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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저는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혹시 제 안의 로맨스 세포가 다 말라버린건지, [헤어질 결심] 때부터 많은 이들의 극찬을 받는 로맨스 영화를 보고서도 그냥 밍숭밍숭한 일이 많습니다. 아마 제가 거대한 사건이나 충격, 혹은 복잡한 해석의 실마리를 남기지 않는 영화를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힘이 좀 모자란가봅니다. 


일단 해당 작품의 주인공들이 쓰는 한국어가 너무 거슬렸습니다. 후에 찾아보니 직접 코칭까지 받은 교포 영어라고 하는데 이걸 알고 봤으면 더 몰입할 수 있었을지도요. 유태오씨의 연기에는 좀 할 말이 많습니다. 이 분은 종종 한국말을 틀리지 않고 잘 하려는 사람처럼 말을 하는데 이건 다시 봐도 좋아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는 한국 "내수용"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개인적인 경험도 이 영화를 즐기는데 좀 방해가 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그리는 '재회'의 경험을 몇번 한 적이 있습니다. 연락이 끊겨서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사람과 싸이월드로 연락이 닿아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블로그로 10년만에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의 설렘이 얼마나 컸는지 다시 곱씹어보면서도 그 재회의 경험들이 결국 별볼일 없이 끝나서 좀 무뎌졌달까요. 그래서 저는 인연에 좀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인연이란 결국 수명이 있고 그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면 반드시 다시 만나서 헤어짐까지 완성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인연을 운명적 만남과 이어짐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저는 인연을 운명적 만남과 그 만남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헤어지지 못한 사람은 때로 인연의 힘으로 정확하게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닐지.


그리고 제 안의 유교맨이 괜히 발끈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배우자를 두고 눈앞에서 꽁냥거리는 이 두 사람을 보면서 네 이놈!! 인연 이전에 천지신명이 노할 것이야!! 하면서 속으로 몇번이나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사교적인 면에서도 저를 건드렸습니다. 아니 셋이서 만나면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양 옆의 사람을 연결하면서 누구 하나가 소외가 안되게끔 해야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영화가 아예 프레임 밖으로 노라의 남편을 밀어내버리고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서 기가 막혔습니다. 이 세상 매정한...!! 


이 영화의 신비로움은 서양적인 시선이라는 의혹도 조금 들긴 했습니다. 노라의 남편은 자신이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아마 노라와 해성의 어릴 적 인연을 자기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그와 동시에 그 두 사람이 공유하는 인종적, 국가적 정체성의 뿌리를 신경쓰고 있어서 그렇기도 할 것입니다. 자신이 더 다가가지 못하는 인종적 정체성의 한계에서 그는 인연의 벽을 스스로 느끼는데, 이것은 인연이란 개념을 훨씬 더 운명적이고 동질한 무엇으로 보는 서양인의 시각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인연은 훨씬 더 일상적이고 쉽게 끊어지거나 다시 맞닿는 것이기에 전 오히려 노라와 그 남편의 현재진행형 인연이 더 깊을 거라고 계속 말해주고 싶었거든요. 인종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이 그 시간 그 장소에 그렇게 있었기 때문에 맺어져서 함께 사는 것도 충분히 강력한 인연이라고요. 


아마 이것은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쪽으로 이 영화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노라는 이민을 두번 가고, 그렇게 정체성의 뿌리가 계속 희미해져가는데 그러는 가운데에도 자신은 누구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왔는지 계속 고민합니다. 아마 해성은 그런 자신의 뿌리이고 노라가 그를 다시 만나는 행위는 자기 안에 남아있던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과거로 확정하는 그런 의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보는 가운데 시얼샤 로넌이 주연한 [브루클린]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영화 자체에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시 보고는 싶습니다. 저의 편견과 개인적인 경험을 좀 떼어놓고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려하면 이 영화가 저에게 재회와 인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가르쳐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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