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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프리카 방송국에서 스타크래프트1을 하는 비제이들이 스캠코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걸 썼는데요. 또 한번 큰 사건이 터젔습니다. 자신은 해당 코인에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공지했던 김택용이 그 때 했던 말은 무서워서 한 거짓말이었고 코인 투자를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이 스1 판을 잘 모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하자면 해외축구판에서 메시와 호날두가 팬들 돈을 털어먹을려고 사기를 계획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장 실력이 좋고 유명하고 인기가 많던 두 선수들이, 팬들의 돈을 스캠코인판에 끌어들이기 위해 '작전'을 짜놓았던 거죠. 그래서 김택용만큼은 아닐 거라고 믿었던 팬들의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이 판의 어떤 게이머를 믿고 좋아해야할지 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많이 무너졌어요.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55157



이 두 게이머는 스타판이 프로의 무대로 돌아갈 때 가장 많은 영광을 차지하고 거대한 응원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스타판이 마재윤이라는 게이머의 승부조작 때문에 무너지고 후에 아프리카 인터넷 방송국에서 다시 나름의 판이 짜여지자 그 안에서도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던 사람들이에요. 후원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인터넷 방송국에서 김택용과 이영호는 가장 많은 별풍선 후원을 받았던 게이머들이기도 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들은 늘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이 판의 최후까지 남아있는 최고의 선수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했던 영광의 시기는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 시기를 추억하고 이들에게 주었던 관심을 기억합니다. 저는 이 스타크래프트1이라는 게임문화가 이제는 완전히 잊혀지고 저같은 소수의 골수 매니아들이나 보는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스1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바로 '나도 스1을 좋아했다'라면서 선수 한두명씩을 언급하더군요. 최근에도 어떤 분인 아, 나도 김택용 좋아했는데 요즘도 잘하냐면서 묻는 걸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쩌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건이 끼치는 파장은 저에게 무척이나 크게 다가옵니다. 이 판이 이렇게 재구축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원래대로라면 차근차근 인기가 식더라도 그래도 몇 리그쯤은 더 하고 나중에 선수들이 차근차근 은퇴를 밟아나가면서 판이 소멸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재윤이라는 최정상급 게이머가 승부조작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타판은 금새 무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은 컴퓨터 게임이고 가위바위보처럼 맞물리는 전략들이 있어서 서로 짜놓기만 한다면 실력과 무관하게 승패가 미리 결정되는 일이 생기기 아주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 게임을 좋아할 이유가 없죠. 누가 이길지 모르고 승부가 어떤 식으로 갈릴지 모르는 그 살벌한 긴장감 속에서, 밥먹고 게임만 하는 프로게이머들이 온 힘을 다해 승부를 뺏어오려고 하는 게 이 스타크래프트1의 매력인데 그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트린 셈이 되니까요.


그렇게 무너진 판이 스1 전프로 게이머들이 인터넷 방송국으로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리그가 훨씬 커지고 사람들의 관심도도 높아지면서 지금의 판이 다시 형성되었던 거죠. 조작게이머들 떄문에 무너진 판이 남아있는 게이머들로 재구축되었고 이들은 가끔씩 시청자들이 그렇게 원망하는 조작게이머들을 같이 욕하고 성토하면서 이 판을 잘 키워나갔습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이 판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직까지도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을 또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왜 그렇게 한물갔다면서 일찍 내쳤을까 하고요. 이 판이 너무 소모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프로게이머들은 열정착취의 대표적인 사례로 어느 책에 소개도 되었을 정도니까요.


추억팔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게이머 층이 다시 두터워지고 후원자들의 요청에 따라 이 게이머 저 게이머 그렇게 게임도 많이 하면서 게임 자체의 양상도 풍요로워졌습니다. 나온지 20년이 되는 게임인데 전략전술이 새로 개발이 되고 또 다른 유행이 번지더라고요. 되게 놀라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게임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민속놀이라고 하지만 그 민속놀이가 1년만 있어도 무언가 또 발견이 되면서 새로운 전술전략으로 발전한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는 스타크래프트의 모든 비밀과 감춰져있는 비기가 다 동이 날 것이다, 선수들은 선대의 전략전술을 다 계승받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플레이를 개발한 끝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지는 그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반복되는 양상의 경기에 질리고 게임은 정형화되거나 양산형이 되면서 차츰차츰 게임판에 먼지가 내려앉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게이머들도 더 이상 스타에 전념하지 않고 이런 저런 컨텐츠들을 손보다가 프로게이머라는 과거를 가진 인터넷 방송인으로 자리를 잡거나 이 판을 떠날 것이다... 


언젠가는 끝이 날 게 분명한 문화를 열심히 즐기고 있노라면 그게 괜히 서글퍼집니다. 시한부 인생의 친구와 같이 노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어찌보면 삼라만상 모든 인연이 끝이 예정되어있고 이 컴퓨터 게임이란 게 더 이상 신규 유저들도 적은데다가 제대로 즐길려면 너무 복잡하고 정교해져버렸기 때문에 민속놀이가 되는 걸 그대로 보고 있어야 했죠. 그런데 그런 멸망이 사치일 정도로 이 게임판은 우스운 나락에 떨어집니다.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게이머 둘이 폰지사기에 가까운 행위를 하려다가 사전에 적발되었으니까요.


필연적이지만 그래도 붕괴가 조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저의 낙관론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낍니다.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것처럼, 어떤 문화나 판도 갑자기 무너지고 사라져버릴 수 있는 거죠. 싱크홀처럼 갑자기 꺼져버리는 그런 현상을 지금도 인정하기는 싫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동경했떤 사람들이 저렇게 탐욕에 눈이 돌아서 자기 모든 걸 팽개치고 실망시켰다는 게 가슴이 아파요. 저는 이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기도 하지만, 미워하기가 힘든 마음도 있습니다. 제가 십몇년을 좋아했던 그 문화에서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시시하고 비루한 인간으로 몰락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속상한 일이에요. 좋아하던 아이돌들이 범죄자로 밝혀졌을 때 그 팬들은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요. 


영광이 바래더라도 그 과거를 남겨준 사람으로서 그저 충실하게 살아만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사람은 변하더라고요. 업적에 상관없이 돈 앞에서 누군가는 비겁해지고 또 환멸만을 남깁니다. 한때 좋아했던 것으로서 점점 흑백사진이 되어가는 게 아니라, 사진이 일그러지고 찢어지는 일도 생긴다는 걸 또 깨닫습니다. 아름다웠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오염된 채로 갖고있느니 통째로 지워야한다는 게 참 그렇습니다.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의 가장 정확한 표현은 배신감인 것 같아요.


가수 박완규씨도 거의 절규를 하고 있더라구요. 이분은 김택용의 열렬한 팬이었으니까요. 자신이 우을증으로 힘들어할 때 김택용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면서 힘을 냈고 그에 대한 팬심 때문에 경기장에 직접 찾아가는가 하면 마지막 스타리그의 공식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여러번 김택용과 직접 만나서 밥이나 술을 하는 등 인간적인 친분도 쌓았습니다. 저는 이 분의 마음을 잘 알것 같아요. 떼어지지 않는 것을 더렵혀졌다는 이유로 떼어내려하는 그 마음의 통증은 어떤 것일지.


멸망 자체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이번 일은 여러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작게 부스러지고 차츰차츰 균열이 가는 그 모습은 사실 비극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상기하게 됩니다. 그건 오히려 시간의 고운 축복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이들은 시간 속에서 갑자기 일그러지고 부숴지면서 거기에 얽혀있던 많은 것들을 억지로 끊어냅니다. 결론은 하나뿐인 것 같아요. 사라져가는 것들이 완전히 어둠 속에 삼켜질 때까지 영원할 것처럼 열심히 착각하고 환호하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 시간이 모든 존재에게 내린 유한성 앞에서 우리는 감히 불멸을 꿈꿔야 하고 멸해버린 것들을 그렇게 뒤안길로 놔둔 채 앞만 보면서 살아야하는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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