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가 한 모임의 뒷풀이 자리에서 저를 '사립斜立(비스듬히 선)형 인간이자 심미적 인간형'으로 예시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니 이 무슨 자유롭고 대범하면서 무심한 듯 디테일한 평가란 말인가요~   어리둥절합니다. - -
키에르케고르 식으로 (동의하든, 하지 않든) 심미적 인간과 윤리적 인간은 구분이 가는데  '사립인'이라는 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얼핏 뇌리를 스친 단어는 '사립문'과 공룡의 걷기 방식이었다는 '사립보행' 뿐입니다. 

그리하여 줄줄이 사탕처럼 꿰보는 생각. 
1 인간 중심주의의 편견 중 하나가 인간만이 서서 걸었다는 주장이었죠. 중생대에 공룡도 서서 걷고, 앞발을 사용해 움켜잡고 잡아뜯고 할퀴는 섬세한 동작까지 사용했다는 게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후 공룡은 1억 8천만 년을 서서 걸어다녔다더군요. 더불어 악어도 무려 1억 년 전에 이족보행二足步行을 했다는 게 알려져 있고요.
지구의 천문학적 역사에서 동물들에게 어떤 진화가 일어났는지는 현재의 인간이 다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과학자는 공룡이 자신의 신체기관 일부를 악기로 만드는 진화까지 해서 '생체 악기'까지 사용하여 몸 전체의 공명까지 일으켰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어요. 다른 동물에게 일어난 몸 전체의 공명은 인류의 진화에도 결정적인 변수일 만큼 중요한 진화의 역사인 것이죠.

그렇다면 공룡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단지 4만 년의 시간 동안 현생인류에게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를 생각한다면, 1억8천만 년의 시간을 함부로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1억8천만 년 동안 단지 먹이를 찾아서 어기적거리며 다니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짐작을 해볼 뿐이에요. 그 시간이면 공룡에게도 굉장히 놀라운 지성적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서 존속해왔으면서 모든 것을 인간중심으로 수렴시키는 인간의 상상력이란 참 고약한 면이 있음을 유념하고 있고요.

아무튼 공룡은 제게 사립보행斜立步行 (비스듬히 서서 걷기) vs 직립보행直立步行 (똑바로 서서 걷기)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동물입니다. 지구사에서 공룡이 1억8천만 년의 통치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지구를 존속시켰다면, 인간종은 고작 4만 년이란 시간만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 듯 지구를 작살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비스듬히 서서 걷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단지 동기가 저를 사립형 인간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해보는 생각은 아닙니다. 에취!)

2. 존재의 차원은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변화해가는 거라고 주장한 철학/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종교는 제외하더라도 어떻게 심미와 윤리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윤리에 대해 아이러니컬한 심미란 것도 있는 것 아닌가요? 문학에선 그런 걸 '자의식'이라고 하는데 그 둘을, '나'와 '나'를 어떻게 구분한다는 것일까요?
동기의 말대로 저를 심미형 인간이라고 해보죠. 아름다움에 대해서 쓸데없이 민감하고 그런 쓸데없는 면을 자랑스럽게 여길뿐만 아니라 그 괴물 같은 속성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면 저 같은 유형에게 윤리형 인간은 무심할까요, 계도의 의지를 발휘할까요. (먼산)
(뻘덧: **아, 심미형 인간도 공동체의 윤리에 대한 관심이 얕거나 옅지 않아. 다만 윤리형 인간보다 관심이 고독한 개인 쪽에 좀더 기울어 있긴 해.)

3. '사립문'을 구글링하니 이런 글이 뜨더군요.
(전략)
사립문은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베어다 엮어 놓은 문을 말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립짝을 달아서 만든 문’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사립짝은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문짝’이라는 뜻이다. 
거기까지 확인해도 사립이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은근히 궁금해진다. 혹시 ‘사립’(斜立ㆍ비스듬하게 섬)이란 한자어에서 온 것은 아닐까? 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사립문과 딱 어울리는 말이다. 
혹자는 ‘싸리문’으로 적기도 하는데, 싸리문은 말 그대로 싸리를 엮어서 만든 사립문이다. 싸리가 지천이었으니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을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의 삶이 그랬다. 물려받은 밭 한 뙈기 없이 드난살이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오두막이라도 한 채 지어 놓고 보니, ‘내 집’이라고 어깨에 힘 한 번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이라도 제대로 있었을까.
내에서 호박돌이라도 져다 쌓으면 좋으련만 늘 일손이 달리다 보니 그마저 없는 집도 많았다. 그런 마당에 솟을대문이 어울릴까, 나무대문이 맞을까.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는 섭섭한지라 잔 나무 베어다가 잎사귀를 훑어 얽어 놓은 게 사립문이었다.
(후략)

- 이호석 시인이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전문은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52203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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