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는 22분, 후자는 40분짜리 단편 영화에요. 두 영화 다 스포일러는 없게 적겠습니다.



1. 손이 많이 가는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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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의 회사 사무실. 당직 서러 나와서 뭔가 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시계를 힐끗거리는 젊은 인턴 사원에게 선배 정직원이 이유를 묻습니다. 오늘이 자기 남자 친구가 정략 결혼을 하는 날이고 이제 식을 올리기까지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대요. 그러자 갑자기 마시던 커피를 컴퓨터에다가 호쾌하게 부어 버리는 선배. '훗... 이걸 고치려면 이틀은 꼬박 걸리겠는데, 그건 내가 주말 내내 여기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고. 그렇다면 굳이 주말 당직이 두 명이나... 필요할까?' 라며 매우 훈훈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이죠. 선배의 이 과하게 드라마틱한 호의로 우리의 미미씨는 남자 친구의 결혼을 막기 위해 출동하는데, 멀지도 않은 그 길에 계속해서 위기 상황이 들이 닥칩니다. 과연 우리의 미미찡은 이 험난한 세상을 넘어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 알고 보니 세상은 넘나 아름다웠던 것이었고 우리 미미씨는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의 황당하고 낯부끄러운 도움을 받으며 난관을 헤쳐나가요. 그러니까 방금 적어 놓은 그 개그. 그 패턴 하나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웃기는 식으로 설계된 영화입니다. 쌩뚱 맞은 인물이 갑자기 말도 안 되게 과한 방식으로 호의를 베푼 후 드라마, 영화 속 구원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폼나게 읊는 대사를 아주 민망하게 재현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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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뒤져봐도 제대로 된 짤이 거의 안 나오는 영화인데 이 사진만 이토록 지나친 고화질&빅사이즈는 무엇...)



 - 상당히 웃깁니다. 다만 문제는 이게 원패턴으로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좀... 뭐 감독도 나름 머리를 써서 중반 이후로는 다른 종류의 유머들이 살살 첨가되긴 하는데, 그 '다른 유머'들은 딱히 신선할 게 없는 흔한 B급 유머들이라 핵심 아이디어만큼 재밌진 않더군요. (콕 찝어 말해서, 한국 막장 일일드라마의 공식들을 대입해서 비트는 식의 유머들이 많이 들어갑니다.) 또 막판에는 살짝 이야기가 흐트러지며 늘어지는 느낌도 있구요. 연출면에서도 특별한 느낌은 못 받았고... 그냥 드립 잘 치는 친구가 옆에 앉아서 열심히 노가리를 까서 웃겨주는 기분이랄까요. 



 - 방금 말했듯이 후반이 좀 아쉽긴 하고, 인디 영화답게 기술적인 한계 같은 것들도 종종 눈에 밟힙니다만... 어차피 20분짜리 독립 영화잖아요. 이 정도면 재밌게 봤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제가 이걸 '그녀를 지우는 시간'과 연달아서 봤단 말이죠. 강제로 비교 모드로 감상하게 되다 보니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뭐 재미 없거나 지루한 영화는 아니었어요.



2. 그녀를 지우는 시간


 - 앞서 말했듯이 스포일러는 없게 적겠습니다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보는 게 훨씬 좋을 영화입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래 내용 읽지 마시고 영화를 먼저 보세요... 라는 경고를 먼저 드리구요. 근데 볼 방법이 없습니다 으허헝


 이거슨 예고편입니다.


 (예고편격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맞지만, 절대로 이런 내용의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걸 보니 참 웃기네요. ㅋㅋㅋ)



 - 위 예고편의 뽀샤쉬한 일본 영화 느낌 장면들이 흘러 나옵니다. 한 여자가 나오고, 그녀가 짝사랑하는 선배가 나오고, 둘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마치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조금 이어지다가... 으악. 아무 예고도 전조도 없이 귀신이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알고보니 지금까지 본 내용들은 영화 속 영화입니다. 촬영을 다 마친 영화 감독이 편집을 하다가 중요한 장면마다, 그것도 맘에 들었던 OK 테이크마다 튀어나오는 여자 귀신을 발견한 거죠. 귀신도 무섭지만 이 귀신 때문에 영화를 완성하지 못할 게 더 무서웠던 감독은 전설의 편집왕을 초빙하고, 둘이 나란히 앉아 의논하며 찍어 놓은 분량 속 '그녀를 지우는 시간'을 구경하는 게 이 영화의 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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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이십니다. 사실은 훼이크지만요)



 - 바로 짐작이 가시겠지만 장르는 사실 코미디입니다. 호러가 섞이긴 했죠. 하지만 엄연히 코미디에요.

 런닝타임의 대부분을 영화 속 영화 장면, 그리고 편집 프로그램 화면에 섞이는 두 사람의 대화로 때우는데... 이게 참 복합적으로 재밌습니다.


 1) 우리의 편집왕은 피도 눈물도 없이 '내용만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한다'는 정신에 입각해서 냉정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 동시에 가차없는 평론가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 장면 왜 이래요?', '이거 너무 구닥다리 감성 아녜요?' 라고 귀신이 안 나오는 장면들에서도 쉴 새 없이 감독을 갈궈요.

 반면에 감독님께선... 일단 당연히 시네필이죠. 실력은 아직 모자라지만 열정만은 레전드급 마에스트로! 라는 느낌으로다가 편집왕의 태클과 공격에 상심하고, 반박하며 자신의 영화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쳐요. 


 이렇게 편집왕의 '합당한 지적'을 감독이 '씨네필 스피릿'으로 어떻게든 거부하고 반박하려 몸부림치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전체적인 재미의 절반쯤 되는데, 편집왕의 날카로운 지적도, 감독의 애절한 쉴드도 모두 납득 & 공감이 되기 때문에 더 웃깁니다. 어찌보면 이 두 사람은 실제로는 한 사람의 머리와 마음 같기도 해요. 머리로는 편집과 삭제를 외치는데 마음이 그걸 허락을 안 하는 처지에 빠진 감독의 심적 고뇌를 보여주는 이야기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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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들이 실제로 보시게 될 장면은 2/3가 이런 화면입니다. 하하.)


 2) 그리고 그 와중에 이들이 주고 받는 대사 속에는 한국 영화 제작 현장에서 뛰어본 사람들에게 익숙할 '현장 감성'이 알알이 박혀 있습니다. 아, 물론 제가 그 세계를 알고 있을 리는 없겠습니다만. 보면서 그렇게 짐작하는 거죠. ㅋㅋ 난데 없는 영진위 지원금 드립이라든가... 인서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금언 같은 게 반복해서 나온다든가 등등.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서 뛰어본 분들이라면 30배로 더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구요.


 3) 마지막으로 결말이 참 좋습니다. 뭐 스포일러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결국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게 아주 상냥하면서도 훈훈하고 공감이 가게 와닿는 결말이에요. 이거야말로 진정한 영화제용 영화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굳이 단점을 하나라도 찾아 보자면... 후반에 국면 전환이 한 번 있고, 한동안 호러 파트가 진행되는데 그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는 거? ㅋㅋㅋ

 그 파트는 드립도 거의 없어서 더 심심했던 것 같아요. 재밌는 영화였지만 좋은 호러 영화는 아닙니다.



 - 뭐... 처음에 제가 경고(?)드렸던대로, 여기까지 다 읽어 버리셨다면 나중에 이 영화를 보실 때 재미가 좀 반감되긴 할 겁니다.

 그래도 기회가 되시면 꼭 보세요. 개인적으로는 근래에 본 영화들 중에 가장 많이 웃었던 영화였고, 다 본 후의 기분도 꽤 좋았습니다.

 추천해주시고 재차 방영 정보까지 전해 주신 부기우기님께 감사를!!!




 + 근데 뭔가 두 영화 모두 일본 영화쪽 감성이 크게 느껴지더군요. 살짝 인스타 갬성 사진 느낌나는 화면의 톤도 그랬구요.

 '손이 많이 가는 미미'의 경우엔 다들 얘기하는 한국 막장 드라마 패러디 보다는 뭔가 일본 영화나 드라마 속에 자주 나오는 좀 오골거리게 훈훈한 장면들을 과장해서 보여주며 웃기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보면서 일드 '기묘한 이야기' 생각이 많이 났구요.

 '그녀를 지우는 시간' 같은 경우에야 뭐... 영화 속 영화가 그냥 대놓고 이와이 슌지 풍입니다. 감독도 그거 다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증거가 중간에 나오기도 하구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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