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y하지 않다는 것/구원 망상

2011.06.18 12:56

frolic welcome 조회 수:2647

요새 거의 사생활 침해수준으로 절 귀찮게하시는 기독교인 한 분이 계십니다.
역하기 이를데없지만 웃는 낯으로 봐야만 하는 사람이에요.

 

역하기 이를 데 없는 이유는 참 많습니다.제일 큰 이유는 사실 이 분의 assexual함입니다.
저도 남자지만,같은 남자라도 뭔가 매력이 있는 형,동생을 좋아합니다.그 매력이
제가 부러움을 가질 만한 성적 매력이라면 동경심에서 파생되는 호감이 발생하기도 하지요.
이 분요.나란히 앉아 대화나누다보면 참 갑갑합니다.희미한 이목구비와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비루한 몸덩어릴 보면 한 대 패버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제게 형 노릇을 하고 싶어하시는것도 문제입니다.전 제가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예의 갖추는 것 조차 망설이는 사람입니다.아울러,제가 ‘형님’으로 모셔야겠다
마음먹고 그렇게 대접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입니다.어디 감히 내가 허락도 한
적 없는 반말짓거리를…….어디 감히 자기가 내가 모시는 다른 형님들과 동일선상에
서려 드나…이런 생각,합니다.

 

이기적이라셔도 좋습니다.하지만 다소 이기적일지라도 사실이 그런걸요.
이기적으로 느껴지신다면,assexual함이나 ‘형 될 자격 없음’같은 ‘그 사람
싫은 이유’가 공감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그래서 이 글의 본론이자
읽으시는 분들도 공감할만한,관계 혐오의 세 번째 이유 풀어봅니다.

 

이 분,기독교인입니다.그리고,자꾸만 절 구원하시겠답니다.우연찮게
제가 겪어온 고통,그러니까 부모의 학대와 극단적인 폭력,산중 은둔했던
시간과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그 아픔의 시간들을 들으시고는,
절 위로하고 힘이 되시겠답니다.내가 널,고쳐주겠답니다!

 

사실 당시엔 힘들었어요.학대아동이 부모로부터 행복감을 느끼면 오히려
비정상이죠.그러나 전 잘못된 양육방식을 택했던 제 부모를 상당부분
용서했고,비록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극단적인 사회공포증으로 인해
산중에 칩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경야독 생활 훌륭히 이어가는
26세 청년으로 성장한 데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에요.

유소년기에도 부모와의 관계는 고통스러웠지만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제 과거를 치유하고 일어나는 데엔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죠.지금 제가 최선을 다해 씹어대고 있는 그 형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사람들은 제 ‘구원자’인 겁니다.실제로 전 그 분들을 제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그러나 그 분들이 제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제가 구원이 간절히‘필요했던’,피투성이 소년이었기 때문입니다.지금처럼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는 제게,필요하지
않은 구원의 손길이란 마치 방금 식사 맛있게 마친 직후의 산해진미와도
같아요.

 

김혜남 선생님이 쓰신 [서른살 심리학]을 보면,[구원 환상]에 대해
소개된 장이 있습니다.조금만 기다려,내가 구해줄게!넌 너무 아프고
괴롭고 힘들잖아,고통스러운 것 알아.‘널 위해’내가 좋은 말도 해주고
선물도 사줄게.누군가의 ‘구원자’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매우
소중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겉으론 널
위한다지만 사실은 상대로부터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나약함이 원인인
일종의 병입니다.

 

이 분이 절 위로하고 싶어하고 치유하고 싶어하고 ‘바로 세우고’싶어하는
그 마음가짐의 표면적인 근거는 기독교입니다.그러나 더 깊은 뿌리는
구원 환상,혹은 구해줄게 망상이 아닌가 싶어요.예수 믿고 구원받아라,
그리고 이런 좋은 소식(복음)을 알려준 날 멋있는‘형’이라고 생각해줘.
이거죠.

 

 

 

 

됐거든.

 

 

 

 

이런 ‘구원병’환자들 대부분이 공유하는 또 다른 특징은 ‘경청이 안된다’는
겁니다.경청이 뭡니까.상대가 저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계속해서 읽어내려
노력하는 듣기의 방법 아닙니까.원치 않는 치료를 하시겠다고 이 난리를
치시는 양반이 제가 원하는 것이 무어인지 파악하려 애쓰는 경청이 가능한
인간일 리 만무하잖아요.일례로,‘동생아,저녁 한식-중식-양식중에
뭐먹을래?’라고 물으시더니,제가 ‘한식이요.청국장 같은 거…’라고
대답하자,‘아 그렇구나.돈가스 먹자’라고 하신 적도 있습니다…….
돈가스 먹으면서도 어찌나 절 도와주고 싶어하시는지.

 

끊임없이 제 꿈이 뭔지,제가 뭘 할때 제일 기분좋은지 따윌 물으시는데,
필요 없어요.이미 뭘 할때 행복한지 잘 알고 저 혼자 알아서 잘 살고
있는데 왜 쓸데없는 질문,왜 나서서 조언을 하나요.이런 질문들에
연이어 쏟아질 필요없는 도움advice이 두려워서 대답을 못해요.정말
조언 잘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하고싶은 조언을 상대 입에서 나오게
만드는데 말입니다.

 

좋게 구슬러 그만 보긴 할겁니다만,볼때마다 피곤해서 관계 단절을
위한 마지막 만남조차 마음 단도리가 필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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