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넥슨 남혐손가락망상 자해공갈 사건 이야기입니다. 또또 이야기하게 되는데, 저한테는 남초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고 온라인 세계의 여론이라는 걸 염려하게 만드는 사건으로 다가와서 그렇습니다. 이 이슈에 대해서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쓰려고 합니다.


일단 남초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트집을 잡았던 제일 첫번째 소재는 스튜디오 뿌리에서 일하는 어느 여성 노동자의 sns입니다.


SSC-20231126135602-O2.jpg

여기서 남초 커뮤니티의 삼단 궤변이 시작됩니다.


어떤 여자가 은근슬쩍 페미 계속해준다고 했다.

손가락 그림은 남혐의 상징으로 쓰인 적이 있다.

이 여자가 일하는 애니메이션 회사의 손가락 그림들은 남혐의 상징이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이게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먹혀들어갑니다.

어떤 사상을 가졌고, 뭔가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으니, 지금 내가 의심한 행위를 너희가 했을 것이다!

논리의 비약을 거쳐서 누가 무엇을 했다고 아예 없는 사실을 만들어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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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301518001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은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엔버)의 ‘집게손가락’ 포즈는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이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이 장면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스튜디오 뿌리의 직원은 다른 장면을 담당했음에도 온라인에 이름과 사진이 공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해 남초 커뮤니티가 내세우던 삼단논법이 부숴집니다. 

어떤 여자가 sns에서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 해줄게"라고 했으니 몰래 남혐 손가락을 숨겨놓았을 것이라는 전제가 아예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납니다.

몇몇 남자들은 이 논리적 오류를 두고 그제서야 냉정하게 판단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남자들은 이걸 인정하지 않죠. 어쨌든 남혐은 남혐이고 잘못했다고만 우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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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기사가 또 올라왔습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2040600021


일각의 주장대로 애니메이터 A씨가 ‘은근슬쩍’ 집게손가락을 넣으려면 콘티를 임의대로 수정한 뒤 김 감독의 눈을 4차례 피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넥슨도 콘티를 포함해 8차례 이상 검사·확인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파악됐다. 넥슨 측은 20명 가까운 기획팀이 외주 업체가 만든 최종 결과물을 검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의 눈도 모두 피해야 한다. 김 감독은 “커뮤니티의 음모론이 말이 되려면 트위터 아이디도 없고 손가락이 무슨 의미인지, 페미니즘이 뭔지도 모르는 제가 집게손가락을 음흉하게 넣었어야 한다. 거기에 넥슨도 동의했어야 하는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너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여자직원이 안했다고 해도 남혐이 맞을 거라고 우기길래, 아예 애니메이션 감독의 코멘트를 기자가 땄습니다.

이게 얼마나 일반적인 손가락 모양인지, 누가 무슨 사상을 넣을 겨를이 없고 넥슨도 다 검수를 했다는 걸 말합니다.

애초에 멀쩡한 손가락 그림이 "남혐"이라고 혐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부터 무의미하지만 기사는 다른 방향에서 반증합니다.

그런 남혐 손가락이 있다고 친다면, 그걸 에미상을 받은 감독과 넥슨 직원들이 몇차례나 검수하는데 왜 못발견했겠냐고요.

이걸 보고 남초 커뮤니티가 어떻게 반응할까요? 

자기들이 틀렸다고 안합니다. 사실관계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진짜 진지하게, 남혐이 맞다는 주장을 끝끝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https://www.fmkorea.com/best/6467518046


"남자가 그렸으면 남자들이 감싸주는줄 알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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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문제가 온라인 세계 특유의 권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펨코를 비롯한 남초는 해당 기사나 반박을 사실의 증명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하소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떤 대상을 미워하기로 결정했는데, 상대가 반박을 하면 그에 대해 마음을 돌려주기를 바란다고 해석합니다.

자신들이 누군가를 죄인이라고 낙인찍으면 기업이나 대리인이 사과를 하거나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권력의 층위가 작동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는 온라인이라는 익명성의 권력입니다.

익명성의 유동닉이 무슨 권력이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말의 권력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자기가 아무말이나 해도 되는 공간으로 치부하고 아무 소리나 하는거죠.


현실 사회는 최소한의 '맞말'을 말해야한다는, 부담이 작동합니다. 

교수한테 학생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습니다. 성적을 안좋게 받을 수 있으니까요.

부장한테 부하직원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습니다. 인사고과를 안좋게 받을 수 있으니까요.

비교적 대등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끼리도 아무 말이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친구의 호감과 관계를 잃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이 사회적 권력이 작동안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 말이나 해도 아무도 나를 딱히 건드리거나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 권력"이 자동으로 담보됩니다.

윤석열 보세요. 언론들이 기사를 안쓰니까 아무 소리나 하고 아무 짓이나 합니다.

비판받지도 않고, 그 비판으로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없다는 건 하나의 큰 권력입니다.

온라인 세계에서 유동닉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배제된다는 부담이 아예 없습니다. 


간혹 보면 인터넷에 이상한 헛소리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런 권력을 즐깁니다.

자기가 어떤 맞말을 해서 남을 설득하거나 공감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떤 말을 해도 누가 자신의 말할 권리를 어찌하지 못하는, 그런 권력을 즐기는거죠.

현실과 엇비슷한 수준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감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온라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아마 오프라인의 현실에서 잃어버릴 게 없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권력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안그런 사람들도 많겠죠.

악플러들의 심리도 다 이런 식입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너희는 나를 잡을 수 없고 나를 당장 해코지할 수도 없다는 거죠.

지금 남초 커뮤니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런 권력을 무의식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내가 틀린 소리를 해도 아무 부담도 없고 남들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무조건 발언권이 보장되는 그런 권력이죠.

틀린 소리를 하면 안된다, 사실이 아닌 소리를 하면 안된다고 하면? 

그 때는 검열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자유로운 공간이고 발언의 권력은 무조건 담보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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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남초 커뮤니티 내부의 계급에 따른 권력이 작동합니다.

펨코를 비롯한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거의 한 계층의 발화자 그룹만이 존재합니다.

내국인, 2030, 남성, 이성애자의 그룹입니다. 거의 생득적인 조건들입니다.

이걸 충족시키지 못하면 돈을 아무리 벌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든 어떤 루머의 당사자 본인이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이른바 세상의 중심에 속하는 기분으로 무엇이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조건에 부합되지 못하는 타인의 입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들이 피지배계층으로 인식하는 존재들은 본인들에게 늘 애원하거나 하소연해야 마땅한 존재들이니까요.

게이 욕하지 마라, 조선족 욕하지 마라, 흑인 욕하지 마라, 다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소리는 펨코의 지배계층에 속하는 내국인 2030 이성애자 남성 그룹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걸로 해석하니까요.

이들의 계급도에서 "페미"는 거의 최하층의 존재입니다. 욕먹어 마땅하고 사회를 망치는 쓰레기들입니다.

자신들이 응징해 마땅한 존재를 응징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태클을 걸면? 당연히 열받죠.

남초 커뮤니티에서 내국인 2030 이성애자 남성인 자신이 벌 좀 주겠다는데 감히?

남초 커뮤니티의 회원들인 이 권력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자신에게는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고, 자신이 판단하고 심판을 하겠다고 하면 다들 기어다니는 그 권력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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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커뮤니티의 이런 구조 안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건 그냥... 일베에 들어가서 노무현을 재평가해달라는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타인을 어떻게 봐달라는 이야기보다는 익명성의 권력 자체를 건드려야 합니다.

아무 말을 못하게 해야합니다. 자기 발언에 책임을 지게 하고 자기 발언을 직접 증명하는 부담을 지워야합니다.

온라인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사회적 평가를 받는 장으로 끌어올렸어야 합니다.

이걸 하는 엄청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기업이 그냥 고소를 하는 겁니다.

만약 지에스 25가 그 손가락남혐 날조 사건 때 이걸 했으면, 지금 이 사태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넥슨이 펨코를 비롯한 다른 남초 커뮤니티의 회원들을 허위사실 유포 및 영업방해 죄로 고소를 했으면 바로 해결되는 건이었습니다.

정말로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그런 발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손가락 그림이 남혐이라고? 너 그 발언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겠어? 너가 증명할 수 있겠어?

본인들이 증명하게끔 해야합니다.


만약 이렇게 나갔다면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어졌을 것입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초 커뮤니티는 본인들의 권력을 과신해서 저런 남혐 손가락 선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충 프레임 따서 주장하면 다들 넙죽 엎드릴 것이다...

남초 커뮤니티는 근본적으로 권력을 누리려는 집단이기 때문에 이런 권력관계에 엄청 약합니다.

무슨 신념이나 세계관으로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몇명을 선례로 고소를 했으면 다들 비웃으면서 그새 태세를 전환했을 겁니다.

"저건 너무 억까 아니냐 ㅋㅋㅋ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데 넥슨이 이 남초 커뮤니티의 여론을 수긍하더니, 협력업체에 갑질을 하는 수단으로 써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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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은 정말로 큰 사회적 실패를 저질렀습니다.

본인들은 그냥 블랙컨슈머 말 좀 적당히 들어서 협력업체들 기강 좀 잡자고 생각했겠죠.

본인들의 선택이 이 대안세계에 몰입중인 사람들에게 엄청난 근거를 주고 만 겁니다.

이제 넥슨은 어떻게 못합니다. 김창섭 디렉터가 마치 뭐가 있는 듯이 이 사람들을 단죄하겠다는 영상을 직접 올렸잖아요?


이제 남초 커뮤니티는 더 기세등등하게 자신만의 대안세계를 밀어부칠 겁니다.

언론은 다 "페미"들이 장악했습니다. 한경오는 믿을 수 없는 언론입니다. 무조건 여자 편만 듭니다.

자기들이 손가락 좀 고치라고 했더니 대기업들이 사과문을 올리고 손가락을 수정합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권력에 이미 자본이 편을 들어줬습니다.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걸 이야기하면, 유권자로서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과연 진지한 성찰을 할까요?

그 어떤 시사 프로그램과 전문 애니메이터들과 교수들이 말을 해도 남초 커뮤니티는 그 말을 안믿습니다.

왜냐구요? 게임 디렉터가 직접 사과하고 사상범들 때려잡겠다는 말을 했잖아요? 

전부 다 "페미"편 들거나 모종의 꿍꿍이가 있어서 남혐을 은폐한다고만 하겠죠.

이들은 인터넷 세계에서 그만큼 절대적이고 비판이 불가한, 완벽한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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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승리"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정치적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눈에 훤히 보이지 않습니까?

너 지금 여자편드는 거냐? "페미" 편 드는거냐? 그럼 표 못주는데?

계속해서 (정치) 소비자로서의 권력만 휘두르려고 하겠죠. 이들은 민주정치에서 동행이 가능한 상태가 아닙니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사람들을 토론으로 꺾고 본인들의 한심한 메타인지를 깨우치게 하면? 

자기한테 창피를 주고 모욕을 한 가해자로만 기억할 겁니다. 이들의 대안 세계는 너무나 굳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 한국의 인터넷이라는 세계 전체, 커뮤니티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와 여론들을 완전히 오염시킨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건은 인터넷이 더 가상의 세계로 가치절하되고 오프라인에서의 연결과 토론을 더 중요시하는 그런 계기가 될지도 모르죠. 

인터넷이라는 게 한국에 유통되고 커뮤니티라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인터넷을 즐긴 입장에서, 이건 참 무시무시한 변화입니다.

어떤 세계가 그저 자유만을 추구하며 어떤 부담이나 규칙을 적용하지 않을 때 그 세계가 무법자들의 점령지로 낙후되는 걸 생생히 볼 수 있다고나 할까요.


이제 남초 커뮤니티는 사실관계도 필요치 않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남자들이 '억까'라고 반론을 하면 '아줌마'라고만 댓글을 답니다. 그냥 비하하고 찍어누르면 된다는 거죠.

인터넷을 이전처럼 즐기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듀나게시판은 그런 낙후 현상이 좀 늦게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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