끝난 , 노래를 혼자 부르면 사람들이 중간에 남자 게스트가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는 설명으로 웃음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Puff-꿈에" 이어서 부른 후에 "꿈에"의 호응이 좋자 "꿈에 많이 듣고 싶으셨구나"라는 농담을 ,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노래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노래를 이어서 불러봤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Puff" 라는 곡에 대해서는 번이나 자신이 곡이라고 강조를 해서 재미있었는데, 인트로의 한국어 가사는 원곡에 없던 부분이고 콘서트를 위해 새로 썼다고 하더군요. 뒤이어 부른 "꿈에" 비해서는 객석 반응이 크지 않았지만 기억에 이번 콘서트에서 가장 뜨거웠던 공연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콘서트'라는 단어에 뭔가 기대를 한다면 바로 이런 음악일테지만, 이런 곡의 비중을 늘이지 못하는 사정을 이해할 같기도 합니다. "꿈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아여~ 우워우아아앍~ 우워우워우워우예예~" 부분이 없어서 서운했다는 후기들도 눈에 띄는데 이번 공연의 깔끔하고 다듬어진 버전의 꿈에는 듣기 좋았습니다


공연 막바지에 "만나러 가는 " 이라는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 (정확한 기타의 종류는 파악을 못했지만 어쨌든 어쿠스틱한) 대의 반주에 맞춰서 불렀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기타 연주자 분의 깔끔하고 담담하고 안정적인 기타 연주도 특별히 언급해두고 싶을 정도로 인상깊었습니다. 마지막 P.S I Love You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더불어 팝적인 느낌이 목소리랑 잘 어울려서 너무 좋았고, 앵콜 곡은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는데 "TV 듣는 것과 현장에서 듣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 사람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무대였습니다. TV 음원으로 들을 있는 그냥 그림자에 불과했던 게 정말 맞구나.


마지막 앵콜 곡은 "좋은 나라"라는 시인과 촌장 곡이었는데 공연 때마다 앵콜로 곡을 부른다고 하더군요. 박정현이 앞에 계신 여자분에게 가사를 아냐며 마이크를 넘기자 소절을 완벽하게 열창하셨는데, 떨리는 목소리에서 어딘가 종교적인 분위기까지 느졌습니다. 사실 이 노래의 후렴구를 부르면서 박정현이 중간 중간에 추임새를 넣을 때도 개그콘서트의 '이희경 권사님'이 연상되어서 웃겼는데, 이 노래의 원곡자인 하덕규가 ccm 가수로 활동한다는 생각해보면 박정현의 지향점이 뭔지 같았고, 콘서트 분위기가 고조되는 마지막 순간이 되니 그런 본색(?)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더군요


마지막으로, 그날 게스트로 박재범이 나왔었어요. 여기 박재범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실테니 잠깐 말씀을 드려보자면 "Nothing on You" "Abandoned" 불렀고 무대 좋았고 중간에 멘트도 했습니다. "박정현과 개인적으로 친한 아니고 평소에 좋아하는 가수이기 때문에 들어왔을 바로 하게 되었다" 내용이었고, "개인적으로 친한건 ... 아니다" 말과 " 들어왔을 "라는 표현 때문에 관객 웃음 터졌고,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수줍음을 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주 열광적이진 않아도 호의적인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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