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온지 며칠 안 된 게임입니다. 기종은 플스 엑박 스위치 PC까지 거의 전기종이구요. 장르는 인터랙티브 무비... 혹은 비주얼 노벨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이라서, 비록 하지 말라고 말리는 글이지만 스포일러는 적지 않을게요.



 (짤 구해다 올리고 링크할 정성과 시간이 아까워서 트레일러 하나로 때워봅니다)



 - 게임이 시작되면 배경은 런던. 대략 1980년대쯤 되는 듯 해요. 무대는 지하철역인데요. 쓸 데 없는 객기가 넘치는 젊은 애가 경찰을 놀리고 모자를 빼앗아서 도망쳐요. 동행하던 여자애는 얼떨결에 동반 도주 중이구요. 애초에 모자를 훔친 것도 별 이유가 없을 텐데 쫓아오는 경찰을 피한답시고 점점 더 격한 짓(전철이 오는 선로로 뛰어들고 막...;)을 하던 이 미친 콤비는 그러다 결국 요상한 문짝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앞에 서 있는 수상한 신사가 문을 열자 초록색 빛이 막 피어오릅니다. "야! 들어갈 거면 빨리 들어가! 어쩔 거야!!?" 라는 다그침에도 머뭇거리던 남자애랑 달리 함께 있던 여자애는 슥 들어가버리고. 문이 닫히고. 뒤쫓아온 경찰이 남자애부터 잡고 문을 열자, 그냥 벽입니다.


 ...라는 프롤로그가 달려 있구요. 여길 넘어서면 이제 21세기의 런던을 배경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차례로 돌아가며 플레이해야 합니다. 하나는 혼자서 딸을 키우던 운동부족 소심남이 옆집 잘 나가는 독신 게임 기획자와 몸이 뒤바뀌면서 겪는 소동. 또 하나는 아주 수상하지만 뭐하는 덴지 알 수 없는 회사에서 괴상한 임무에 도전중인 커리어우먼이 자상하고 가정적이기 짝이 없는 남편을 내팽개치고 바람 피우다가 인생 꼬이는 이야기. 마지막은 철 없는 여고딩이 집 근처에서 발견한 수상한 남자(눈에서 초록 불빛을 뿜습니다!)를 어쩌다 두들겨 패고 감금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괴상한 이야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 뭔가 열심히 적다가.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이게 그럴만한 의미가 있나?' 싶은 기분이 막 드네요. 그래서 다 지우고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1. 조작의 문제 : 사람들 말로 '비주얼 노벨'이란 게 있고 그냥 '어드벤쳐'라고 부르는 게 있죠. 둘의 차이라면 전자는 대화 선택지만 고르는 게임이고 후자는 그래도 게이머에게 할 일이 꽤 있는 편이라는 거에요.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들춰보고 하는 조작을 직접 하는 게 후자이고 경우에 따라 간단한 액션성도 들어가구요.


 근데 이 게임은... 분명 어드벤쳐에 가까운 플레이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직접 캐릭터를 움직여서 이동을 하고 시점 조작도 하고 버튼 액션도 하고 그래요. 근데 그런 조작이 철저하게 무의미합니다. 어차피 길은 언제나 외길이고 버튼 액션은 실패해도 스토리에 영향이 없으며 그 난이도 또한 상상을 초월하게 쉽습니다. 그럼 그딴 게 왜 있냐면, 그냥 캐릭터들간의 대화를 게이머들이 다 들을 때까지 시간 벌기에요.


 그러니까 어떤 거리를 가로지르는 동안 둘이 대화를 나누는데, 거리의 길이와 캐릭터의 이동 속도를 고려해서 대화 시간을 대충 맞춰 놓은 거죠. 그리고 그 이동을 게이머에게 시키는 건데... 한참 진행하다 문득 궁금해져서 조작을 안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대화가 끝나니 다음 구역으로 순간 이동을 해버리네요. ㅋㅋㅋㅋ 아니 이럴 거면 조작은 왜 넣습니까. 그냥 아예 비주얼 노벨로 가죠.


 2. 선택의 문제 : 요즘 이런 장르 게임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대화 선택지를 뭘 골라도 스토리에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마지막 챕터 마지막 순간, 엔딩 직전에 고르는 선택지 단 한 개만이 이야기를 바꿔요. 그러니까 5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하는 모든 선택이 그저 자기 만족일 뿐이라는 얘깁니다. 뭐 스토리 중심 게임에서 딱히 대단한 자유도를 원한 건 아니지만 이런 식은 언제나 맥빠지죠.


 그리고 그 선택지를 고르는 행위 자체도 좀 불만족스럽게 만들어놨습니다. 구체적인 대사를 고르는 게 아니라 대충 '달랜다/위협한다/잡아뗀다'와 같이 심플하게 표시된 것 중 하날 고르면 거기에 어울리는 대사가 튀어나오는 식인데, 상당히 자주 제 선택 의도랑 거리가 먼 대사가 나와 버려요.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뭔가 추궁당하는 상황에서 선택지 '달랜다'를 골랐더니 갑자기 주인공이 막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으면서 '달래는' 거죠. ㅋㅋ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건 아니지만, 좀 그렇잖아요?


 3. 이야기 자체의 문제 : 1, 2번을 읽어보셨으니 이미 이해하시겠지만 결국 이 게임은 그냥 스토리 감상 게임입니다. 스토리가 게임 컨텐츠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장르인데 그 스토리가 여러모로 별로에요. 뭐 하나하나 뜯어서 이야기하기도 그렇네요. 그냥 구멍 투성이에 캐릭터들 감정 따라가기도 힘들고 개연성은 애초부터 밥 말아 먹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고 디테일이 하나도 없달까요. 그나마 그 아이디어들이란 것도 딱히 참신한 것도 아니구요.

 그래도 세 주인공이 한 자리에 모일 마지막 챕터에는 좀 괜찮은 전개가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헐. 거기가 제일 구리더라구요.


 가아끔 괜찮은 장면이나 대사, 연출이 나오기도 해요. 근데 정말로 가아끔만 나오고 전체적인 스토리가 그냥 총체적 난국이라 그 정도로는 구원은 커녕 조금의 보탬도 안 되는 느낌. 


 4. 그리고 자잘한 것 몇 가지를 짧게 덧붙이자면, 일단 그래픽도 별로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서 기술적으로 그저 그런 건 이해하겠는데, 캐릭터들이 자꾸만 상황에 안 맞는 표정이나 괴상한 시선 처리를 보이는 것까진 용납이 안 되더라구요. ㅋㅋ 그리고 유저 편의성은 다 괜찮은데... 대화 장면을 빨리 넘기거나 스킵하는 게 안 됩니다. 

 


 - 장점이란 게 있을까요? 놀랍게도 딱 하나 있긴 합니다. 음악은 좋아요. 네. 음악은 듣기 좋게 잘 쓰더라구요. 크레딧을 보니깐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해서 녹음했던데. 게임 퀄이 이러니 이 무슨 낭비였나 싶기도 하고... 뭐 그래도 음악은 좋았어요. ㅋㅋ


 생각해보니 하나 더 있다고 우겨볼 수도 있겠네요. 어차피 결말이 이야기 하나당 두 개씩인데 이게 다 최종 챕터 마지막 장면에서의 선택 하나로 결정이 되다 보니 엔딩 한 번 본 후에 '이어하기'를 누르면 5분 안에 나머지 엔딩도 다 볼 수 있습니다. ㅋㅋㅋ


 ...아. 하나 더 있습니다. 진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엔딩만 봤는데 도전과제 점수가 1000점 만점 중 880점이에요. 어차피 신경 안 쓰는 점수지만 뭐 받아서 손해볼 건 없으니. 




 - 어차피 하시지 말라는 글인데 뭘 더 길게 적을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게임패스 유저여서 추가금 들일 필요가 없는데 스토리 중심 비주얼 노벨류 게임을 너무너무 사랑하신다면 한 번 해보셔도 좋지만 실망하실 거구요.

 그냥 하지 마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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